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 바디매오가 바로 나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2/27 [11:57]
예수가 여리고로 갈 때였다. 길거리에 앉아 있던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군중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는 그가 간다는 것이다. 예수라면 그들의 눈을 뜨게 할 게 틀림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중이 웅성대는 쪽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예수님, 저를 도와주세요. 예수님, 불쌍한 인생입니다.”
 
“살려 주세요 예수님, 제발”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악을 썼다.
 
“좀 조용해요, 입을 다물란 말이요.”
 
사람들이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님, 예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발”
 
말릴수록 그 자리에서 더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눈물이 흘러넘쳤다. 보이지 않으니 갈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리치는 것 뿐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는데 갑시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낡은 겉옷을 바닥에 두고 그의 손을 잡고 갔다.
 
“저에게 원하는 게 뭐죠?”
 
예수의 음성이 들렸다. 목소리에서 나오는 신령한 기운이 아침 안개 같이 그의 가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정말 저는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려서 살던 마을이 갑자기 그의 시야에서 안개가 끼듯 없어져 버렸다. 파란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 그리고 들에 핀 보랏빛 풀꽃을 한번 보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았다. 예수는 그 세상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당신의 믿음이 낫게 할 겁니다”
 
예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순간 밝은 빛이 그의 눈을 찌르고 들어오면서 세상이 펼쳐졌다.(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
 
오늘 새벽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갑자기 울컥했다.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던 소경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뻔히 눈뜨고 본다고 살아왔지만 진정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던 소년시절 바로 옆에 밝고 환한 교회가 있었는데도 그걸 볼 눈이 없고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어 구석방에서 춥게 지냈다. 청년이 되어서는 세상이 먼저였다.
 
탐욕과 출세욕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이 옛날 사진첩의 흑백사진 같이 죽어 있었다. 더러 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외눈박이 편견이었다. 미움과 증오의 눈이었다. 시기와 질투의 렌즈였다. 관념으로 세상을 봤다. 이데올로기의 한쪽 사상으로 판단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소경이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멀찌 감치서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젊은 시절 서로 가시같이 부딪치고 감정이 상했던 인물이었다. 경쟁의식과 시기가 그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의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은 혐오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나를 마귀같이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순간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저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주소서.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고백했다. 예전에 제가 잘못한 게 많다고. 참회한다고. 그는 순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의 눈에서 살피는 기색이 없어지고 양같이 변하고 있었다. 성령이 그의 마음을 움직여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 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다.
 
커피 두 통을 사가지고 두 사람은 서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가장 어렵고 힘든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인생 저녁이 오면 모두 같아지고 의미가 상실되는데 젊은 날 왜 엉뚱한 걸 갈구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환갑이 넘은 지금 늦었더라도 눈이 열려야겠다. 성경 속의 소경처럼 적극적으로 소리쳐야겠다. 내가 먼저 다가가 참회하는 게 사랑임을 알게 해 달라고.〠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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