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박스 없어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오랫동안 법관생활을 한 칠십대 중반의 고교선배가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집에서 입고 있던 차림으로 동네 가게 앞에 서 있었더니 주인여자가 나보고 ‘박스가 없으니까 가세요’라고 하더라구.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지. 잠시 생각해 보니까 내가 버리는 박스를 줏으러 간 영감으로 생각한 거야.”
 
그는 부유한 사람이었다. 늙으면 어떤 사람도 초라해 보이기 마련인가 보다. 내가 이따금씩 나가보는 탑골공원 뒷골목에는 리어커나 카트에 박스를 싣고 고물상의 젖혀진 함석 문 사이를 들어가는 노인들이 많다.
 
늙으면 시원치 않은 관절 때문에 대부분 다리를 절고 있다. 돈 없는 노인들의 마지막 밥벌이는 박스나 신문지를 줏는 일인 것 같다. 중년에 박스를 줏는 친구도 있었다. 대학동기가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명문고를 나온 그는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외환위기 때 인생의 절벽 밑바닥으로 추락했었다. 그가 날개가 꺾인 채 바닥에 처박힐 때의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했어. 이왕 사업을 시작하는 바에야 나는 철저한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했지. 마케팅도 배우고 재무관리도 배웠어. 세상 모든 것을 돈의 관점에서 보고 평가했지.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 소설 속의 스쿠리지 영감같이 했다고 할까.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만나 모든 게 부스러졌어. 내가 찬바람이 돌게 행동을 하다보니까 돌아온 반응도 얼음같았지. 인간관계도 끝이 나고 단돈 만 원을 꿀 수가 없었어. 친구들 누구도 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는 거야. 자기들끼리 미리 연락해서 내 전화가 오면 절대 받지 말라고 한 거지.”
 
그는 비로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참회하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은혜라는 생각이다. 그냥 처참하게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그 영혼이 새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내가 물었다.
 
“죽을 수는 없고 노숙자 비슷한 지경에까지 가서 길거리의 박스를 주으러 다녔지. 리어커를 끌었어. 리어커도 회사같이 운영하더라구. 고물상에서 아침에 돈을 받고 리어커를 빌려 그걸 끌고 다니며 박스를 수집해다 주고 저녁에는 그 리어커를 돌려줬지.
 
한 번은 골목 저쪽에 신문지 더미가 보이더라구요. 그걸 줏으려고 리어커를 끌고 가는데 옆에서 장애자 노인 한 사람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그걸 줏으러 가는 거야.
 
둘이서 신문지 더미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거야. 그 짓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만 살자는 마음이 들었어. 굶어죽기로 마음먹고 기도원에 들어가 물만 마시고 버텼지. 기도원도 하루에 천 원은 내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어. 며칠을 굶으니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게 편안하고 좋아지더라구.”
 
그는 죽지 않았다. 대신 그는 노숙자들을 이끄는 목사가 됐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다가구 주택을 빌려 노숙인 한 명을 데리고 교회를 시작했어. 사회적응을 못한 사람들,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 오더라구. 강대상이나 그럴듯한 교회시설보다는 노숙자들의 잠잘 곳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어. 방을 몇 개 얻어 거기서 자게 하면서 예배를 드렸지.
 
십 년째 그렇게 살고 있어. 나는 이제 하나님한테 모든 걸 맡기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 없으면 엎드려 기도하고 시키시는 어떤 일도 하면서 사는 그런 삶 말이지. 돈을 신으로 모시고 교만했던 나 같은 놈은 그런 광야의 경험을 거쳐야 진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세상에서 상장회사의 대주주로 거들먹거리고 사는 것과 영혼이 다시 태어나 그렇게 사는 것 어떤 쪽이 진정으로 행복할까.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천국이 그의 것이기 때문에.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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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28 [09:3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