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여기 있나니...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사무엘상 12:3)
지난달 크리스찬리뷰의 지면을 넘기며 눈에 띈 것 하나가 늘어난 담임목사 청빙 구인 광고였다. 별 차이 없이 다 엇비슷한 구인 요건과 절차를 보며 이런 시스템이 바람직한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오늘은 떠나는 은퇴자의 뒷모습에 관해 나누고자 한다.
누구나 나이 들면 은퇴하고 새로운 인물이 와서 새 시대를 감당한다. 유사한 사례가 사무엘 12장에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사사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갈 때, 마지막 사사로 활동하던 사무엘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사울에게 넘기며 고별 설교를 한다.
그는 이 설교에서 자신이 어릴 때부터 늙어 머리가 희어진 오늘까지 백성들 앞에 출입하며 어떻게 선지자 직을 감당했는지 회고한다. 새 질서의 위험을 경고하며 하나님께 대한 변치 않는 순종을 강조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누가 물러가는 자의 아름다움을 규정하는가?
이 장면에는 '사무엘', '백성들', '하나님', '기름부음 받은 자'(사울)라는 4 주체가 등장한다. 각 주체는 사무엘의 삶을 자평, 타평, 확증, 목도하며 입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주관적으로는 사무엘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고, 객관적으로는 백성들이 '그렇다'고 증언하고, 어느 공간에나 계셨던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고, 다음 시간의 계승자가 목도한다. 물러가는 사무엘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국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사무엘은 강탈-압제하거나, 속이거나, 뇌물을 받지 않았다. 치환하면 그는 온유, 정직, 공정했다. 계몽된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이 정도는 지도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자세로 인식될 수 있으나 사무엘은 힘이 집중되는 제정일치 시대를 산 옛 인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이끈 장기 집권자였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는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라는 현대인의 누적된 경험치에 반할 뿐 아니라, 긴 집권기 내내 그가 고도로 청렴한 생활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실로 놀랍다.
나는 결혼 주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 있나요?' 이 말을 할 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도 누구에게 교육받지 못한 상황이고 지금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참사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식에서 이 질문을 생략하는 게 추세인가 보다.
요즘 교회에는 감추려는 비밀 문화가 자리 잡아 가는 듯해 안타깝다. 안에서는 덮는 사랑으로 잘 포장해 큰 허물을 감쪽같이 감춰버리고 밖으로는 과장하여 선전하고픈 덕을 핑계 삼아 작은 선행이라도 한껏 부풀려 드러내놓고 자랑하면서 퇴임 식장에서 뻔뻔한 얼굴로 떳떳함을 주장하는 일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감추는 것 없이 드러내 놓고 공적으로 떳떳함을 인정받아야 떳떳한 것이다.
모든 사역자의 진퇴가 사무엘의 경우처럼 명명백백하게 투명했으면 좋겠다. 식장이나 순서를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하지 말고, 모두에게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할 때 '당신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라고 증언하는 삶의 서사가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리였으면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잘 먹고 잘 입고 잘 거주하려는 의식주에 대한 염려나 욕심부터 내려놓고 사역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단의 물질, 명예, 권세의 유혹을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친 후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셔서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충실히 걸어가셨다.
이런 기본이 안 된 자는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고, 혹 따르는 길에서 벗어났다면, 즉시 그만둬야 한다.
단지, 노상에서 힘들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거나 지쳐 쓰러졌다면, 동행하시는 주님의 손 붙들고 다시 일어나 당신이 달려갈 길을 마치도록 하라.
이것이 후계자 없이 자신을 따르는 제자만 남기셔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의도하신 참 하나님 참 사람 예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서을식|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