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의 유언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4/24 [10:22]
필자의 개인법률사무소로 78세의 부자노인이 찾아왔다. 철강회사의 사장이었던 그는 재벌그룹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이제 살 날이 잘해야 6년 정도라고 추정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수명이 그러니 자신도 그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금 같이 귀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심한다고 했다. 명문고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부인도 명문대 교수였다. 그는 불러주기만 하면 크던 작던 어디든 찾아가 강연을 한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이 다 크고 공허만 남은 사오십대 주부들을 상대로 할 때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신의 얘기를 듣는 걸 보면 기쁘다고 했다. 자기가 전하는 말의 씨가 그들의 영혼 밭에 던져졌다가 훗날 싹이 트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했다. 사랑을 배달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명동에 낡은 외투를 입은 영감이 나타나 자선냄비에 봉투를 넣고 사라졌다. 봉투에는 억대의 수표가 들어있었다. 그 영감은 꽃마을에 트럭을 몰고 나타나 수십 가마의 쌀을 내려놓고 갔다. 그는 꽃마을에 백억 원 가량을 내놓았다. 그 얼마 후 그는 한 방송사에 수백 억을 기부하고 소식이 끊겼다.
 
우연히 그의 삶을 알게 됐다. 부두노동자였던 그는 중년에 돈의 신을 만났다. 사는 땅이나 주식마다 천만 배 값이 올랐다. 그러나 가난할 때 살던 버릇은 고칠 수 없었다. 대중음식점에 가서도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긴 소주병을 슬며시 가져다 남은 술을 따라 마셨다. 은행에 천 억대의 돈을 예금했어도 은행에서 선물로 보내는 굴비를 보면 입이 활짝 벌어졌다.
 
그는 은행직원이 선물하는 허연 수염의 미국 영감 통닭을 좋아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그는 그렇게 불렀다. 그에게 어느 날 죽음의 신이 찾아왔다. 고치기 힘든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 그는 회한이 일었다. 스쿠리지 영감같이 살아왔던 그는 주위와의 관계맺음에 실패했다. 가족과도 냉냉한 사이였다.
 
평생 번 돈을 다 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는 병원에서 돈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의 눈물을 보았다. 마음이 변한 그는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낡은 코트 주머니에 수표를 넣은 채 세상으로 나섰던 것이다. 바람 부는 쓸쓸한 그의 묘지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가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다.
 
스마트 폰에 미국부자 스티브 잡스의 글이 날아들었다. 생명연장 장치에서 반짝이는 녹색불빛과 기계음 속에서 죽음을 느끼며 그는 사회적인정과 부는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부자에게 부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익숙한 사실일 뿐이라고 했다.
 
생을 유지할 적당할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의 기억만이 저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진정한 부라고 했다. 살아서는 돈과 지위가 사람을 갈라놓아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김영삼 대통령도 죽고 이건희 회장도 생명 연장 장치가 달린 침대 위에 소리 없이 누워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반목과 대립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성숙한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은 우리에게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선사했다고 스티브 잡스는 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소풍 와서 사랑의 기억을 선물로 싸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