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과 장구 사이에서 두 세계의 예술을 잇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5/11/24 [12:54]

 

 

  12월/2025 표지 © 크리스찬리뷰



▲ 장구와 피아노를 자유롭게 오가며 서양음악과한국의 전통음악을 잇는 하나의음악적 다리를 만들어낸 조수희.(시드니에서 미니 콘서트를 마친 후)     ©크리스찬리뷰

 

지난 10월 18일(토) 저녁, 베네딕트 칼리지(Benedict College) 강당에서는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 한국 전통음악 미니 콘서트가 열렸다. 2백여 명의 관객이 모인 가운데 북과 꽹과리, 그리고 한국의 전통장단이 강당 가득 울려 퍼지며 한국 음악의 숨결을 전했다.

  

이번 공연의 총기획과 사회를 직접 맡은 피아니스트 조수희는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팟캐스트 ‘G’Day 오스트레일리아(굿데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운영했던 조PD(조시현)로, 기자 역시 여러 차례 그의 방송에 초청되어 마이크를 잡은 인연이 있다.

  

어머니는 시드니 주요 행사에서 차분한 진행과 선명한 목소리로 잘 알려진 사회자이자 작가인 김인화씨이다. 최근 한강 버스 사태를 시드니 페리의 역사와 비교해 짚어본 나레이션 영상 「시드니 페리, 멈추지 않는 신뢰의 교통수단」(www.youtube.com/ watch?v=lSezJKtzD34)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런 예술적 감수성과 문화적 감각 속에서 성장한 조수희는 이날 무대에서 장구와 피아노를 자유롭게 오가며 서양음악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잇는 하나의 음악적 다리를 만들어냈다.

 

4살 때 피아노 소리가 ‘예쁘다’고 말하던 아이

 

조수희는 호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한국은 방학 동안 잠시 머물다 온 기억이 전부이지만 그의 음악 세계에는 두 문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다. 시드니의 일상 속에서 자랐지만 그의 음악을 이루는 선율은 언제나 서양 피아노의 감성과 한국 전통 장단이 함께 숨쉬고 있다.

  

“엄마 말로는요, 제가 네 살 때 피아노 소리가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고 해요. 그래서 키보드를 하나 들여놓고 아빠가 아주 기초만 가르쳐줬는데 제가 너무 빨리 따라 해서 ‘한 번 시켜볼까?’ 하고 레슨을 시작했대요.”

  

네 살에 시작한 피아노와의 인연은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연습이 지겨워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우연히 피아노를 칠 기회가 찾아왔다. 실력은 그리 뛰어나진 않았지만 친구들은 “와! 너 정말 잘 친다!”며 환호했고 그 관심과 격려는 다시 그를 건반 앞으로 끌어당겼다.

  

“다들 좋아하니까 저도 재밌고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다시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했죠.”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작은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정말 하고 싶다면 네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며 매일 한 시간씩 일 년 동안 꾸준히 연습해 보라는 것이었다.

  

▲ 한국에서 온 한국전통타악팀과장구를 치며 열연하는 조수희(왼쪽에서 두번째). 징김광범, 꽹가리 문일상, 장구 박주환, 북 황성환)위 사진은 삼도설장구, 아래는 삼도 사물놀이     ©크리스찬리뷰

 

 

그는 실제로 일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농(Hanon)의 피아노 기초 테크닉을 연습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 ‘수련의 시간’은 그의 피아노 기초를 누구보다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 스트라스필드 걸스 하이스쿨(Strathfield Girls High School)을 거쳐 그는 결국 시드니 콘서바토리움(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의 Bachelor of Music(Music Education) 과정에 진학해 음악 교육과 연주 전반의 기초를 다졌다.

  

이어 같은 학교의 ‘Master of Music Studies (performance)’에서 Collaborative Piano(반주 전공) 트랙을 이수하며 본격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시드니 음대를 졸업한 후 그의 커리어는 빠르게 ‘뮤지컬 무대’로 확장됐다. 첫 작품은 ‘9 to 5’. 이어서 물랑루즈(Moulin Rouge),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그리고 해밀턴(Hamilton)까지 대형 프로덕션의 피트(pit)와 리허설룸을 오가며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스태프로 성장해왔다.

  

“뮤지컬에서는 대부분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로 참여했고요. ‘해밀턴’에서는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까지 했어요. 무대 위에 배우들이 있고 아래에서 음악으로 전체 흐름을 잡아줘야 하니까 긴장감도 크지만 엄청 짜릿했어요.”

  

콘서트홀의 독주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 작품을 떠받치는 ‘뮤지컬 피아니스트/음악감독’의 역할은 그에게 또 다른 책임감을 요구했다.

  

조수희가 존경하는 스승 호주 음악가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 AM)는 “반주자는 단순히 뒤에서 희미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주의 동등한 파트너라는 철학”을 늘 강조해 왔다.

  

그 가르침 덕분에 조수희는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동료 연주자들과 무대에 설 때에도 늘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음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다.”

 

너는 호주에서 살아도 한국 아이다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시절 아빠는 딸에게 또 하나의 ‘악기’를 쥐어 주었다. 바로 장구였다.

  

“아빠가 늘 그러셨어요. ‘너는 호주에서 살지만 한국 아이다. 한국의 문화와 악기는 기본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장구의 기초 장단을 가르쳐 주셨어요.”

  

▲ 한국에서 온 한국전통타악팀과소리꾼 이선영이관객들과 함께한국의 전통음악을 함께 즐기며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당시 아버지는 지인 몇 가정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장구를 연주하곤 했다. 조수희는 그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장단을 익혔다.

  

그 뒤로 그가 홈부쉬 웨스트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족이 학교 행사에 초대되어 전통 장단을 선보일 기회가 생겼다. 이 경험을 시작으로 소규모 공연이나 가족이 함께 한국 전통음악을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이 그가 호주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접하고 알리게 되는 초기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한국 전통 타악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HSC(수능) 이후, 어머니가 인터넷으로 찾아준 부여의 ‘김덕수 사물놀이 한울림 겨울캠프’에 4주간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 캠프에서 그는 우연이었지만 결정적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꽹과리 연주자이자 전통 창작 타악그룹 ‘유소’의 대표인 문일상 선생이다.

  

“일주일마다 강사가 바뀌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운 좋게 문일상 선생님 수업을 세 번이나 들었어요. 꽹과리 소리, 장단, 몸으로 느껴지는 리듬…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죠. ‘이건 계속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당시 그는 시드니 콘서바토리움에 입학해 대학 생활에 집중해야 했기에 전통 타악은 잠시 ‘옆에 두어야’ 했다. 그럼에도 한국 장단은 그의 일상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았다.

  

피아노 전공을 공부하면서도 가끔씩 지역 아마추어 사물놀이 팀 공연에 참여하고 행사에서 모둠북과 장구를 연주하며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 일상이 이어졌다.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 리듬, 두 가지 세계는 이미 그의 몸과 감각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건너가 전통의 뿌리를 다시 배우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2024년과 2025년, 연속된 ‘한국행’에서 찾아왔다.

  

“작년에 3개월, 올해도 3개월을 한국에 갔어요. 그냥 관광이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문일상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문일상 선생은 지금의 한국 전통음악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한국 전통음악 전공자는 많지만 출산율 저하와 예산 축소, 교육 현장의 위축으로 “가르칠 아이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해외에 있는 너 같은 애들이 너무 중요하다. 한국에서만 싸우다 보면 끝이 안 난다. 밖으로 나가서 전통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는 그 ‘콜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시드니로 돌아와 그는 NSW 주정부의 Creative NSW Cultural Access Grant에 과감히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제목은 단순했지만 담긴 뜻은 무거웠다.

  “

문일상 선생과 한국 전통 타악 연주자들을 호주로 초청해 제대로 된 전통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기대 없이 쓴 서류였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그냥 진심을 썼는데, 됐어요.”

  

지원금이 승인된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제 정말 해야 한다.”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전통과 현대가 만난 무대

 

그렇게 준비된 프로젝트의 결실이 바로 지난 10월 18일 베네딕트 칼리지에서 열린 공연,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미니콘서트이다.

  

▲ 홈부쉬 웨스트 초등학교 (Homebush West Public School) ©In Hwa Kim     

 

▲ Cowra에 있는 학교 : Lyndhurst Public School, Neville Public School ©In Hwa Kim     

 

▲ Newcastle Conservatorium of Music ©In Hwa Kim     

 

▲ Young North Public School ©In Hwa Kim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팀은 다섯 명이다. 꽹과리와 창작 국악 그룹 ‘유소’를 이끄는 문일상 선생, 전통 타악과 버나 돌리기(접시 돌리기)의 황성환 선생, 소고와 12발 상모를 돌리며 춤추는 박주환 선생, 남도 민요와 판소리의 이선영 선생, 태평소의 김광범 선생 등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통예술인들이었고, 이들과 함께 조수희는 무대를 구성했다.

   

이번 공연의 방향은 분명했다.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을 섞기 전에, 먼저 전통음악을 제대로 보여주자.”

  

▲ 판소리 춘향가를 열창하는 이선영(중간)과 고수 문일상(오른쪽),, 왼쪽은 판소리 대목에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 조수희.©크리스찬리뷰     

 

그래서 레퍼토리는 전통에 무게를 두었다. 장단과 가락, 상모와 버나, 북과 꽹과리와 징이 보여줄 수 있는 ‘원형의 매력’을 먼저 온전히 펼쳐 보이도록 했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중요한 고민을 했다.

  

“외국 관객들이 판소리와 전통 장단을 그대로 들었을 때 너무 어렵게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공연 중간 그는 자신의 ‘첫 언어’인 피아노를 꺼내 들었다. 판소리 대목에 피아노를 ‘깔아주는’ 시도를 한 것이다.

 

 “사람들이 가사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피아노가 먼저 감정을 깔아주면 생각 없이 그냥 ‘느끼기’가 쉬워지잖아요. 그래서 판소리 부분에는 피아노 반주를 얹어서 관객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게 했어요.”

  

이렇게 해서 전통과 서양악기가 겹쳐지는 순간이 무대 위에 탄생했다. 전통은 전통대로 서 있으면서 피아노는 다리 역할을 했다. 바로 그 ‘사이’에 조수희라는 예술가의 정체성이 놓여 있었다.

 

뉴카슬에서 영, 린드허스트까지, 시골 학교 체육관을 울린 북소리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연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바로 호주 각 지역 학교를 찾아가 한국 전통 타악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직접 장단을 체험하도록 하는 ‘인커전(incursion) 프로그램’이었다.

  

문일상 선생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 연주자들과 함께 꾸린 팀은 공연 기간 동안 NSW 곳곳을 이동하며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워크숍과 시연을 진행했다.

  

팀의 인커전 활동은 뉴카슬(Newcastle)에서 머스웰브룩(Muswellbrook), 영(Young), 시드니까지 NSW 전역을 두루 아우르며 이어졌다. 머스웰브룩 지역에서는 Hunter Regional Conservatorium을 중심으로 Richard Gill School, Muswellbrook South Public School, 그리고 홈스쿨링 학생들을 만나 한국 전통 타악을 소개했다.

  

이어 Young Regional Conservatorium과 협력해 Young North Public School, Lyndhurst Public School(이곳에서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Neville Public School 학생들도 함께 참여)을 방문했는데 한국 장단을 처음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시드니에서는 조수희의 모교인 홈부쉬 웨스트 초등학교를 비롯해 킹스스쿨(The King’s School), 웨스턴 시드니대학(Western Sydney University) 등에서 전통 장단 체험과 시연이 이어졌으며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가 한국 전통음악의 생생한 리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각 학교의 체험 현장에서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그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마다 늘 한 가지 안내를 한다.

 

▲ 한국에서 온 한국 전통 타악팀이 살아 있는 한국의 전통 음악을 호주에 소개하고 있다.(왼쪽부터 징 김광범, 꽹가리 문일상, 장구 박주환, 북 황성환) ©크리스찬리뷰     

 

 “악기 소리가 워낙 크니까 공연 전에 항상 말해요. ‘소리가 크니까 귀 막고 싶으면 막아도 돼’라고. 그런데 막상 치면 애들이 귀를 안 막아요.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괜찮아!’라고 하죠.”

  

접시를 부채 위에 올려 돌리며 펼치는 버나놀이는 그야말로 반응 폭발이었다.

  

“애들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좋아해요. 머리를 감싸 쥐고 ‘와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죠.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이 활동을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incursion program)으로 이해한다. 외부 예술가가 학교로 들어가 한 시간짜리 워크숍이나 공연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는 형식이다.

 

일본 타이코(Taiko), 아프리카 젬베(Djembe), 중국 사자춤-라이언댄스(Lion Dance) 등이 이미 호주 곳곳의 학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그는 ‘한국전통 타악 음악선생’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시 ‘한국 대학생’이 되다

 

조수희는 종종 자신을 ‘두 문화를 잇는 다리’라고 표현한다. 뮤지컬 무대 아래에서 연주할 때도, 시골 학교 체육관에서 장구를 두드릴 때도, 공연장 로비에서 관객을 맞을 때도 그는 이 정체성을 실감한다.

  

“제가 아무리 호주식으로 말하고 행동해도 사람들은 저를 ‘한국인’으로 봐요. 그래서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진짜 한국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자고요.”

  

그는 일부러 추석과 설 명절을 챙기고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 뉴스를 꾸준히 확인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해밀턴 공연할 때였어요. 한국에서 계엄이 터지자 배우들이 저한테 와서 묻는 거예요. ‘너네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야?’ 그때 깨달았죠. 사람들이 나를 한국 대표처럼 느끼고 있구나.”

  

그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이미 시드니 음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지만 그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현재 한국의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에서 온라인으로 공부하며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어로 공부하는 게 솔직히 힘들어요. 용어도 생소하고 한자어도 많아서요. 한 시간짜리 강의를 보려면 다섯 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 모르는 단어를 다 적어놓고 하나씩 영어로 바꿔가며 몇번씩 듣죠.”

그럼에도 조수희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한국 전통음악을 본격적으로 배운 건 사실 얼마 안 됐어요. 연주(실기)는 한국에 갈 때 스승님께 배우지만 이론은 제가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학교 공부는 ‘기초를 제대로 쌓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 베네딕트 칼리지에서 열린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 한국 전통 음악 미니 콘서트를 마친 후 청중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뒤풀이를 즐기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전공 이론을 어렵게 따라가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는 이 과정이 언젠가 자신의 활동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미래 계획을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직은 멀었지만… 30대 후반쯤이면 이 공부들이 언젠가 호주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소개하고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학문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요?

 

한국 전통타악음악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조수희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개의 시간표가 그려져 있다. 단기 목표는 한국의 스승과 연주자들을 매 년 초청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두둥! 울려라 우리 소리’ 같은 공연을 연례 혹은 격년 프로젝트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학교와 지역에서 인커전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그가 그리는 다음 단계의 꿈은 보다 구체적이다.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 같은 대형 축제에서 전통 타악과 현대적 연출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고 타이코와 젬베처럼 한국 전통 타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작은 교육 공간을 시드니에 마련하는 것이다.

  

필굿(Feel Good)과 같은 기존 단체들을 기반으로 초급부터 심화까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춘 작은 ‘인스티튜트’가 그의 목표다.

  

장기적 비전은 그 교육 공간을 한 단계 더 확장하는 데 있다. 한국 전통 음악을 전공하고도 활동 무대를 찾기 어려운 젊은 연주자들이 호주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워킹홀리데이나 단기 프로그램을 통해 양국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

  

나아가 자신의 예술, 교육 활동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후배들에게 남기는 일까지—그의 시야는 학교 설립을 넘어 문화 교류와 연구의 장을 여는 데로 향해 있다.

  

“학원이라고 부르기보단 ‘학교’라고 하고 싶어요.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가르치는 호주에서 유일한 작은 인스티튜트. 아이들이 여기 와서 북을 치고 장구를 배우고 상모를 돌리며 한국 리듬을 자기 몸의 언어로 만드는 곳이요.”

  

그의 이 말은 단순한 꿈에 그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이미 그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호주와 한국의 리듬을 이어 온 그의 여정처럼 언젠가 시드니 한 복판에 한국 전통 타악의 울림이 살아 숨 쉬는 작은 학교가 세워지기를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Ph.D)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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