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에 대한 회개?

원광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3/27 [12:01]

2017년 1월 18일, 영국의 시사 잡지 “가디언”(Guardian)에 이례적인 글이 실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영국 국교회(앵글리칸 교회)의 최고위급 인사들인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Justin Welby)와 요크 대주교 존 센타무 박사(Dr. John Sentamu)의 논평으로써,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이 범한 죄에 대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은 전 세계 기독교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가디언 지는 “영국 국교회의 대주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개혁의 분열에 대해 회개할 것을 촉구하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웰비와 센타무는 그 문제의 논평에서,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수도원 정문에 95개조문을 내건 사건으로 시발된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가 큰 유익을 얻었다고 평가하면서, “은혜의 복음에 대한 명확한 선포,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평신도들이 세상과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점” 등을 실 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을 분명히 명령하셨는데, 다섯 세기 전에 이것을 거역함으로써 교회의 하나 됨에 항구적인 해(害)를 끼치게 된 사실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 혼란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싸움을 벌여서 수많은 이들이 박해를 당하였고 동일한 주님을 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이들을 죽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면서 또한 분열의 상태를 영구화하는 데에 우리도 기여했음을 인식하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회개의 자세를 갖고 다른 교회들에게로 나아가며 그들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목표를 갖고 행동하는 데에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논평은, 물론 이해할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하는 지극히 편향적인 사고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으며, 특히 종교개혁의 놀라운 역사의 직접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필자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 더욱 반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개개인으로서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얼마든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국교회의 최고위 인사들이 공식적으로 이런 논평을 낸다는 것은 바로 그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그러하다는 뜻이기에 더 더욱 우려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의아스러운 것은, 종교개혁이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이들의 인식입니다. 우선 명확히 해야 할 점은,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문을 내걸 때에 교회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그렇게 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새로이 발견한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근거로 바라볼 때에, 기존의 로마교회가 모든 면에서 그 순전한 복음을 저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대적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워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시도했고, 그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교황 제도라든지, 교회 직분의 완전한 상하계급제라든지, 마리아 숭배 행위 등의 각양 이슈들에 대해서는 아직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고 고백해야 할 신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순전한 복음의 문제에서 교회가 완전히 그릇 가고 있었고, 그 점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편에서는 교회라는 조직체의 당위성은 오직 순전한 복음의 선포와 가르침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터 위에 존재하는 것이요 또한 그 복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다른 것이 그 복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결국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로마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가 개혁의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처단함으로써 기존의 그릇된 상태를 영속화하고자 하는 자세로 일관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과연 무엇입니까? 교회라는 간판이나 조직, 그리고 세력이 있으면 무조건 다 교회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교회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여러 정황에서 분명히 천명하는 대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고전 15:3-4)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진리들을 명확히 세우고 그것을 가감없이 순전하게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첫째가는 사명이요, 그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명확히 깨닫고 그 복음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움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심으로 노력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의 영국 국교회의 최고위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그러한 순전한 노력을 회개하여야 할 죄로 간주하고 있으니, 과연 이 교회가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이 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을 과연 믿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복음의 유일성을 믿지 않는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은혜의 복음의 명확한 선포”가 이루어졌음을 이들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이 그저 말뿐이라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 국교회를 대표해서 그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이 논평의 내용대로라면, 이 두 분이 로마 교황을 만나 영국 국교회를 대표하여 과거에 저지른 분열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영국 국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에게 다시 복속시켜 교황의 휘하에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분열시킨 사실이 회개할 일이라면, 그 분열을 종식시키고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문제의 핵심은, 오늘날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누리는 일을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고 있고, 그와 관련한 문제를 무시해버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비단 영국 국교회의 두 성직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 교회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에 관한 것입니다. 나도 언제든지 이와 관련하여 오류를 범할 소지가 있음을 깨닫고, 바른 성경적인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진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

원광연|주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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