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아닌 중심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8/28 [10:50]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외모를 봅니다. 아니, 외모만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란 말까지도 생겨났습니다. 
 
‘외모지상주의’란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으면서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 풍조를 말합니다. 2000년부터 한국에 퍼지기 시작한 소위 ‘루키즘’(lookism)도 같은 의미입니다. 
 
꽃거지와 얼짱
 
최근에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사람을 차별하는 요인 가운데, 인종, 성별, 종교, 이념과 함께 ‘외모’를 새로운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외모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외모지상주의를 넘어서 외모제일주의, 외모최고주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꽃거지', '얼짱도둑' 등 외모에 대한 신조어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사실 거지나 도둑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생기고 예쁘다는 이유로 거지와 도둑에게도 호감을 갖고 '꽃거지', '얼짱도둑'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첫 인상부터 편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일명 외모로 인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인트 안셀름 대학 심리학과에서는 외모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의재판을 했습니다. 어떤 가게에 절도 사건이 일어났고, 두 명의 여성이 피의자로 기소되었습니다. 총 72명의 배심원 중 36명의 배심원 앞에는 외모가 매력적인 여성이 피의자로 섰고, 다른 36명의 배심원 앞에는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 피의자로 섰습니다.
 
여러 차례 모의 재판을 한 결과 평범한 외모를 지닌 여성 피고인을 유죄라고 판결한 배심원은 평균 19.5명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매력적인 여성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낸 배심원은12.9명에 그쳤습니다. 약 일곱 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외모는 경제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다니얼 해머매시와 제프 비들은 외모의 아름다움과 경제적 능력과의 상관성을 알아보았습니다. 조사 결과, 평균 이상의 잘생긴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평균 수준의 보통 외모를 지닌 사람들보다 5% 정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고, 못생긴 외모를 지닌 사람들보다는 소득이 10~25%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사회풍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은 심각한 외모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리쿠르트 회사가 1,264명의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 무려 98%가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이들을 뽑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 584명 중 94%가 채용시 ‘외모를 고려한다’고 밝혔습니다. 둘 다 90%가 넘는 대단한 수치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정말 예쁘면 뭘 해도 용서가 되고, 못 생기면 뭘 해도 죄가 되는 외모제일주의 시대의 씁쓸한 단면들입니다. 이 세상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 하나님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을 했습니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왕을 뽑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해,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새에게는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온다는 소식에 아들들의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준비시키고 모이도록 했습니다. 이제 한 사람씩 사무엘 선지자 앞으로 나아갑니다.
 
제일 먼저 이새의 맏아들인 엘리압이 사무엘 선지자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사무엘이 보니 그 외모가 대단했습니다. 첫 눈에 보기에도 엘리압의 외모가 왕이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마음 속으로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여기에 있도다’라며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은 엘리압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 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엘리압의 용모와 키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압의 용모와 키를 본다면 누구라도 왕의 재목이라고 여겼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조차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의 외모가 그만큼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아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아차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뽑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외모가 출중하지 못해서, 그의 키가 남보다 작아서 버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의 외모는 이스라엘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 9:2).
 
이스라엘 땅에서 사울보다 더 준수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키도 컸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보다 어깨 하나 만큼 큰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만 본다면 이스라엘에서 사울을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의 중심이 타락하고, 사울 왕의 중심이 의롭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의 중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는 잠시 그 사실을 잊었던 것입니다. 엘리압이 선택되지 못하자 그 다음 아들들이 차례대로 사무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일곱 명의 아들들이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누구도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의 대답이, 막내 아들 다윗이 있긴 한데 지금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새가 보기에 다윗은 왕의 재목도 아니었을 뿐더러 집 안에서조차 하찮고 별볼 일이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을 뽑는 그토록 중요한 날에도 다윗은 멀리 초원으로 나가 양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외모로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윗은 형들과 달리 아직 소년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은 전투에도 능하고 무술도 뛰어나야 하는데, 다윗이 하는 일은 들에서 양이나 치고, 시를 짓고 수금을 타며 밤낮 노래만 부릅니다. 누가 봐도 다윗은 왕의 재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그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생각으로 충만했습니다. 수많은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자다”라고 하실 만큼 그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외모를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스펙을 보고 조건을 보고 선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만 보십니다. 그의 중심, 중심만 보십니다.

우리가 외모가 아닌 중심이 아름답고, 외모가 아닌 중심이 진실되고, 외모가 아닌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실 것입니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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