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창조과학회 호주지부 상임고문으로 강의와 현장 탐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배용찬 장로가 지난 3월 중순 뇌출혈로 인해 뇌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이 글은 퇴원 후 자신의 지력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정신건강 자료로 남기기 위해 기록한 글이며, 이 글은 평소보다 서너 배의 집중력이 필요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고 전해왔다.
특별히 배 장로는 3월부터 시작된 ‘창조과학교실’ 강의는 생의 마지막 무대로 삼고자 열정을 다하려고 했지만 예기치 않은 건강문제로 차질을 빚게되어 송구하다며 차도가 있으면 못했던 일까지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배 장로는 본지에 ‘창조 에세이’ 칼럼을 현재까지 22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그의 빠른 회복을 기도한다.<편집자>
며칠 전부터 발걸음 띄는 일이 영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이 80을 넘어서니 의레 그런 조짐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더욱 느려진 발걸음을 탓할 생각은 아예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의 내 발걸음의 보폭이나 속도가 영 옛날같이 않아서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지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문득 전화기에 기록되어 있는 나의 발걸음 수가 3월 둘째 주부터 아예 없어져 있었다. 매일 5천 보 이상 가록하는 일을 나름의 자랑으로 여기며 이 숫자에 목을 맬 정도였으니 그럴만도 했지만 오른쪽 다리가 왜 자꾸 처지는지를 그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마침 가깝게 지내고 있던 지인(GP)에게 대수롭지 않게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바로 앰블런스를 타라고 했다. 뭐 이런 일로 소란을 떨가 하는 대수로운 마음으로 그 밤을 보낸 나는 그래도 미심쩍어 아침 일찍 GP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나의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열심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번(Auburn)병원으로 보내는 의뢰서(referral letter)였다.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병의 상태라던가 증상을 설명도 하지 않고 쫒아내는듯한 그에게 섭섭함도 없지 않았지만 의사가 응급실에 가라는 일을 예상하지 않아 쫓기듯 이웃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이른 아침 시각이라 많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여러 초진의사들을 거쳐 얌전하게 생긴 여의사와 마주했다. 간단한 문진만으로 풀려나기를 바랐던 나는 그녀가 제시하는 뇌 사진 한 장에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 않고 말았다.
앞면에서 찍은 뇌의 모습에 나의 왼쪽 뇌는 거의 흐려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주름도 있고 형체가 갖추어져 있지만 왼쪽 뇌는 안개만 자욱한 형국인 사진을보여주며 내 뇌가 지금 이 사진과 같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 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뇌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엄연한 현실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지만 과학적 자료에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나의 검사는 내가 꽁지를 내림으로써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침에 시작한 검사가 종일토록 진행되어 거의 밤이 되어서야 큰 병원인 웨스트미드(Westmead)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를 탔다.
밤에 이송되었으니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여려 병실로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간호사가 따라 붙었다. 두 환자를 한 간호사가 맡는데 이들의 하는 일들이 그렇게 효율적이고 체계적일 수 없게 보였다.
끌고다니는 개인 컴퓨터에 연신 환자의 차트(환자상태)를 입력하고 있는 것이 여간 신기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25년 전에 암수술로 15일을 입원해 보았지만 이렇게 첨단화되어있는 환자 치료법은 처음 보았다.
목요일 밤에 병원에 입원하여 금요일에 나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날도 그 다음 날도 수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나보다 더 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순위에 밀린다고 하면서 양해를 구해왔다.
이때 한국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일이 음모론이다. 병원에 아는 사람도 없고 빽도없으니 계속 순번에서 밀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이다.
수술이 끝난 후 나는 나의 정확한 수술 명칭을 의사에게 물었다. 여러 가지 뇌구조에 대한 설명이 있은 후 그는 말미에 ‘Wash Up"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씻어내다’라는 단어가 연관되었다. 속을 씻어내야 할 정도로 내 뇌가 오염되었는지를 더 알아보려고했으나 의사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내가 입원한 지 일주일 동안 피검사를 위시하여 CT, 초음파 검사(ultrasound) 뿐만아니라 그 어렵다는 뇌수술까지 받았고 1인 1실 또는 2인 1실의 첨단 병실에서 매끼마다 주문하는 식사에 이르기까지 일류호텔 부럽지 않는 황제 대접을 받고 왔다.
더욱이 병원 문을 나설 때 아무도 돈 내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세계 최고의 의료복지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금년으로 82해를 살았다. 살려고 발버둥치면서 일생을 보내다 보니 그 반 이상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미욱한 세월이었다. 이번 일로 나에게 허락하신 나머지 세월이 얼마일지 알 수 없으나 더 귀한 시간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Wash Up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배용찬 한국창조과학회 호주지부 상임고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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