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항구 입구에는 여러 개의 절벽 지형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흔히 시드니 헤드(Sydney Heads)라고 부르며 항구로 드나드는 길목을 지키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북쪽에는 노스 헤드(North Head)가 있고 남쪽에는 사우스 헤드(South Head)가 있으며, 항구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들 헤드(Middle Head)가 있다.
노스 헤드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전망대와 바다 풍경이다. 파도와 바람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절경은 수많은 여행 블로그와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원래 노스 헤드(North Head)는 포병 기지(artillery base)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은 해안 포대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이곳은 포병 학교(school of artillery)로 사용되었다. 야포, 해안포, 대공포, 대전차포, 박격포 등 다양한 포병 교육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부대가 이전하면서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오늘날에는 다시 시민에게 열린 역사 공간으로 서 있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1시, 노스 헤드 병영(North Head Barracks) 투어에 참여하였다. 이곳은 시드니에 사는 교민에게도 시드니를 방문하는 여행자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연병장에서 보니
투어는 배럭스의 중심부, 넓게 탁 트인 연병장(parade ground)에서 시작되었다. 연병장에 서면 바람이 불어온다. 과거에는 그 바람 속에서 ‘훈련소의 구령’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그 위를 걷는 발걸음과 그 안에 담기는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군사적 긴장과 규율의 상징이었던 장소가, 오늘날에는 평화와 여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에 서는 것만으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질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지휘관이 나와 병력을 사열하고 복장과 자세를 점검했다고 한다.
안내를 맡은 빌(Bill)은 옛날에는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연병장 아래에 묻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곳은 일종의 상징적 성지로 여겨지는 공간이다.
연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다. 장교들이 식사와 모임을 하던 장교 지역, 부사관을 위한 부사관 지역 그리고 병사를 위한 지역들이 계급에 따라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다. 과거에는 치과와 병원, 차량과 대포를 정비하는 작업장, 교육용 교실까지 갖추고 있어 작은 군사 도시와 같은 구조를 이루었다.
군사 기지에서 시민의 산책길이 되기까지
노스 헤드 병영 일대는 오랫동안 호주 국방부 소유의 군사 지역이었다. 1998년까지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다. 군이 철수한 뒤 이 넓은 구역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고, 2001년에 연방정부 산하 기관인 하버 트러스트(Harbour Trust)가 이 지역 관리를 맡게 되었다.
하버 트러스트는 지역이 지닌 군사적인 의미와 자연환경의 가치를 함께 살리면서 천천히 시민에게 돌려주는 길을 선택했다.
이 지역의 역사는 17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영국에서 온 첫 번째 선단(First Fleet)이 시드니에 도착했다. 이 선단은 1787년 5월 13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출항하여 약 8개월 후인 1788년 1월 18일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도착했다.
선단에는 약 1천500명이 승선했는데 이 중에는 죄수, 해병대, 선원, 그리고 일부 자유 정착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선단은 총 11척으로, 군함 2척과 수송선 6척, 그리고 보급선 3척으로 구성되었다.
필립 총독이 탑승한 군함 HMS Sirius에는 여러 문의 대포가 실려 있었다. 이 대포들을 내려 지금의 시드니 하버브리지 인근에 설치되면서 ‘호주 포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동안 영국은 러시아와의 긴장과 크림 전쟁 등 여러 국제 정세 속에서 해군력과 포병력의 중요성을 절감하였고 시드니에서도 항구 방어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인식된 지역이다.
1930년경, 대공황 시기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재무장을 시작하였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며 세력을 확장한 시기이다. 일본의 만주 침공과 그 이후의 전개는 호주에게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다가왔고 ‘시드니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이 시기에 현재의 병영과 퍼레이드 그라운드(parade ground) 주변 건물들이 1935년 전후에 건설되었다. 이곳은 처음부터 보병 부대가 아닌 포병 기지로 설계된 군사 거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 지역은 해안 포대이자 포병 교육의 중심지로 사용된 곳이다.
전쟁 후 이곳은 포병 학교로 사용되어 야포와 해안포와 대공포와 대전차포와 박격포 등 다양한 포병 교육이 이루어진 교육 기관이었다.
모래 위에 선 숲 Eastern Suburbs Banksia Scrub
노스헤드가 특별한 이유는 군사 역사 때문만이 아니다. 이곳은 동시에 희귀한 생태계를 품고 있는 장소이다. 바로 ‘Eastern Suburbs Banksia Scrub’이라는 이름의 식생 공동체이다.
시드니는 ‘모래의 도시’라 불릴 만큼 모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숲의 가장 큰 특징은 모래 위에 형성된 생태계라는 점이다. 수천 년 동안 쌓인 모래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곳의 식물들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왔다.
영양분이 부족한 땅이지만 그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운 결과 지금의 독특한 숲이 만들어진 것이다. 생태계는 시드니 동부와 보타니만 인근에 일부만 남아 있고 그 마저도 대부분 사라져 현재는 멸종 위기 생태 공동체로 지정되어 있다. 노스헤드는 그 잔존지 중 하나이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나무를 만나게 된다. 울퉁불퉁한 열매가 달린 뱅크시아(Banksia) 나무이다. 빌은 어릴 적 읽던 동화 속에서 이 열매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 캐릭터의 얼굴로 등장했다고 이야기해 준다.
그 옆에는 노란 꽃이 피는 와틀(Wattle) 나무가 서 있다. 와틀은 호주를 상징하는 토종 나무 가운데 하나로, 같은 동화 속에서는 친절하고 따뜻한 존재로 등장했다고 한다.
또 다른 토종 나무인 멜라루카(Melaleuca), 일명 페이퍼바크(Paperbark)도 눈에 띈다. 나무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는 이 나무는 원주민들이 상처를 감싸는 붕대나 간단한 용기의 재료, 아기 기저귀로도 사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군사 이야기와 나무 이야기가 한 코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이 투어의 묘미이다.
작은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
노스 헤드를 걷다 보면 나무와 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을 위해 설치된 장치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어느 지점에서는 나무에 달린 작은 카메라를 볼 수 있다.
이 카메라는 밴디쿠트(bandicoot)라는 호주 토종 야행성 동물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설치된 장비이다.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발자국과 작은 구멍들이 그들의 존재를 말해 준다.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원 봉사자들이다. 어떤 팀은 토종 나무를 심고 어떤 팀은 동물과 도마뱀, 곤충들의 개체 수를 조사하고 또 어떤 팀은 잡초를 제거하고 쓰레기를 치운다. 가이드인 빌 역시 전직 교사이자 세계 여러 재난 지역에서 학교 재건 봉사를 했던 경험을 가진 자원 봉사자이다.
이제는 맨리에 살면서 노스헤드에서 방문객들에게 이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하버 트러스트는 국립공원, 환경 단체, 종교 단체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 지역을 함께 관리하고 있다. 예산과 인력이 항상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꾸준한 수고로 이곳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정비되어 가고 있다.
투어는 군사 훈련장으로 이어졌다. 벽을 넘고, 균형을 잡고, 흙탕물에 뛰어드는 장애물 코스가 남아 있었다. 빌은 “군인들이 체력과 팀워크, 리더십을 훈련하던 곳”이라 설명했다. 지금은 녹슨 흔적만 남아 있지만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은 과거 군인들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포대와 관측소, 그리고 숨겨진 지하의 이야기
조금 더 걸으니 넓은 운동장이 나타났다. 과거 군인들이 럭비를 즐기던 경기장이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소풍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며 웃음소리를 남기는 공간으로 변했다. 전쟁의 긴장과 스포츠의 열정, 그리고 오늘날의 평화로운 안식이 한 자리에 겹쳐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포대 관측소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요란한 건물이 아니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바다에 떠 있는 적함을 눈으로 관측하고 그 정보를 저 멀리 숲속 지하 10m에 위치한 플로팅 룸(plotting room)으로 전달하면 그곳에서 사거리와 각도, 탄도 계산을 마친 뒤 포대에 ‘발사’ 명령을 전달했다.
사정거리 약 26km의 대포 한 발이 적함까지 날아가는 데는 약 1분이 걸렸다고 한다. 그 1분 동안에도 적함은 계속 이동한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군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긴장과 부담이 조금은 느껴졌다.
빌은 우리를 포대 관측소(battery observation post) 안으로 인도했다. 관측소 안에는 오래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벽에는 적군과 아군의 함선과 비행기를 구분하기 위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이제 평화와 풍경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잔잔한 물결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고, 그 위를 스치는 바람은 고요함을 더했다. 전쟁의 기억을 품은 공간 안에서 바다는 인간의 갈등을 넘어선 자연의 평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빌과 나눈 한 끼, 그리고 조용한 기도
투어를 마친 뒤 우리는 빌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걷는 동안에도 꾸준히 노스헤드와 하버 트러스트 등의 이야기는 했지만 자신의 개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혹시 크리스찬이신가요?”
빌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성공회(Anglican Church)에 다녔다고 했다. 성공회 안에서 소위 ‘거듭난’ 기독교인의 경험을 했고 한때는 신앙이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영국인이고 지금은 이혼한 상태이다. 전 부인과 두 자녀는 영국에 살고 있고, 또 다른 한 자녀는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작년에는 스코틀랜드를 방문하여 영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났고 성 콜롬바(St. Columba)가 머물던 아이오나(Iona) 섬을 방문하여 많은 은혜도 받았다. 아이오나는 오늘날에도 ‘켈트 기독교의 요람’으로 불리며 성 콜롬바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이다.
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이제는 예전과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다고 했다. 성공회 안에서 받은 신앙의 유산을 고마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죄’에 대한 강조가 너무 강했다고 느꼈다고 했다.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직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죄의식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전통적 성공회 틀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켈틱 전통이 가진 포용성과 넓은 마음에 더 끌린다고 말했다. 사람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연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과 영성을 발견하는 길이 자신에게는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숲과 바다, 바람과 새소리 속에서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는 그의 눈빛에는 그만의 진지한 영적 탐색이 담겨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주문한 음식이 식탁 위에 놓였다. 나는 빌에게 “식사 전에, 잠깐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조금 놀란 듯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짧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우리에게 귀한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지금 노스 헤드에서 자원봉사자로 살고 있는 그의 새로운 삶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기도를 했다. 죄책감과 자기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는 간청도 함께 올려드렸다.
기도가 끝난 뒤 빌은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우리는 신학적 논쟁을 벌이지도 서로의 신앙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고, 그 삶을 위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
아직은 낯선, 그러나 꼭 소개하고 싶은 곳
노스 헤드 병영(North Head Barracks)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노스 헤드 전망대와 낭만적인 바다 풍경은 이미 여러 곳에 등장하지만 그 뒤편에 숨은 배럭스와 포대, 관측소, 그리고 모래 위의 숲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고 있다.
노스 헤드 병영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평화로운 산책길과 자연의 숨결을 선사한다.
이곳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함께 성찰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잘 알려진 관광지 사이에 하루를 비워 노스 헤드 병영을 찾아가 본다면 시드니에 대한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이곳은 시드니의 숨은 보석과 같은 곳이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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