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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은 민족의 성산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모세가 애급으로부터 인도해 나온 2백여 만 명의 히브리백성들은 이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면서 경전의 기초인 십계명을 받은 곳이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이 이곳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성지로 여기면서 성지순례 때에는 반드시 다녀가는 필수코스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시나이반도 남쪽 시내산은 AD 275년 로마 캐톨릭이 성 케서린수도원 부근을 정한 위치를 그대로 인정한 곳으로 고증이 안된 곳이며 이곳에서부터 아카바만을 건너 동쪽으로 약 200Km가량 떨어진 아라비아반도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는 주장이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유월절 다음 날인 1월 15일, 숙곳(Succoth)에 집결한 히브리백성을 모세는 광야로 인도하면서 40년간의 훈련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대 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 광야는 먹을 음식도 충분하지 않고 마실 물도 없는 척박한 들판이었다.
이로 인해 모세는 먹을 음식을 달라는 백성에게 시달리고 마실 물을 내라는 강요에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면서 마침내 성산 시내산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미디안(Midian)땅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아내 십보라와 장인 이드로를 만났다는 점(출 2:15)에 착안한 미국의 성경 고고학자 론 화이트(L. White)는 1980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미디안에서 다듬은 대리석조각을 발견한 이후 1850년에는 바위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하나님의 산’이리든가 ‘모세’라는 글씨를 발견했고 시내산으로 추정돠는 산 아래에서 이집트의 소라고 추정되는 암각화와 제단을 발견하면서 시내산의 위치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라비아반도 중서부에 이 시내산으로 추정되는 라오즈산(Raoz: 2,580m 일명 호렙산)이 있다. 바로 옆에 조금 낮은 곳에‘불타는 산’이라는 의미의 클라산(2,326m)이 있는데 그 정상 부근이 온통 검은색으로 착색되어 있어 하나님이 임재히실 때에 불에 탓던 흔적<출19: 18>이라고 여기고 있는 시내산이다.
그 아래에 기억자(ㄱ)모양으로 된 제단 터와 돌기둥들이 발견되면서(출 24:4) 이 산이 진정한 시내산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한국의 한의사인 김승학 씨가 사우디왕가의 특별한 배려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12차례나 이 지역을 방문하여 많은 당시의 유물을 발견하였다. 만나를 갈았던 맷돌, 장막을 칠 때 사용되었던 돌들 그리고 바위에 암각화된 금송아지 그림 등 이곳이 모세가 머물렀던 시내산이라는 증거들을 많이 수집한 적이 있다.
이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일곱 촛대를 상징하는 메노라(Menora)그림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는 바위 밑 동굴에서 찾아낸 사건은 괄목할 만한 발견으로 얄려저 있다. 문제는 이 그림이 그 후 누군가에 의해 긁히고 파헤쳐져 버려져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기존의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보다 아라비아반도 라오즈산에 있는 시내산이 역사적 시내산이라는 학술적 증거는 많다.
모세가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에 있었다고 한다면 첫째 그 땅 역시 바로왕이 통치했던 땅이라 히브리백성이 이집트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로는 솔로몬왕이 애돔땅 홍해 물가 엘롯에서 배를 지었다(왕상 9:26)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홍해는 지금의 아카바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배용찬 한국창조과학회 호주지부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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