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엄상익/크리스찬리뷰
영국작가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다시 들췄다. 표지에 적힌 이런 글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너는 왜 사는가? 네가 추구하던 인생이란 무엇인가? 네가 얻고자 하는 부귀영화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 물음은 나의 가슴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갑자기 먹먹해 진다. 시간의 밑바닥을 거칠게 훑어본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명문중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질주했다. 교과서와 전과를 달달 외우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런 식으로 고등학교에 가야하고 대학에 가야했다.
 
배웠다는 졸업장을 가져야만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남들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거기서 다시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했다. 그랬구나 나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사다리의 한 계단이라도 남들보다 위에 올라가고 싶어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삼십 대이던 어느 날 나는 사료를 얻어 먹으면서 트랙을 달리는 경주마였다는 걸 깨달았다. 상을 타지도 못하는 초라한 말이었다. 내가 추구하던 것은 실체가 없는 안개 같은 존재였다. 내가 있을 곳은 더 이상 경기트랙이 아니라 초원이라는 걸 알았다. 거기서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걸어야 한다는 걸 막연히 깨달았다.
 
트랙을 나와도 또 다른 거대한 굴레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돈을 신으로 모시는 사회였다. 돈신을 섬기지 않으면 시궁창으로 쓰레기 같이 휩쓸려나가는 세상이었다. 부귀영화의 근본은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영혼을 팔아버리고 떼를 지어가는 좀비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가득 찬 느낌이었다. 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돈은 빼앗거나 얻거나 버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권력가나 강도는 돈을 빼앗었다. 
 
구걸은 그냥 얻는 방법이었다. 정직하게 땀 흘린 노동으로 얻는 돈만이 가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써주고 품값을 받는 지식노동자라고 마음에 새겼다.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하고 그 용역의 대가를 받아 가족이 먹고 살았다. 내가 얼마나 벌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곤 했다.
 
카알라일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돈을 벌면 된다고 했다.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거기다 약간의 여행비가 추가됐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내와 함께 신비한 녹색 빛을 뿜어내며 강을 흘러내리는 빙산을 만져보고 싶어 알래스카를 갔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지나갔다. 실크로드를 따라 돈황과 우르무치를 가기도 하고 히말라야의 계곡을 굽이돌아 티벳과 네팔 그리고 인도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기도 했다.
 
잠시 소풍을 온 나의 영혼은 지구별 곳곳을 구경했다. 시간의 강물이 어느새 영원의 바다 가까운 하구에 다다랐다. 그 속에 썩인 물 한 방울인 나의 영혼은 그동안 뒤로 멀리 흘러온 세월을 떠올리며 묻는다.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했었느냐고?
 
곳곳에서 작은 행복들이 들꽃같이 미소짓고 있었다. 이십대 결혼 초 아내와 3등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푸르스름하게 동이 터오는 바다로 갔었다. 바닷가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왔다가 슬며시 되돌아가는 파도가 좋았다. 함박눈이 꽃잎같이 떨어지다가 온 아파트 단지를 두터운 눈 이불로 뒤집어씌우던 날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순간이 행복했다.
 
손자손녀가 태어나고 요즈음은 손녀와 함께 게임을 한다. 뭐 이만하면 하나님께 이 세상 잠시 소풍을 와서 잘 놀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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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8 [15:5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