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남북 공동응원에서 2026 AFC응원까지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6/03/20 [16:09]

▲ AFC 여자 아시안컵에 참가한 북조선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한 신준식 박사. 그는 응원을 통해 꽁공 얼어붙은 남북한의 정세가 바늘이 들어갈 구멍만큼이라도 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지길 소망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1989년 최초의 남북 공동응원

 

“그때 경기장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분단의 장벽을 잠시 넘어서는 가슴 벅찬 역사적 순간이었다.

  

1989년 3월 21일, 시드니 블랙타운 아이스 아레나(Blacktown Ice Arena)경기장.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 C풀 경기에서 남한과 북한이 맞붙었다. 이날 경기장에서는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약 1천500명의 한인 동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함께 응원을 시작한 것이다. 경기장에는 ‘아리랑’, ‘아리랑 목동’, ‘고향의 봄’,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여기에 ‘코리아!’라는 함성이 더해지며 경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태극기를 흔들던 관중들조차 어느 순간 그 깃발을 내려놓고 하나의 이름으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남도 북도 아닌 오직 ‘코리아’였다.

  

▲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빨간 유니폼) 선수들이 B조 3차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볼을 다투고 있다. ©AFC     

 

그날 블랙타운 경기장에서 울려 퍼진 이 합창은 단순한 스포츠 응원이 아니었다. 분단 이후 해외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남북 공동응원이었고 서로를 향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잠시나마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 역사적 장면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노동학 연구자이자 이민 노동 현장에서 활동해 온 그는 당시 시드니 한인 청년들과 함께 남북 공동응원단을 조직하며 분단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은 평화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37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다시 시드니에 서 있다.

  

약 5년 전, 그는 94세의 노모를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 곁을 지키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99세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AFC 여자 아시안컵에 참가한 북조선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1989년 시드니의 공동응원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스포츠는 때로 정치보다 먼저 사람을 하나로 묶습니다.”

  

1989년 시드니에서 울려 퍼졌던 ‘아리랑’의 함성은 그렇게 2026년 AFC 응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을 통해 세상을 배우다

 

그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의 청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 한 권의 책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1980년대 초 늦깎이 대학생이던 그는 우연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전태일 평전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이 책은 당시 많은 젊은이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신준식 박사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책을 밤에 읽었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도서관에 가지 않았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했던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이후의 인생을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경영학을 공부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과연 양심과 이 시대에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와 사회 현실로 향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시위와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노동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에서 만난 노사관계학 교수 탁희준이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노동문제 전문가였던 그는 학생들에게 노동 문제를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길을 제시해 주었다.

  

신준식 박사는 그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동과 노동문제를 제대로 공부해서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국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노동 문제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그는 유학을 결심했고 그 선택은 1987년 호주로 향하는 길로 이어졌다.

 

공동응원을 준비한 청년들

 

그가 호주 시드니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87년 11월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단순히 도서관 안에 머무르는 학생의 길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재오련)는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을 초청하여 환영 만찬회를 가졌다.©크리스찬리뷰     

 

시드니에 정착한 이후 그는 건설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며 이민 노동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 문제는 더 이상 책 속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마주하는 삶의 현실이었다.

  

언어와 제도의 장벽 속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그에게 단순한 연구 주제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시드니의 젊은 한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당시 그가 만나게 된 청년들은 ‘한국민족자료실’(Korean Resource Centre)을 중심으로 모여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자료를 나누며 시대의 과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조국 대한민국은 군부독재를 넘어 민주화의 격동기를 지나고 있었고 해외에 있던 청년들 역시 이러한 조국의 역사적 변화를 외면할 수 없었다. 시드니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연대가 형성되었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 북한 대표팀은 중국과의 경기에서 전반 32분, 김경영이 선제골을 넣은 후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팀은 중국에 1:2 역전패해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크리스찬리뷰     

 

특히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호주 방문은 이들의 활동을 더욱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시드니에서는 노태우 방문을 둘러싼 시위가 벌어졌고 그 역시 한국민족자료실 청년들과 함께 그 움직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서로 깊이 연결되었고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함께 조직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시드니에서 시작된 이 작은 청년 네트워크는 훗날 한인사회와 호주 사회에 의미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다시 시작된 응원, AFC 아시안컵

 

현재 호주에서는 아시아 여자 축구의 최고 권위 대회인 AFC 여자 아시안컵이 열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2026년 3월 1일부터 21일까지 호주에서 개최되며 아시아 12개국 대표팀이 참가해 아시아 챔피언을 가린다.

  

경기는 시드니, 퍼스, 골드코스트 세 도시의 다섯 개 경기장에서 진행되며 총 27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 대회는 아시아 여자 축구의 정상 팀을 가리는 동시에 2027년 FIFA 여자 월드컵 아시아 예선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국제대회이다.

  

기자 역시 권 발행인과 함께 여러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3월 3일 파라마타 웨스턴 시드니 스타디움(CommBank Stadium)에서 열린 북조선 vs 우즈베키스탄 경기에서는 북조선이 3대0으로 승리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3월 5일에는 권 발행인이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한국 v 필리핀 경기를 취재했다.

  

이어 3월 8일 시드니 올림픽파크 스타디움(Accor Stadium)에서 열린 한국 vs 호주 경기에서는 양 팀이 치열한 공방 끝에 3대 3 무승부를 기록했다. 또한 3월 9일 파라마타 웨스턴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조선 vs 중국 경기에서는 북조선이 아쉽게 중국에 2대1로 역전패 했다.

  

기자는 이처럼 여러 경기를 찾아다니며 현장의 열기를 직접 체감했다. 경기장 한쪽에서는 신준식 박사가 동포들과 함께 북조선 대표팀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 북한 대표팀을 응원하는 신준식 박사 ©크리스찬리뷰     

 

1989년 블랙타운 아이스아레나에서 울려 퍼졌던 공동응원의 기억이 37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축구 경기장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AFC 커뮤니티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경기장을 찾은 한인 동포들과 함께 응원의 의미를 나누고 있다. 그는 남과 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를 넘어 스포츠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적 연대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응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남쪽에서 오신 분이나 북쪽에서 오신 분이나 결국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응원도 정치적인 의미라기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응원하자는 취지입니다.”

  

▲ 호주 청년들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북한팀을 응원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 호주 청년들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북한팀을 응원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그는 자연스럽게 1989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 호주에서 열린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에서 남한과 북한, 그리고 호주가 같은 조에 속해 경기를 치렀다. 그 경기에서 시드니 한인 동포들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함께 응원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이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더 큰 의미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때 북한에서 온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경험이 이후 남북 체육 교류의 분위기에도 작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후 남북 체육 교류는 조금씩 이어졌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 단일팀,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 선수단이 함께 입장했던 장면까지 스포츠는 때로 정치보다 먼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1989년 시드니에서 시작된 공동응원은 2026년 AFC 경기장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조선과 중국이 맞붙은 경기에서도 한인동포들은 다시‘아리랑’을 목놓아 불렀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는 스포츠를 통한 교류가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스포츠가 만든 작은 평화의 기억

 

그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같은 자리로 불러 모으고, 때로는 정치와 이념의 경계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는 특별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AFC 북조선 응원을 통해 꽁꽁 얼어붙은 남북한의 정세가 바늘이 들어갈 구멍만큼이라도 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지길 소망한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치와 이념은 종종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그런데 스포츠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같은 자리로 모이게 합니다. 함께 응원하고 함께 웃다 보면 서로가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번 AFC 북한 응원을 통해 꽁꽁 얼어붙은 남북한의 관계가 다만 바늘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큼이라도 녹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1989년 블랙타운의 밤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이념과 정치로 나뉘어 있던 사람들이 한 경기장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같은 이름으로 북한 선수들을 응원했던 시간. 그것은 거창한 정치적 사건은 아니었지만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공동 환송회 역시 그의 기억 속에서 특별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시드니의 한인 단체들과 교회들이 음식을 준비해 선수들을 위한 작은 환송회를 열었고 남과 북의 선수들과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웨스턴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중국의 경기를 마친 후 열띤 응원전을 펼친 교민들과 함께(왼쪽 2번째가 신준식 박사).©크리스찬리뷰     

 

그 자리에는 정치도 이념도 없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만이 있었다. 특히 북한 선수들과 함께했던 마지막 밤의 송별회는 지금도 그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히 말한다.

  

“북한 선수들이 떠나기 전날 밤 우리가 음식을 준비해서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헤어질 때는 서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덩치 큰 선수가 ‘응원대장 동지, 우리 언제 다시 만납니까’라고 말하며 울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 장면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잠시나마 같은 마음으로 만났던, 작지만 진심 어린 평화의 순간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그러나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경기장에 서 있다. 한국에 머물고 있던 그는 이번 대회 소식을 듣고 보따리를 싸서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누구의 부탁도 아니었다. 단지 다시 한 번 그 응원의 자리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도 그는 경기장 한쪽에서 동포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1989년 블랙타운 아이스아레나에서 울려 퍼졌던 그 함성이 또 다른 세대의 경기장에서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는 여전히 같은 믿음을 이야기한다.

  

“정치나 이념은 사람들을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그보다 먼저 사람들을 같은 자리로 불러 모읍니다.”

  

1989년 시드니에서 시작된 그 응원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2026년 AFC 경기장에서도 ‘아리랑’노래는 다시 울려 퍼져 나갔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확신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거창한 정치가 아니라, 함께 노래하고, 함께 응원하는 그 작은 진심에 있다는 것이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Ph.D)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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