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Philippi)

좌충우돌의 성지순례(11)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10/28 [15:23]

‘빌립보’로 출발하기 직전 ‘아덴’에서 ‘날개 없는 천사’를 만났다. 10개월 전 교직을 그만두고 세 자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분이다. 부부가 함께 현직 교사였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보답할 길을 찾던 중, 오래 전에 품고 있었던 작은 빛을 발견하게 된다. 현행 교육제도의 모순을 개선한‘대안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다른 세상을 알기 원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딸은 많은 갈등 끝에 자퇴를 결정하고,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 계획으로 장도(長道)의 길을 떠났다.  

▲ 빌립보감옥     ©김환기

내가 그분들을 만났을 때는 이미 10개월이 지났다. 남쪽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를 방문했다고 한다. 출발할 때는 아빠가 여행 일정을 주관하였으나, 이제는 큰딸이 목적지, 머물 장소 그리고 비행기 예약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는 더 이상 출발할 때의 ‘숙맥’이 아니라, 좌충우돌의 여행을 통해 리더로 성장하고 있었다.

 “목사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이집트도 가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저희도 산토리니 섬에 갔다가, 이집트를 가려고 해요” 그리고 아이는 나에게 비행기 표를 싸게 사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알려준 주소인 www.kayak.com을 검색하니 300여개의 비행기 표 가격을 동시에 비교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데살로니가’에서 출발하는  ‘카이로 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리스 여행 일정도  ‘빌립보 - 네압볼리 - 데살로니가’ 순서로 바꾸었다.  바울 당시 강성했던 ‘빌립보’는 지금은 기차조차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변했다. 나는 어쩔 수없이 ‘드라마’(Drama)까지 기차로 간 후, 빌립보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아덴’에서 ‘데살로니가’까지 500Km 이고, 150Km를 더 가면 ‘드라마’(Drama)이다.  자정이 지난 야간열차 안은 그리스 군인들로 시끌벅적했다.   

 
빌립보 (Philippi)

 
▲ 빌립보     ©김환기

성경에서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며 로마의 식민지’(행 16:12)라 소개된 이곳은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2세가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명명했다. 필립 2세가 암살되고 그 뒤를 이은 ‘알렉산더 대왕’은 도시를 증축하고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넘어간 후 주전 27년 빌립보는 로마의 한 도시로 편성되었다. 빌립보(Philippi)는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된 최초의 땅으로 바울 시대에는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마게도냐 지방에서 큰 도시였다. 

빌립보 유적지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경계로 바실리카 A지역과 바실리카 B지역으로 구분된다. 바실리카 A지역에는 야외극장과 바울의 감옥 등이 있다.  바실리카 B 지역은 과거의 웅장한 유적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대규모 유적 발굴 및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사 현장 간판에는 그리스 국기와 함께 EU기가 그려져 있다.  발굴 작업의 결과 극장과 목욕탕, 그리고 기원전 4세기에 건설된 시장 등 많은 유적들을 비롯하여 그리스의 신들과 애굽의 신 ‘아이시스’(Isis)를 섬기던 신전과 많은 성곽들을 발굴해 냈다고 한다. 공사 현장에는 저들이 하는 일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물들이 사정없이 흩어져 있었다. 

 
빌립보 교회 (Philippi Church)

 
▲ 바울기념교회     ©김환기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성령이 막아 가지 못했고,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으나 역시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다. 바울은 에게해 항구인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을 환상으로 보았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에게해를 건너 ‘네압볼리’(neapolis)에 상륙한 후(행16:11),  그곳에서 16Km 정도 떨어진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인 ‘빌립보’로 갔다. 기도처를 찾던 중 강가에서 자주 장사를 하는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를 영접한다.  세례터에는 흰 푯말을 세워 기념해 놓았고, 바로 옆쪽에 루디아 기념교회를 지어 놓았다.  그녀의 집에서 유럽 ‘최초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3차 전도여행 때도 두 번씩이나 방문했고, 그곳 성도들은 사도 바울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었다(빌 4:15~18).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편에 물질을 전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살아나 다시 빌립보로 돌아갈 때 그 편에 전한 편지가 ‘빌립보서’이다.  옥중에서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4장 뿐인 서신 안에 ‘기뻐하라’라는 단어가 수 없이 나오고 있다. 

“주안(In the Lord)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뿐이 없다.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밖(out of Christ)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상황에 관계 없이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그래서 ‘옥안’에 있는 바울이 오히려 ‘옥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옥안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빌립보 감옥 (Philippi Prison)

 
▲ 빌립보교회     ©김환기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그 여종은 점을 쳐 주인들을 크게 이롭게 하던 자였다. 그가 바울 일행을 좇아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16:17)하며 여러 날을 소리 질러 괴롭게 하니 바울이 귀신을 명하여 그 여자에게서 즉시 나오게 했다.

이에 자신들의 이익이 끊어진 것을 본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원에게 끌고 가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행16:20-21)고 송사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바울과 실라가 갇힌 몸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렸다.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자결하려 할 때, 바울이 그를 말리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는 말씀을 전해 간수와 권속들이 다 세례를 받고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다.  감옥에서 울려 퍼진 찬송은 옥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간수의 영혼까지 열게 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상관들이 부하들을 보내어 나가라고 하였으나,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행16:37) 호통을 치며 못 나간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상관이 직접 와서 제발 나가 달라고 부탁하자 그제야 바울이 감옥에서 나갔다. 

바울이 있었던 감옥 내부를 살펴보니 서너 사람이 누울 정도의 공간에 천장이 무너지지 않게 나무기둥이 받쳐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유럽에 복음이 처음 상륙한 지역인 ‘네압볼리’이다. ‘네압볼리’는  ‘빌립보’에서 16Km 떨어졌으며, 현재 지명이름은 ‘카발라’(Kavala)이다.〠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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