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물결 속, 종이 신문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5/12/22 [14:19]

●참석자 : 권순형 (발행인) 김명동 (편집인) 김환기 (영문 편집장) 어윤각 (편집고문 ) 정성택 (디자인실장)  *가나다순                                        

●사회·정리 : 주경식 (편집국장)

●사진 : 권순형 (발행인)

●장소: 시드니주안교회 교육관

●일시: 2025년 11월 20일 (월) 오후 2시

 

▲ 본지는 창간 36주년을 맞아‘ 디지털 물결 속에 종이 신문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주제로 특별좌담회를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스마트폰 하나로 뉴스와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대이다. 호주에서도 종이 신문 발행 부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디지털 플랫폼이 전통 언론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클릭 중심의 소비와 짧은 영상,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환경 속에서, 이제 우리는 ‘종이신문’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게 된다.

  

여기에 종이 신문 제작 환경은 몇 년 전부터 이미 부담이 커지고 있다. 종이 신문과 잡지 시장이 축소되면서 인쇄소는 통폐합되었고, 인쇄비는 단계적으로 인상되어 왔다.

  

특히 내년 1월 호부터는 인쇄비가 기존 대비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등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으며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다행히 앞으로 몇 개월은 인쇄소와의 협의로 ‘두 배 인상’까지는 피했지만, 예전 대비 약 2/3 수준의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매월 종이 잡지를 발간하는 일이 가능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종이 잡지를 단순히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종이 신문은 공동체를 연결하고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화적 자산이지만, 동시에 디지털 전환 속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독자와의 접점을 넓혀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크리스찬리뷰」가 디지털 신문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종이와 디지털이 상호 보완되는 미래형 뉴스룸을 구축하는 것만이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찬리뷰」는 지난 36년 동안 호주 한인사회의 교계와 문화, 교육,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다루어 왔다. 또한 호주 주류 사회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건과 흐름을 함께 조명하며, 한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시대를 기록하는 역할을 수행해 온 잡지이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전환의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으며, 종이잡지의 어떤 역할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미디어, 목회, 커뮤니티, 문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디지털 시대 속 종이신문의 가치, 생존 전략, 그리고 「크리스찬리뷰」의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특별 좌담회를 마련하였다. <편집자>

 

사회자 :  사실 오늘 이 자리는 갑자기 계획되었습니다. 지난 11월 초, 권순형 발행인과 김명동 편집인, 그리고 편집국장인 본인과 셋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권 발행인이 “이제 매 월 잡지를 발행할 때마다 인쇄비가 만 불 이상 들것 같다. 이 상태로는 종이 잡지를 더 이상 계속하기가 어렵다.

  

내년 1월 호를 마지막으로 종이판은 마무리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잠정적인 결심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마지막 종이 잡지인 2026년 1월 호에서 36년의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는 좌담회를 개최하자”는데 의견이 모였고, 그렇게 해서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다행히 인쇄소와 합의가 잘되어 종이 질을 다시 조정하는 대신 인쇄비 인상 폭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장 종이 잡지를 접지 않고 당분간은 계속 발행을 이어갈 수 있게 숨통이 트였습니다.

  

여전히 연세 드신 독자들은 종이 잡지를 더 선호하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나 데일리 텔레그래프 같은 주요 호주 언론들도 여전히 종이판 발행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종이라는 매체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큰 흐름이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향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크리스찬리뷰」의 지난 36년의 역사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크리스찬리뷰」가 호주 한인 사회와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와 흔적을 남겨왔는지 함께 나누며 앞으로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러면 먼저 35년간 발행된  「크리스찬리뷰」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 먼저 어윤각 목사님부터 말씀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어윤각 편집고문 ©크리스찬리뷰     

 

어윤각 : 저는 권순형 발행인이 창간을 준비허면서 저를 찾아와 「크리스찬리뷰」를 발행한다며 도와달라고 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사진작가가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있었지요.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이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밤잠 줄여 가며 타자를 치고, 한 호도 빠지지 않고 매달 꾸준히 내는 걸 보면서 ‘아, 이분 대단하구나! 목사 아들이라 그런지 끈기와 꾸준함이 남다르구나’ 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함께 한 필진과 스태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 호주와 한인 사회, 기독교계에 정말 좋은 본이 되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인 제가 보기에도 참 큰일을 해냈어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특히 이단 문제를 파헤친 일은 사실 목사들이 나서기 어려운 영역인데 그 어려운 걸 「크리스찬리뷰」가 대신 싸워준 셈입니다.

  

이단과 맞붙으면 얼마나 힘듭니까? 그걸 굴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한 것만 해도 정말 위대한 사역이라고 봅니다.

  

▲ 김명동 편집인 ©크리스찬리뷰     

 

김명동 : 저는「크리스찬리뷰」와 반평생을 같이 했습니다. 처음 창간 초기에는 글을 기고했고요. 그리고 그해 9월부터는 편집부장으로 참여했습니다. 초창기엔 편집할 때 오려 붙이고 뜯어 붙이고 밤새 직접 손수 편집하던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배웠습니다. 독자들이 보내온 글들을 보면 참 진솔하고 숨김이 없거든요.

  

그런 글들을 보면서 “아, 나도 더 진실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인터뷰하면서 인생의 굽이굽이를 많이 보게 됐고요. 무엇보다도 권 발행인의 활동을 쭉 지켜보면서 ‘참 대단한 분이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찬리뷰」를 제 인생의 ‘학교’라고 부릅니다.

  

▲ 김환기 영문편집장 ©크리스찬리뷰     

 

김환기 : 먼저 「크리스찬리뷰」 3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구세군사관으로 사역한 지 올해 37년째인데 그런면에서 제가 일 년 먼저 시작했고 그 다음 해에 「크리스찬리뷰」가 창간됐습니다.

  

저는 1989년에 임관했고 1997년 말에 시드니 사역지로 부임했는데 그때 이미 전임 사관님이 「크리스찬리뷰」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고, 글도 계속 기고했습니다.

  

저에게도 「크리스찬리뷰」는 학교이자 선생입니다. 글을 잘못 쓰던 제가 기회가 있으니까 억지로라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글도 조금씩 나아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 성격으로는 평생 못 만났을 사람들을 「크리스찬리뷰」를 통해 만나게 됐지요. 그래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성지순례 글도 33회 연재했고 그게 끝나고 나서는 칼럼으로 이어 와서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습니다.

  

▲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권순형 : 「크리스찬리뷰」는 한마디로 제 인생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산 날보다 호주에서 산 날이 더 많은데 호주 온 지 38년, 그중 36년을 「크리스찬리뷰」와 함께 보냈으니까요.

  

호주로 이민와서 민원업무를 보러 시드니총영사관에 들렀다가 「크리스찬타임즈」를 재창간한다는 한국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문 광고를 보고 ‘이게 내가 할 일인가 보다’ 싶어 한국 본사에 연락했습니다.

  

그래서 1989년 6월부터 「크리스찬타임즈」 호주 지사장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그 해가 바로 한·호 선교 100주년(1989년 10월)이었습니다.

   

「크리스찬타임즈」 지사를 운영하면서 호주에 있는 목사님들이 “이제 우리만의 신문, 우리 교민을 위한 기독교 신문이 필요하다”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본사와 상의해 현지판을 따로 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결과 1990년 1월에 「크리스찬리뷰」가 창간됐습니다.

   

「크리스찬타임즈」 본사에서는 90년 중반에 주긴신문을 창간할 예정이었는데 제가 먼저 「크리스찬리뷰」를 창간하고 그 이후에는 주간 신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사의 노조 문제로 인해 90년 1월 호를 발행하고 폐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에 본사의 지원을 약속받고 시작한 「크리스찬리뷰」는 창간 초기부터 어렵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도 저 때문에 희생이 컸지요. 컴퓨터 고장나고, 폰트가 깨지고, 장비가 없어 힘들 때 정성택 실장 같은 분들이 와서 고쳐주고, 교회에서 쓰던 맥컴퓨터도 가져다 쓰게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제 삶 전체,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이 거의 이 잡지에 얽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자 :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크리스찬리뷰」 사역을 하면서 각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나 순간이 있다면 하나씩만 소개해 주십시오.

  

김명동 : 사실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꼭 말해야 한다면 한·호 선교 역사 발굴 작업입니다.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 들을 취재하면서 부산, 경남 지역을 수없이 오가며 취재했습니다.

  

가보니 놀라운 현실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묘소조차 사라졌습니다. 부산진교회 뒤편에 무덤이 있었는데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어떤 선교사는 묘비도 없이 땅바닥에 묻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또 일신여학교 같은 곳은 항일운동의 중요한 현장이면서 근대식 건물인데 매각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부산일보, 기독교방송 등 지역 언론들을 찾아가 그 가치를 알리고 보존을 촉구했고, 그래서 기념관 형태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가 그렇게 부흥하면서도 정작 이런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크리스찬리뷰」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김환기 : 저는 「크리스찬리뷰」의 가장 큰 공헌이 호주 선교사들을 발굴하고 그 사역을 세상에 알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저는 선교사라고 하면 언더우드, 아펜젤러 같은 미국 선교사들만 배웠습니다. 호주 선교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처음 데이비스, 맥켄지 같은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세 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데이비스 선교사, 호주 선교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여기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첫 연결고리를 만든 인물이지요.)

  

그리고 맥켄지 선교사입니다. 1910년에 경남, 부산지역에 들어와 한센인 사역을 상애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때 손양원 목사님이 상애원 전도사로 부름 받아 그 사역을 배우고, 이후 애양원으로 가게 되지요.

  

또 6·25 후에는 맥켄지 선교사님의 딸들(의사와 간호사)이 들어와 일신병원 세우고 그 역사가 이어집니다.

  

세 번째는 휴 커를(Dr. Hugh Currell) 선교사입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교회, 학교, 병원을 함께 세운 분입니다. 진주교회, 배돈병원 등 여러 사역의 핵심이었지요.

  

문제는 이분들이 세운 것들이 한국에서 싸움과 분열 속에 상당 부분 훼손되거나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진주교회 하나만 봐도 통합, 합동으로 갈라져 서로가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나뉘어진 현실이지요.

  

「크리스찬리뷰」는 이런 복잡한 역사를 조용히 발굴해냈고 그 덕분에 한국과 호주의 정부, 교단, 언론이 이후에 그 사실을 인용하고 기념행사나 공식 연설에서 자연스럽게 언급하게 됐습니다.

  

권순형 :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2월 호주를 국빈 방문하고 캔버라 국회의사당 그레이트 홀에서 오찬 연설을 할 때, “수교 이전부터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복음을 전했다”고 말했던 것도 사실은 이런 자료들이 정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들의 취재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보람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초창기에 했던 북한에서 시드니를 방문한 고기준 목사 인터뷰를 잊을 수 없습니다.

  

1991년, 평양 봉수교회 담임목사이자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서기장인 고기준 목사가 시드니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호주연합교회 총무였던 존 브라운 목사님 도움을 받아 시드니 하버 크루즈 선상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창간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한국 언론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었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한국에서 또 총영사관에서 ‘기사 좀 보내 달라’며 연락이 많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창간 1주년 기념으로 취재했던 기도의 어머니 ‘서분이 권사’ 기사입니다. 6·25 때 잃어버린 아들을 40년 만에 찾게 된 계기가 되었죠.

   

우리가 취재해서 보도했는데 한국의 한 신문이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일도 있었습니다. 섭섭하기보다는 ‘그래도 그 덕분에 가족이 서로 찾게 됐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한항공 시드니 첫 취항 때 시드니 공항에 착륙하는 장면을 공식적으로 취재한 것도 우리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 부산–경남 취재 갈 때는 기장실에 들어가 조종석에서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데이비스 선교사 여권과 비자를 처음 찾아낸 일, 북측 친척을 찾는 일을 도왔던 일 등 ‘최초보도’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이나 호주의 큰 언론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작은 민간 기독교 잡지가 해 왔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 정성택 디자인 실장 ©크리스찬리뷰     

 

정성택 : 저는 두 가지가 특히 기억납니다. 하나는 캄보디아 선교 영상 프로젝트입니다. 권 발행인께서 “캄보디아에 선교팀을 구성하는데 영상 쪽으로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곳에서 선교사님들이 정말 처절할 정도의 헌신으로 가난하고 열악한 현장을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진짜 선교구나, 그리고  「크리스찬리뷰」가 단지 기사 쓰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호주, 캄보디아를 선교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구나”하는 걸 깊게 느꼈습니다.

  

또 하나는 가평전투 관련 프로젝트입니다. 가평전투 취재, 사진전, 각종 행사를 따라다니며 작업하면서 “이건 단순히 기독교 잡지 수준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를 잇는,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기독교 잡지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건 정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사회자 : 이제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종이 잡지, 종이 신문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디지털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디지털로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데요. “종이에서 디지털로 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 분씩 짧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디지털에 가장 전문가인 정성택 실장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정성택 : 일단 플랫폼 준비가 중요합니다. 앱 형태로 갈지, 기존 홈페이지를 개편할지 어떤 형식으로든 ‘읽고, 보고, 듣는 통로’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은 워낙 플랫폼이 많아서 다 따라갈 수도 없고, 그래서 오히려 핵심 하나를 정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는 최소 5년 정도는 투자한다는 각오로장기 플랜을 세우고 가야 합니다.

  

글뿐 아니라 영상과 이미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비주얼’ 중심의 구조로 가야 젊은 세대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환기 : 저는 완전 전환이 아니라 하이브리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BC와 AD로 나누듯이, 요즘은 BC(before Corona), AC(after Corona)로 나누기도 합니다.

  

코로나를 경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금 시대는 온라인도 아니고, 오프라인도 아닌 둘 다가 동시에 필요한 시대입니다.

  

가장 중요한 회의, 신앙, 관계와 같은 일들은 결국 오프라인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크리스찬리뷰」도 마찬가지로 역량만 된다면 종이와 디지털을 동시에 가져가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지금 구조가 발행인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권 발행인이 사라지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는 거죠. 앞으로는 역할 분담과 구조 조정이 필요합니다. 편집, 취재, 디지털, 재정, 후원 개발 등 역할을 나누고 여러 사람이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 하이브리드 전략이 버틸 수 있다고 봅니다.

  

어윤각 : 제 생각에는 아무리 디지털이 중요해도 연세 있는 분들에게 종이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니 어느 형태로든 종이를 완전히 끊지는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처럼 인쇄소에만 의존해서는 버티기 어려우니 재정 구조와 후원 기반을 새로 짜야 합니다.

  

한국의 부산, 경남 지역 장로교회들, 우리가 그토록 연구하고 소개했던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 가운데서 이 일을 ‘공동의 역사 보존 사역’이라고 보고 정기적인 후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권 발행인처럼 연세 드신 분이 더 이상 혼자 뛰어다니지 않도록 젊은 세대가 앞에서 뛰고, 발행인은 뒤에서 방향을 잡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 주경식 편집국장 ©크리스찬리뷰     

 

사회자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크리스찬리뷰」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핵심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명동 : 창간 정신을 떠올리면 「크리스찬리뷰」는 글과 사진을 통해 복음과 역사를 기록하는 잡지입니다. 우리가 다른 매체들처럼 남의 기사 베껴 쓰지 않고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듣고 써 온 것이 이 잡지의 정체성입니다.

  

힘들지만 그게 우리의 길이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이든 디지털이든 형식은 달라져도 “현장 취재, 깊이 있는 글, 복음적 관점”이라는 세 기둥은 유지돼야 합니다.

  

사회자 : 제가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어느 날 민주평통 임원 모임에 갔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이「크리스찬리뷰」를 몇 권 들고 온 거예요. 모임에 오기 전에 식품점에 들러 가져왔다고 하면서 두어 권을 탁 내려놓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당신 교회도 안 다니는데 교인들이나 보게 하지 왜 이 잡지를 챙겨와?” 그랬더니 이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시드니에 여러 가지 잡지, 신문이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다른 데서 쓴 걸 베껴 써서 별 내용이 없는데 「크리스찬리뷰」는 남의 것 베끼지 않고 직접 인터뷰하고 해서 읽을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교회를 안 다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크리스찬리뷰」를 찾아 읽는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큰 자부심을 느꼈었습니다.

  

김환기 : 「크리스찬리뷰」 61호(5년째 되던 해) 표지를 보면 ‘호주 교민의 신앙 교양 잡지’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구가 「크리스찬리뷰」의 핵심 가치를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ON(온라인)이든 OFF(오프라인)이든 이 잡지는 선교지입니다.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라 선교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글을 쓰고, 취재를 하고, 편집해야 합니다. 「크리스찬리뷰」는 지금까지도 영혼 구원과 더불어 교양과 역사, 사회적 이슈들을 함께 다루며 ‘사회 구원’의 지평을 넓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방향을 잃지 않고, 더 확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정성택 : 「크리스찬리뷰」가 지금까지는 호주 선교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많은 진실들을 발굴해 왔잖아요. 그런데 앞으로는 방향을 조금 바꿔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호주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한국이 문화 수출 강국이 되었고 선교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의 선교와 문화 콘텐츠를 호주로 ‘역수출’하는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도움을 준다기보다 새로운 선교 방식이나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전하는 흐름으로 트렌드를 바꾸어 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찬리뷰」가 이런 선교 콘텐츠와 문화적 자원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연구해서 호주 사회와 교회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동 : 제가 보기엔 「크리스찬리뷰」는 이미 호주 한인 사회와 한인교회의 역사 기록물입니다. 한 권 한 권이 곧 역사이고, 나중에는 ‘문화유산’으로 남아야 할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후세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게 됩니다.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선교와 이단 대처, 사회 참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 모든 것이 「크리스찬리뷰」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잡지가 종이로든 디지털로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단지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후세가 ‘역사 아카이브’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되고, 또 새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사회자 : 오늘 바쁘신 가운데도「크리스찬리뷰」 36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해 주시고, 귀한 의견들을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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