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시작, 수메르 문명과 성서 XXIII

주경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6/03/20 [16:23]

▲ 기원전 1757년경 니푸르에서 작성된 주택 매매 계약 점토판     

 

인류 최초의 학교 — 점토판의 집 ‘에둡바’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수메르 사회가 계약과 약속을 점토판에 기록하며 관계를 관리하는 문명으로 발전했음을 살펴보았다. 법과 계약이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점차 문서에 의해 운영되는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기록을 읽고 쓰는 사람들, 즉 서기관(scribe)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서기관을 길러내기 위해 등장한 곳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형태의 학교, 에둡바(edubba)였다.

  

수메르어로 에둡바는 문자 그대로 “점토판의 집” (House of tablets)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오늘날의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으로, 주로 행정 중심지였던 니푸르(Nippur)같은 도시에서 운영되었다.

  

니푸르에서 발굴한 수많은 점토판 가운데 상당수는 학생들이 글자를 연습하거나 문장을 반복해 베껴 쓴 학습용 점토판으로, 수메르 사회가 이미 체계적인 교육 제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에둡바에서 학생들은 먼저 설형문자(cuneiform)를 배우며 교육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단어 목록을 반복해 베껴 쓰거나 간단한 문장을 필사하는 연습을 했다.

  

이후 숫자 계산과 행정 문서 작성, 계약 문장, 법률 문구 등을 배우며 점차 복잡한 기록 업무를 익혀 갔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문자 학습이 아니라 행정·경제·법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니푸르에서 발견된 점토판 가운데에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묘사한 흥미로운 기록도 남아 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에 소개된 한 점토판은 흔히 “학교의 하루(Schooldays)”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은 한 학생이 하루 동안 학교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했던 일, 숙제를 검사받는 장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이 기록은 수천 년 전 수메르 학생들의 삶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에둡바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서기관이 되었다. 서기관은 단순한 필기자가 아니라 고대 도시 국가의 행정과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인력이었다.

  

왕의 명령을 기록하고 세금과 재산을 관리하며 계약서와 법적 문서를 작성, 보관하는 일까지 맡았다. 문자와 기록을 다루는 능력은 곧 지식과 권력을 의미했다.

  

이처럼 수메르 사회에서 학교와 서기관 제도는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장치였으며, 기록 문화 역시, 교육 제도와 전문 지식 계층이 함께 만들어 낸 문명적 성과였다.

  

성서에서도 기록과 교육의 전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약에서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에스라 7:6-10)으로 소개되며,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느헤미야 시대에는 서기관 에스라가 백성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설명하여 공동체가 말씀을 이해하도록 했다.(느 8:8)

  

이러한 기록과 교육의 전통은 고대 사회에서 법과 신앙을 보존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물론 수메르의 서기관 제도와 성서의 전통은 종교적 배경은 다르지만 기록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공통된 역사적 흐름을 보여 준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알파크루시스대학 교수(Ph.D)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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