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눈을 감아본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 사이로 느껴지는 뜨거운 눈물이 기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1년 5개월 만의 방문. 비참한 역사를 지닌 인도차이나반도의 한켠, 가난한 땅 캄보디아에서 앞으로 일 주일 동안 경험하게 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에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천국으로의 여행
6월 30일 주일 새벽,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대에 가득 차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공항의 이정표는 어느덧 나를 캄보디아로 향하게 한다.
시드니는 며칠째 내리는 비로 노면이 상당히 미끄러웠고, 새벽 공기는 매우 차가웠지만 캄보디아로 향하는 기자의 마음만은 열대 몬순의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올랐다.
8시간 20분의 싱가포르까지의 여정과 다시 1시간 50분의 프놈펜으로의 여정은 매우 고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인 캄보디아에 다가갈수록 솟구치는 기대감과 설렘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선교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기자는 천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프놈펜공항은 여전히 분주했다. 공항 입국 심사는 대부분 군인들이 대행하고 있었고, 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아, 이곳이 캄보디아구나! 방문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공항의 부자연스러운 첫인상은 습하고 뜨거운 캄보디아의 기후와 어우러져 매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현지인 전도사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삐셋 전도사는 매번 우리들의 가이드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 준다.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에 보자마자 덥석 부둥켜안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짧게 올려본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만난 문선연 목사와도 기쁨의 인사를 나눴다.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의 캄보디아 사정을 전해 들으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된 일꾼들에 대한 부푼 기대감도 놓치지 않는다. 첫날의 여정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밥 한 끼 퍼드립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지난 여행과는 사뭇 다르게 기획됐다. 지난 여행은 헤브론의료원에서 의료 사역에 집중한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캄보디아 내에 설립된 다일공동체의 ‘밥퍼’ 사역에 집중하여 진행될 예정이다.
다일공동체는 1988년 서울 청량리에서 최일도 목사에 의해 설립된 민간 운영 사회복지법인이다. 이 공동체는 노숙인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아침과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35년간 봉사자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 봉사단체이다.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는 1988년에 청량리에서 다일공동체를 설립하였다. 그가 이 사역을 시작한 계기는 청량리의 외진 골목에서 만난 굶주린 할아버지와의 우연한 만남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할아버지의 굶주림을 보고 최일도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그는 청량리 굴다리 밑에서 식사 제공을 시작한 것이 이 일의 첫 발걸음이었다고 간증한다.
이후 다일공동체는 수많은 지역으로 전파되어 그 땅의 굶주린 이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며, 교육 지원 프로젝트와 의료 혜택 지원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NGO 국제구호기구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캄보디아엔 프놈펜과 씨엠립 두 곳에 다일공동체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의 여행은 이 두 곳의 다일공동체를 방문하여 밥퍼 사역을 취재하고 다일공동체의 여러 사역들의 발자취를 쫒게 될 것이다.
시엠립의 다일공동체와 석미자 원장
그 첫 번째 여정으로 우리는 시엠립을 선택하였다. 시엠립은 앙코르와트 유적이 있는 고대 도시 중 하나로, 캄보디아인들에겐 자부심과 긍지인 곳이다.
시엠립 다일의 총책임자는 석미자 원장이다. 석 원장과 다일의 인연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석 원장이 서울장신대에 다닐 때 최일도 목사가 신앙수련회에 주 강사로 왔고, 그의 설교에 큰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15년간 다일공동체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봉사하게 된 것이다.
2006년, 석 원장은 캄보디아 국립대학인 앙코르 대학교와 빌드 브라이트 대학교에서 한국어과 교수로 재직하며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는 현지에서 한국어 보급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 왔다. 그러던 중 석미자 원장은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로 최일도 목사를 시엠립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석 원장은 최일도 목사를 시엠립에서 다시 만난 일화를 생생히 소개해 주었다.
“2006년 캄보디아로 이주 당시 이미 캄보디아 다일공동체가 빈민촌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밥퍼 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그 사역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년여간 모른 척하며 연락도 끊고 시엠립에 도피 아닌 도피 중이었죠.
하루는 한식을 너무 먹고 싶어 한국 식당에 들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식당에 식사하러 온 최 목사님을 식당 입구에서 너무도 우연히 딱 마주하게 된 거예요. 그것도 너무 정면으로 마주해 어디 도망갈 수조차 없었지요.
최 목사님도 놀라신 나머지 ‘너 석미자 맞니? 석미자 맞지?’ ‘아닌데요, 석미자 아니에요.’ 하였지만, 어떻게 아닐 수 있겠어요.” 하며 박장대소하는 석 원장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붙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2006년 캄보디아 시엠립 이주 후 1년의 시간이 지난, 2007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다일공동체 시엠립 지부의 지부장은 평신도라서 밥퍼 사역만 하고 있던 터에 최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경험이 있는 석 원장에게 “아이들한테 밥만 줘서 되겠니. 영의 양식도 주자”고 하면서 주일 예배 사역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석 원장은 거부할 수 없이 그 주부터 주일 예배 사역을 시작으로 시엠립 지부에 합류하게 되었고, 지금의 원장 자리까지 이르러 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고 전한다.
어떻게든 피해 가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갈 수 없었던 석미자 원장, 그녀는 이 사역을 하나님이 그녀에게 맞춤 옷 맞춰주시듯 그분의 뜻으로 점철된 ‘나에게 맡겨주신 사역’으로 여기고, 지금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섬기고 있다.
석 원장은 하나님의 강력한 후원을 보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믿기에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다. 그녀의 호탕한 웃음과 열정 가득한 눈빛은 대화 내내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영적 파워는 오늘날 시엠립 지부를 세계 지부 중 가장 큰 지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 캄보디아에 다일공동체는 어떻게 설립되었나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는 석 원장이 우연히 최일도 목사를 시엠립의 한 한국 식당에서 만난 인연처럼 매우 특별한 만남에서 시작되었어요.
2002년 베트남 지부 설립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최 목사는 정말 가난해 보이지만 눈망울이 맑은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온 아이들이니?’ 물으니 캄보디아에서 베트남까지 먹을 것을 찾아 걸어온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한국 식당 주변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거나 관광객들에게 ‘원 달러, 원 달러’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이라고 들었어요. 아이들이 걸어왔다는 그 길을 따라 육로로 캄보디아를 오게 된 것이지요. 그 아이들이 살던 곳은 도시 빈민촌이었고, 그곳에서 쓰레기를 모으며 살아가던 아이들이 살던 땅에 캄보디아 다일공동체를 세우게 되었어요. 그때가 2004년의 일이에요.”
이곳에서도 밥을 나누자
위험한 환경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밥을 줘서 꼭 아이들을 살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캄보디아 다일공동체 밥퍼는 2006년 시엠립에 제2지부(본원)를 설립하고 올해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자가 시엠립을 방문한 그날도 여느 날과 동일하게 밥퍼 준비로 주방은 분주하였고, 밥을 나누기 이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은 신나는 율동과 함께 찬양하며 한껏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느 성가대가 이리도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을 것이며, 어느 무용수가 이보다 더 화려한 춤사위를 펼칠 수 있을 것인지… 기자는 감격의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시엠립 본원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리비다 총무는 기자에게 밥퍼의 식판 전달의 막중한 사명을 맡겨주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전달할 소중한 기회를 맡겨준 것이다.
밥을 퍼 나누는 이는 항상 무릎을 꿇고 나눈다. 그 이유는 밥을 나누는 이와 밥을 받는 이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사랑으로 교감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밥을 받는 이들이 거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녀로 당당히 식탁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렇다. 우리는 값없이 예수님의 식탁에 초청받은 주님의 자녀들이다. 높은 이가 있을 수 없고 낮은 이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사랑을 두 손으로 무릎 꿇어 전달할 뿐이다.
참으로 떨리는 마음이다. 수많은 밥을 나눠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내게 더욱 특별한 날이었다.
감사의 기도
“어꾼 쁘레아 예수, 어꾼 쁘레아 예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식판 하나하나를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며 외친 ‘어꾼 쁘레아 예수’(예수님 감사합니다)의 한마디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기도문보다 더 내 마음 깊은 울림이었고, 쌀 한 톨 한 톨마다 영근 주님의 사랑에 대한 봉사자들의 땀의 기도문이었다.
3백여 개의 식판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길지 않은 30여 분의 시간 동안 벌거벗은 갓난아이부터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노모에 이르기까지 한 분 한 분이 기자 앞에 다가선다. 닭튀김과 계란부침, 그리고 수박 한 조각과 간장 소스가 담긴 식판을 든 기자와 감사의 인사를 함께 나눈다.
“어꾼 쁘레아 예수” 서로 고개를 조아리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드려지는 이 짧은 의식은 그 어떤 성례보다 거룩하였다.
이 거룩한 식탁엔 갓 태어난 아이도 참여한다. 건장한 청년도 참여한다. 부자도 참여한다. 나그네도 참여한다. 물론 가난한 이들이 주로 참여한다. 두 번을 참여해도 괜찮다. 그들이 두 번 받아 든 음식은 한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몸을 가누지 못하여 이곳에 함께하지 못한 누군가와 나누어질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사람이 5천 명 분의 이익을 창고에 쌓아놓으면 그를 성공했다고 박수친다. 그러나 천국에선 한 사람이 자신의 것을 5천 명을 위하여 나눌 수 있을 때에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예수님은 복음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친히 보여주시지 않았는가? 이곳에서 그 성공의 나눔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캄보디아의 아이들 틈새에서 오늘도 밥 한 끼 기쁨으로 받으시며 행복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셨던 것이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모든 준비한 음식이 소진되어 모든 이가 행복과 만족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이 기적의 식탁은 가히 천국의 잔치를 연상할 만하였다. 오늘의 이 식탁은 내겐 그 어느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값진 식탁이었다.
소중한 한 끼 식사 감사함으로 비우고, 다일공동체의 ‘진지 기도문’을 마음으로 새겨 가슴으로 드려본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 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밥상을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 드리며 맑은 마음, 밝은 얼굴, 바른 믿음, 바른 삶으로 이웃을 살리는 삶이기를 다짐하며 감사히 진지를 들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계속>
김신일|본지 사진기자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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