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7)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0/31 [12:07]

 

‘거룩과 경건’이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 거룩이 옛 삶으로부터 분리되고(separate), 세상과 다르게 살고(different), 세상 속에서 구별되는(distinct) 외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면, 경건은 내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무술에 ‘내공’이란 말이 있듯이 신앙의 내공을 쌓는 것이 경건이다. 참된 신앙은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함께 성숙해야 한다. 따라서 거룩과 경건이 한 쌍으로 함께 갈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회칠한 무덤

 

신약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바리새인의 뜻이 ‘분리된 자’(separate)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도 빠짐없이 드렸다. 그래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거룩하다고 평가받는 집단이 바리새파였다.

 

문제는 그들의 거룩이 겉치례에 불과했고, 남들에게 보여 주기식이었을 뿐, 그들의 내면은 전혀 경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지 외적으로만 분리되었고, 내적으로는 텅 빈 빈 수레와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 같다며 그들의 위선적이고 경건하지 못한 신앙을 질타하셨던 것이다. 회칠한 무덤이 겉에서 보면 흰색이 칠해서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은 시체가 썩어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의 거룩이 참다운 거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건해야 한다. 외적인 거룩이 내적인 경건함과 일치해야 한다.

 

연단하라

 

고대 그리스에서는 큰 도시들마다 정기적으로 대대적인 운동경기를 열었다. 고린도에는 이스무스, 에베소에는 판이오니아가 있었고, 아테네에서는 올림픽이 열렸다.

 

이때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우승을 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했는데 때로는 그 혹독한 훈련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나 훈련이 심했으면 ‘연단’이라는 단어는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연단’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짐나조’(γυμνάζω)로 ‘연습하다, 훈련하다, 단련하다’라는 의미다. 이 ‘짐나조’에서 체육관을 뜻하는 ‘gymnasium, gym’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운동선수들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gymnasium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자신을 연단하는가?

 

연단의 강도가 셀수록 연단의 시간이 길수록 또 연단에 집중할수록 선수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gymnasium’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연단’을 했는지가 실제 경기장의 성패를 가른다.

 

경건도 마찬가지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운동선수가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듯,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한다. 즉, 경건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경건의 능력

 

경건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경건은 부흥회 한 번 참석하고 집회에 가서 한 번 은혜 받고 오늘 하루 눈물 흘리며 결단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경우 경건의 모양은 갖출 수 있겠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내면이 아직 ‘연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역과 영적인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경건의 모양만으로는 할 수 없다. 설사 한다고 해도 문제가 생기고 열매가 없다. 경건한 성도들이 사역을 할 때, 그 사역에서 경건의 능력이 나타고 성령의 열매도 맺게 된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연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꾸준히 행해야 한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을 채워가는 연단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울 수 있을까? 말씀과 기도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내 영혼을 채워가야 한다. 경건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채워가야 한다.

 

‘임계점’(Critical Point)이란 말이 있다.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하는 지점이다. 쉽게 말해 98도 99도도 아닌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는데 그 100도가 물의 임계점이다. 경건도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연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건의 능력이란 물은 끓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경건을 위한 연단의 시간, 규칙적인 루틴이 있는가? 예를 들어 매일 아침에 또는 저녁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한 달에 한 번 이상 금식하며 기도하기 등 여러분들이 경건하기 위한 지속적인 루틴이 있는가?

 

연단은 각자의 골방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쉼 없이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깊어지고, 우리의 말과 행동에도 경건이 묻어나오고, 우리의 신앙에 경건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무늬만 그리스도인 모양만 있는 경건으로 신앙 생활해야겠는가? 지금 당장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을 시작해야 한다. 나만의 연단을 위한 시간을 정하고 꾸준히 행해야 한다.

 

기도의 대가로 알려진 죠지 물러가 경건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10대에는 부모님의 돈을 상습적으로 훔쳤고, 청년 시절에는 술, 여자, 노름 등을 즐기며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 감옥에 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없이 인생을 낭비하던 어느 날 뮬러는 한 기도 모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회심을 하게 된다.

 

그 후 보육원을 세워 30명의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물질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아이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2시간씩 기도했다. 놀라운 것은 뮬러가 기도하면 어김없이 이름 모를 후원자가 나타나 고아들을 부족함 없이 돌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뮬러는 말한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축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뮬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까지 즉, 기도의 연단을 계속하라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다.

 

일례로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아침, 고아원에는 먹을 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뮬러는 400명의 고아와 함께 빈 식탁에 둘러앉아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렸다.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가 끝났을 때 놀랍게도 마차 한대가 고아원에 도착했고 그 마차에는 아침에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로 가득했다. 인근 공장에서 직원들 야유회에 쓰기 위해 주문했는데 폭우로 야유회가 취소가 되면서 주문한 빵과 우유를 고아원으로 보낸 것이다.

 

뮬러는 이처럼 특별한 기도 응답을 5만 번이나 받았다고 하니 하루 평균 두 번 기적과도 같은 기도의 응답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뮬러는 이렇게 간증하곤 했다.

 

“한 시간 기도 후에 네 시간 일하는 것이, 기도 없이 다섯 시간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또 뮬러는 성경도 200번 이상 통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 100번은 무릎을 꿇고 읽었다고 한다. 그는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했고, 그러자 고아원 사역 가운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났다.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자. 골방에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써 우리의 내면을 채우자. 그래서 우리의 삶과 사역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샬롬!〠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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