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뉴질랜드 남섬 퀸즈타운(Queenstown)으로 향했다.
크리스찬리뷰 권순형·권옥주 발행인 부부, 장경순 목사, 그리고 필자 등 네 사람의 동행이었다. 일정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인연과 신앙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퀸즈타운에서 머문 로뎀트리하우스는 이번 여정의 출발점이자 은혜의 자리였다. 호스트인 정상봉 장로와 권정윤 집사는 장경순 목사와 40년을 함께한 친구로, 시드니 이민 초기 믿음을 나누며 함께 걸어온 동역자들이다.
젊은 부부들의 모임이었던 디모데 선교회를 통해 말씀과 삶을 나누고 낯선 이민 땅에서 서로를 붙들어 주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때는 모두가 젊었고 미래는 불확실했지만 믿음만큼은 분명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빛이 늘었지만 그 시절 함께 드렸던 기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대화는 추억을 넘어 감사의 고백으로 이어졌다. 돌아보니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결국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낯선 땅에서 신앙으로 서로를 붙들며 청년의 시간을 보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도 또렷했다.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관계는 쉽게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아침, 스카이라인 곤돌라에 올라 퀸스타운을 내려다보았다. 와카티푸 호수는 잔잔했고, 산들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장엄한 풍경 앞에서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왔다.
“자연은 하나님의 질서를 보여준다.”
산의 능선과 호수의 곡선 하늘과 물의 경계는 어지럽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는 조화가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그 장면을 담았다.
사진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그 질서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감사가 조용히 마음에 쌓여갔다.
점심 때 찾아간 퍼그버거 (Fergburger)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뉴질랜드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라는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오랜 대기의 기다림 끝에 얻은 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풍부한 육즙과 균형 잡힌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 그 안에 섞여 있던 한국인 여행객들의 반가운 얼굴들까지 여행의 생동감이 그곳에 있었다.
오후에 찾은 아름다운 작은 호숫가 마을 글레노키(Glenorchy)와 알프스처럼 웅장한 산맥과 비현실적인 호수가 펼쳐니는 아이센가드 전망대(Isengard Lookout)는 한층 고요했다. 넓게 펼쳐진 평원과 천천히 흐르는 강, 그리고 그 위를 덮은 푸른 하늘.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지로 알려진 장소이지만 우리에게는 묵상의 자리였다.
한참을 서서 풍경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들었다. 구름과 물,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작은 인간의 모습이 한 프레임 안에 담겼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여백이 넓어졌다.
셋째 날,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규모였다. 사진으로 보던 장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바다 위에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고 산허리에는 운무가 천천히 차올랐다.
절벽은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었고 공기는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암벽은 짙은 색을 띠며 더욱 깊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맑은 날의 선명함과는 다른 무게감 있는 풍경이었다.
밀포드사운드 크루즈(Milford Sound Cruise)가 물살을 가르며 출발하자 절벽은 점점 가까워졌다. 구름은 산을 완전히 가리지 않고 허리를 감싸듯 머물러 있었다. 비 덕분에 폭포는 더욱 풍성했다. 굵은 물줄기와 가느다란 실폭포가 곳곳에서 쏟아져 내렸다. 낮게 울리는 물소리는 공간을 더 크게 느끼게 했다.
수면은 회색 하늘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절벽의 그림자는 먹빛처럼 번져 있었다. 카메라로는 그 스케일을 온전히 담기 어려웠다. 광각으로도 부족했고 망원으로는 호흡이 사라졌다. 결국 몇 번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비를 맞으며 바라보았다.
그날의 밀포드는 화려하기보다 깊었다. 운무 사이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산의 윤곽은 숨을 고르는 듯했다. 우리는 관람자가 아니라 그 공간에 잠시 들어와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폭포가 많아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웅장해지는 모습 속에서 무질서가 아닌 더 큰 질서를 보았다.
배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말을 아꼈다. 빗방울을 털어내고 렌즈를 닦으며 다시 셔터를 눌렀다. 자연의 크기 앞에서 인간은 작아졌지만 그 작아짐 속에서 하나님의 크심은 더욱 선명해졌다.
고어(Gore)를 거쳐 더니든(Dunedin)과 모에라키 볼더스 해변(Moeraki Boulders Beach)으로 이어진 일정은 또 다른 묵상의 시간이었다. 해변에 놓인 둥근 바위(거인의 구슬, 거대한 공룡알으로도 불린다)들은 수천 년의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결과였다.
바위 표면에 남은 미세한 균열과 물자국은 세월의 흔적이었다. 우리는 낮은 자세로 앵글을 잡고 바다와 하늘, 바위를 한 프레임 안에 담으려 애썼다. 반복과 인내가 만들어낸 형상은 신앙의 여정을 떠올리게 했다. 눈에 띄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블루 펭귄을 볼수 있다는 오아마루(Oamaru). 블루 펭귄은 낮 시간 동안에는 바다에서 지내다 해가 지면 서식지로 오기 때문에 밤에만 펭귄을 볼 수 있는 펭귄 쇼도 저녁에 시작하는데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는 방침에 따라 우리는 펭귄을 보러가는 일정을 취소했다.
오아마루는 숨은 진주와도 같은 도시였다. 도시 한켠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간직된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밝은 석회암 건물들은 부드러운 색감을 띠고 있었고, 아치형 창문과 세심한 장식은 옛 항구 도시의 자부심을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돌길 위에는 비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 잔잔히 번졌다. 작은 상점의 창문 안에는 오래된 책과 수공예품이 놓여 있었고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렸다.
우리는 그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몇 번이고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치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우리가 한 장면 안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는 소리가 낮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행이 아니라 잠시 다른 시대를 방문한 듯한 기분이었다.
폭우를 뚫고 도착한 마지막 목적지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회복의 여정 위에 서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보타닉 가든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반면 2011년 지진의 여파로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대성당 광장은 도시가 회복의 과정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세워지는 구조물을 보며, 완성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세워지는 도시의 모습은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떠올리게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섬의 풍경이 하나씩 떠올랐다. 산과 호수, 바다와 거리, 그리고 그 안에서 나눈 대화들. 이번 여행은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은혜로 기억될 것 같다.
40년 전 디모데 선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던 믿음이 여전히 삶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워가고 계신다는 확신.
남섬의 자연은 우리에게 크기를 보여주었고, 오랜 인연은 깊이를 보여주었다. 그 모든 순간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질서를 믿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알고 있다. 여행은 끝났지만, 은혜는 계속되고 있다. 〠
김신일|본지 사진기자 권순형|본지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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