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한 놀라운 과정은 흔히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러한 서사는 회복력과 야망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는 덜 화려한 진실을 감추고 있다. 바로 한국의 경제 성장은 상당 부분 인력 수출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이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한국은 절실히 필요한 외화를 벌기 위해 약 8,000명의 광부와 12,000명의 간호사를 서독으로 보냈다.
이들은 대개 젊고 고학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그들이 보낸 1억 달러가 넘는 송금액은 산업화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중동에서 일한 한국 건설 노동자와 베트남에서 복무한 한국 군인들의 기여 또한 한국의 초기 성장을 뒷받침했다.
아이러니는 실로 놀랍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87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해외에서 환영받으며 일했던 한국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선진국이 된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0.75)과 2070년까지 생산가능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등 전례 없는 인구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농업, 건설업 등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산업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이주민들에게 존엄성을 보여주기는커녕, 때로는 과거 해외에서 일하던 한국인 이주민들보다 더 가혹한 편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역전은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자국 이주 노동자들의 노고로 세워진 나라가 왜 자국 내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해답의 핵심은 필자가 '졸부적 민족주의(Nouveau-Riche Nationalism)'라고 부르는 현상에 있다.
졸부적 민족주의의 논리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이러한 형태의 졸부적 민족주의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적 성공을 반영하며 물질적 자긍심뿐 아니라 문화적 특권 의식까지 고취시킨다. 신흥 부자 민족주의는 한국 고용주들과 일부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문화적, 민족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정당성을 제공했다.
따라서 그들의 차별은 단순히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차별은 단순히 이윤 극대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월성을 전제로 존엄성을 부정하고 위계질서를 확립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인종 차별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등장한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인 '순혈주의'와 함께 작용한다.
순혈주의가 혈통을 중시하는 반면 졸부적 민족주의는 경제적 우월성이라는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이 두 가지 전통의 결합은 강력한 차별적 힘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는 민족적 순수성을 중심으로 선을 긋고, 두 번째는 외부를 바라보며 출신 국가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타인을 평가한다.
이 두 가지 전통은 이민 노동자, 외국인 신부, 다문화 가정 자녀, 심지어 북한 이탈 주민과 같은 '신한국인'들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여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신한국인들을 대거 받아들였지만 그들에 대한 대우는 환대보다는 위계질서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 거주자들은 종종 출신 국가의 GDP로 평가받는데, 이는 ‘신흥 부유층’의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지표다.
분석의 틀에서 현실로: 나주 지게차 사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2025년 2월 나주에서 발생한 이른바 '지게차 학대' 사건을 통해 섬뜩할 정도로 명확해졌다. 한국에 새로 도착한 31세 스리랑카인 노동자가 한국인 동료에 의해 플라스틱 랩과 벽돌로 지게차에 묶인 채 공장 마당을 5분 동안 이리저리 옮겨졌다.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인간을 굴욕의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 공장장은 이 사건을 '장난'이라고 정당화했는데, 이는 그러한 비인간화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변명이었다.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영상이 공개되자 전국적으로 분노가 확산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개입하여 해당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인권 침해라고 규탄했다. 노동부는 조사에 착수했고 활동가들은 나주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 사건을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충격적인 영상 증거가 있어야만 심각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사실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주 노동자의 고통은 충격적인 학대 사건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 전까지는 종종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게차 사건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다. 이 사건은 고용주에게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부여하여 노동자들이 이직하거나 착취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한국 고용허가제도의 취약점을 드러낸다.
또한 신흥 부유층의 민족주의가 조장하는 일상적인 특권 의식, 즉 '가난한' 국가 출신 사람들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다문화주의를 향한 투쟁
한국의 다문화주의로의 전환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외국인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4%를 넘어 다문화 사회를 정의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5% 기준에 근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여전히 포용보다는 노동 공급과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주 노동자는 다문화주의의 핵심 틀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다양성은 포용보다는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도구주의적 접근 방식은 구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없다면 이주민들은 은행, 주택, 교육 등에서 매일 편견에 직면하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불균형적으로 높아 2010년 7%에서 2019년 12.2%로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경제적 필요는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부정하는 체계적인 방치를 보여준다.
국민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61% 이상이 외국인 이웃을 '정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였지만 수혜자가 이주민일 경우 복지 혜택에 대한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영주권자에 대한 아동 수당 지급에는 거의 80%가 찬성했지만, 임시 근로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45%만이 찬성했다. 이러한 모순은 이주민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이들을 사회에 완전히 통합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주 지게차 사건은 '신흥 부자들의 민족주의'가 한국의 다양성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는 것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경제적 성취가 어떻게 오만으로 변질되어 번영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정당화하는지를 드러낸다. 순혈주의 민족주의와 결합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배제를 심화시키고 비인간화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한국은 피할 수 없는 인구학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인구 감소와 이주 노동에 대한 의존도 증가 속에서 한국은 도구적 다문화주의와 진정한 포용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는 상징적인 제스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법적 보호, 구조적 개혁,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통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한국은 외국인을 노동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동등하고 존중받는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과거 세계에 자국 노동자들을 존엄하게 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늘날 한국은 자국에 오는 이들에게도 같은 존중을 보여야 한다. 진정으로 포용적인 미래로 가는 길은 신흥 부자들의 자만심을 경제 성장만큼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보다 관대한 국가 정체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 글은 Flow Journal에 영어로 출판되었으며, 저작권을 소유한 저자의 허락하에 번역하여 게재함. www.flowjournal.org/2025/10/nouveau-riche-nationalism-and-the-politics-of-prejudice/〠
한길수|호주 모나쉬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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