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3/28 [10:30]
여행을 싫어하시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여행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과 향수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외버스 대합실이나 공항 근처에만 가서 앉아 있어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살아나곤 합니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이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고 자기 보호의 성채를 떠나는 모험의 여지를 내포한 두근거리는 이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떠남과 이별이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닙니다.
 
사람이 경험하는 최고의 이별은 소위 죽음입니다. 지상에서 경험하는 마지막 궁극의 여행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14)
 
다른 많은 여행은 웃음과 부러움 속에서 보내게 되지만 유독 죽음이라는 여행은 슬픔과 애통 속에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죽음은 삶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하게 하는 최고의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기대, 교만, 그리고 심지어는 실패에 대한 모든 두려움까지도 죽음의 면전에서는 별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발가벗겨진 상태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여행을 심각하게 묵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천국을 소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곡을 찔렀습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이별 여행은 그런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이런 이별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분이 지상에서 하게 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돌아가신 것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근무도 했고 자녀들도 올망졸망 잘 자라서 어엿한 성인들이 되고 결혼도 했습니다. 손주들도 생겼습니다.
 
그분은 중년이 넘어 온 가족과 함께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호주에 이민을 온 것입니다. 여행은 잘 온 것 같았고 목적지도 탁월하게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 여행지에서 위중한 병에 걸려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기다 다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 좋고 총명한 세월은 모두 과거로 여행을 떠나버렸고 노구와 깊은 사색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가장 힘든 여행길까지 함께 해 줄 동행을 만나게 됩니다.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이 만남이 그분에게 인생이라는 여행의 의미를 깨우쳐 주었고 여행의 목적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이별이지만 이렇게 또한 만남입니다. 떠난 자가 만나는 새로운 조우입니다. 낯선 사람, 새로운 환경, 그리고 예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신비함과의 접속입니다. 이런 만남이 진정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통을 통한 만남이 있을 때 참된 만남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다시 말하면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이고 나눔이며 배움입니다. 설사 누군가가 혼자 깊고 신비한 자연 속으로 홀로 들어가는 여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곳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경험합니다. 절대자와의 만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런 만남과 배움의 경험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한 결단과 추구를 가지고 돌아오는 게 여행입니다. 그분은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그 동행하시는 분을 위해 큰 일을 해 주거나 도움이 되어 드리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행이신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매 순간 그분을 깊이 위로하셨습니다. 
 
너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소중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값으로 살게 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사랑의 대상이라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이미 절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계속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이 여행을 잘 할 수 있고 아름답게 마칠 수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종결은 회귀입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 가거나 돌아 오는 것입니다. 가서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여행이 아닙니다.
 
이런 여행의 본질이 바로 인생의 모습입니다. 인생은 여행입니다. 인생에 대한 서양적 사고는 직선적입니다. 출발점이 있고 종착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적 사고는 다분히 순회적이고 회귀적입니다. 성경적 사고는 창조와 영원의 신학적 차원에서는 직선적입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근원과 종말을 생각하면 다분히 회귀적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어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인생,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마침내 돌아와야 할 곳으로 회귀하는 여행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은 취함을 받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창 3:19; 전 12:7)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경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여행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영적 순례입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인 줄로 착각했던 자리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탈자아 하는 거룩한 모험을 거쳐 우주의 중심이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여행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무지의 자리에서 떠남입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정답을 찾아 절대자를 만나러 가는 여행입니다. 그게 인생이 경험해야 하는 최고 가치있는 여행입니다.
 
여행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신비는 이유와 조건을 알 수 없는 부름과 그에 반응하고 싶은 이끌림입니다. 그 알지 못하는 곳의 신비한 부름에 응답해서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여행입니다. 영적 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을 울리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영적 여행입니다. 그분의 말년이 바로 이런 여행자의 삶이었습니다. 세상적 학식과 지식으로 가득찬 것 같았던 자기가 텅빈 존재인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움직이면 떠났던 여행이 아닌 스스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수동적 은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마지막 여행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러 오시리라” (살전 4:14) 그분은 지금 부활을 향한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인간의 영혼에 들려오는 이 거룩한 부르심에 반응해서 떠나는 여행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필연적 행로입니다. 이 여행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조우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 또 다른 만남을 경험합니다. 바로 자기라는 자아와의 만남입니다. 자기를 존재하게 하신 분 앞에 절대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찾으며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자기라는 자아를 떠나 절대자를 찾아가는 구도의 목마름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싶은 소통의 갈망이 담긴 기도의 여행은 마침내 그분과 자신을 만나게 합니다. 이 만남 속에 우리는 관계를 경험하고 우리가 돌아갈 고향을 발견합니다.
 
인생이란 여행길의 종결은 그분의 품인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떠나왔던 그 자리, 나를 출발하게 했던 그 자리가 바로 이 전능자 하나님의 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여행 방식과 내용에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지혜로운 순례자는 변화를 결단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바로 그분의 품에 돌아갈 그 날을 고대하며 그 날에 초점이 맞추어진 진정한 인생의 여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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