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대화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1/30 [10:32]

저희 교회 협동 목사께서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요즈음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연세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외관상으로도 건강에 별 이상이 없어서 오히려 후배인 저의 건강을 걱정해 줄 정도였습니다. 이제 한창 인생의 후반전을 의미있는 일에 투자하며 보람을 찾아 일하실 나이입니다. 사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분입니다.
 
한국과 호주를 오고 가며 맡으신 사역과 업무에 따라 두 곳에 적당히 시간과 힘을 분배해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분입니다. 제가 선교를 가거나 휴가를 갈 때면 말씀으로 강단을 지켜주시며 성도들에게 덕과 은혜를 끼쳐 주시고 책별로 강해를 하게 되면 먼저 개론 부분을 담당하면서 아름다운 동역과 동행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꼭 필요할 때면 겸손한 자세로 은근히 멘토십을 발휘하면서 도움을 주는 지혜로우신 선배이십니다. 그런 분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한 것입니다.
 
가족들을 통해 지체없이 저에게 연락이 왔고 중보기도팀 카톡방에 기도 제목이 신속하게 올려졌습니다. 목사님과 통화를 하는 가운데 별것이 아닐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이미 잡혀 있는 일정들을 모두 마친 뒤 병원으로 갔습니다.
 
“목사님 좀 어떻세요?”
 
“바쁘신데 뭐하러 오셨어요? 돌보실 분도 많은데…”
 
하나님께서 천국표 자연산으로 염색을 해 주셔서 머리가 보기 좋게 하얀 목사님은 평소와 다름없는 은은한 미소로 인자하고 편안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두 목사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잠시 눈을 감고 각자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목사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먼저 목사님의 병환에 대해 묻고 혹시 위중한 것이나 아닌지 약간 마음을 졸이며 귀를 기울입니다.
 
“글쎄, 저는 잘 못 느끼겠는데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도 많이 하고 …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리네요.”
 
처음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며칠 후 내려진 결론은 암이었습니다. 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전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약을 복용함으로 될 줄 알았던 것이 항암약물요법이 (Chemotherapy)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목사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나누는 대화가 참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그분 안에 소망의 뿌리를 둔 목사님의 신실한 믿음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는 목적은 말씀과 기도로 목사님을  위로하고 격려하러 가지만 실제로는 제가 더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원래 국방부에서 무기 개발팀에 참여해서 나중에는 팀을 이끌고 운영하며 34년을 한 회사에서 국가와 나라를 위해 근무한 과학자이며 준공무원이셨습니다. 그분의 공헌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분의 집에 걸려있는 대통령 훈장증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목사님이 가끔씩 들려주었던 공무원이며 과학자로서 불신자들 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큰 은혜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분이 일을 하시면서 45세에 만학으로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었지만 목회를 하지 않고 지역 교회에서 겸손하게 봉사하면서 세속직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국가를 묵묵히 섬기신 것입니다.
 
병상을 찾았던 어느 날 너무도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기척을 못하고 한참을 혼자 기도하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깨어나서 먼저 인사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또 오셨네요. 다른 분에게 가시지 … 저보다 더 힘든 분들이 많이 계신데 … “ 
 
“목사님, 힘드시지요? 모든 성도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그러자 목사님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오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치밀하고 은혜롭게 인도하는지를 환한 얼굴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평이한 간증이었지만 병상에서 항암 요법 치료를 받는 분답지 않게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인정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은퇴하실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저도 은퇴 준비를 미리미리 잘 해서 목사님처럼 은퇴 후의 삶을 의미있게 보내야 할텐데요.”
 
“별 말씀을!”
 
“혹시 은퇴하실 때 무엇이 제일 아쉽던가요?” 목사님께서는 자세를 고쳐 앉으시더니 먼저 행복하고 즐거웠던 영적 추억들을 여러 가지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청년들과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캠프를 구상하고 땀을 흘리며 섬기던 것이나 성경공부반 운영과 같은 사역의 즐거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쌓은 세상적 업적이나 공헌도를 드러내기보다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며 누렸던 특권들에 대해 잔잔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런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은퇴 후 처음 서너 달이 정말 적응이 안되고 힘들었어요. 나름대로 은퇴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더라구요. 내가 정말 끝났구나! 하고 맨 처음 정말 피부에 와 닿았던 순간은 타고 다니던 업무용 승용차를 운전하던 분과 함께 회사에 반납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의 감정은 이제 용도폐기되어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허탈하고 허무한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당혹스럽더라구요. 말씀드린대로 34년을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은퇴를 했잖아요. 그때 생각에는 휴식도 필요하고 쉼도 필요해서 은퇴했으면 했던 것 같은데 …  순식간이예요.
 
아마 현재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은 이런 말을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실 거예요. 체감이 안될 꺼예요.” 
 
“아, 그래요? 제가 현재 바쁘게 사역을 하고 있는게 감사한 일이네요?”
 
“그럼요.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저도 뒤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역설적이지만 쉼이 없었던 은혜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의 은혜였고 인도하심이었지요.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은 어떻게 사시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영원에 대한 소망까지 모르고 지내는 분들은 어떻게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믿어요 하나님의 뜻을! 모든 게 다 감사해요.”
 
대화를 하면서 지금 나는 목사와 이야기하는 목사구나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이유를 더욱 깊이 있고 바르게 인식하고 음미하도록 하기 위해 때로는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소망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믿음의 행복과 능력에 대해서도 새로운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의 상급은 믿는 것을 보는 것이다. (Faith is to believe what you do not see; the reward of this faith is to see what you believe)” 라는 (히 1:1-2) 진리에 공감하며 새삼 ‘아멘!’ 했습니다. 맞습니다.
 
믿음이란 믿음의 이유가 전혀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믿음으로만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 멋진 믿음의 은혜와 능력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분정하신 사명을 따라 영원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직분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목사들의 대화를 통해 다시 가슴에 새기며 병원문을 나서는 난 행복한 목사입니다.〠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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