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사람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0/23 [11:22]
맛있는 음식은 향기부터가 다릅니다. 좋은 향기는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듭니다. 하지만 썩은 음식은 어떻습니까? 악취를 풍깁니다.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향기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몸에 뿌리는 향수의 종류와 품질 때문이 아닙니다. 인격 때문입니다.
 
향기 나는 사람, 바나바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480km 떨어진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해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인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교회에 첫번째 담임 목회자를 파송하는데 얼마나 고심을 했겠습니까? ‘누구를 보내야 할까? 어떤 사람이 가야 하나?’ 열두 사도들을 비롯하여 성도들은 함께 기도하고 또 회의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디옥으로 파송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왜 바나바였을까요?
 
흔히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설교입니다. 교회도 설교 잘하는 목사를 원합니다. 설교 때문에 교회를 옮겨다니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90%는 설교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설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이게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바나바를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착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로 파송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 고상하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나바는 향기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
 
그러면 대체 바나바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을까요?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6-37).
 
이 구절은 성경에서 바나바를 처음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본래 요셉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 요셉을 일컬어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왜? 바나바의 뜻이 ‘위로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예루살렘교회는 자신의 소유와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유무상통의 공동체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기의 집과 밭을 팔아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밭을 팔아 교회에 나눈 사람들 가운데 유독 바나바의 이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나바를 통해서 즉 바나바가 나눈 소유를 통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도움과 위로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요셉이 한두 번 그런 나눔을 행했거나 체면치례로 도움을 주었다면 결코 바나바라는 별명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두 번 정도 해 가지고는 위로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자주, 필요할 때마다, 가난한 교인이 생길 때마다 그는 자기 소유를 나누었고, 또 상처 입은 성도들을 찾아가 따뜻한 말로 위로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했기 때문에 위로의 아들, 바나바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사울을 찾아간 바나바
 
안디옥에 온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습니다. 안디옥에서 다소까지의 거리는 약 160km로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울을 찾으러 갑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사울은 제자들과 사귄 후에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이 사울을 일단 다소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사울을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3년, 5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사울을 찾지 않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10년입니다. 사울은 분명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소로 피한 것도 예수님을 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울은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사울을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울이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해도 10년을 무명의 세월로 보낸다면 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렇게 다소에서 외롭고 상처받고 버림받고 황폐해진 사울을 바나바가 찾아갔습니다. 꼭 10년 만입니다. 10년 만에 자기를 찾아온 바나바로부터 사울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바나바가 찾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바나바가 들고 온 소식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사울 형제여 나와 함께 안디옥교회로 갑시다. 그곳에 주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치고 예수님도 전해줍시다.’
 
사울이 얼마나 듣고 싶어했던 말이겠습니까? 교회, 목회, 말씀, 전도..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입니다. 사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1년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별명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안디옥 교인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다웠는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는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또한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나바에게서 배운 사랑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고전 13:2-5).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헌 가운데 사랑에 관한한 가장 아름다운 글이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심오한 언어로 사랑에 대해 쓸 수 있었을까? 바울이 바나바에게서 그 사랑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착한 사람 바나바를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또 바울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신학적인 깊이나 논리, 가르치는 능력은 바나바보다 사울이 탁월합니다. 바나바는 성경을 한 줄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바울은 무려 13권이나 기록할 정도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바나바는 기꺼이 바울과 동역합니다. 교인들에게도 당연히 비교가 될 텐데 말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바울을 시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바나바를 통해 배운 사랑이 또 있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와서 교만과 거드름을 피웠다면 자존심 강한 사울은 결코 바나바를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사울은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그리고도 자신에게도 무례히 행하는 것을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가 있었기에 위대한 사도 바울이 있었고,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아름다운 사랑을 기록한 고린도전 13장이 성경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머무는 공동체에는 사랑의 향기가 진동할 것입니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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