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란 없다
 
정기옥/크리스찬리뷰

호주의 서호주(The State of Western Australia)에서 해마다 펼쳐지는 야생화 축제는 자연이 주는 지구에서 가장 큰 꽃의 향연이다. 1만 2천 종류도 넘는 다양성도 놀랍지만 그중에 60%가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호주 고유의 야생화들이다.
 
그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오색의 축제는 넓고 넓은 들판과 대지, 숲과 해변, 도시에서 오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신비경을 이룬다. 서호주의 북쪽인 필바라(Pilbara)나 골드 필드(Goldfields) 또는 코랄 코스트(Coral Coast)에서 6, 7월에 시작되는 이 장관은 거대한 호주의 아웃백(outback)을 물들이며 9월 정도가 되면 남쪽의 국립공원들과 자연보호지역들을 수놓다가 마침내 서호주의 수도인 퍼스(Perth) 식물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10월 말부터 11월에 이르면서 남서부 해변의 히스 꽃으로(Coastal Heath) 그 대미를 장식한다. 잠시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건강, 약간의 물질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누구든지 한 번쯤 즐길 수 있는 창조주의 멋진 선물이다. 
 
그러나 이 귀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들의 대분분이 사람들의 분류에 따르면 소위 잡초이다. 그들은 원래 잡초였나? 소위 화초는 창조 때부터 화초로 명명되었을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잡초라고 부른다. 자기들의 정원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름을 지어 주어 화초라고 불러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 대다수는 잡초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창조주의 정원에서는 아름답고 존귀한 화초들이다.
 
“잡초란 단지 사랑받지 못한 꽃일 뿐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 잡초란 단지 아직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지 못한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화초일 뿐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편향된 정의나 또는 자기 중심적 이용가치나 유용성 때문에 그들 나름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일편지견이 없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들풀들을 바라본다면 그 사랑의 정원에 잡초란 존재가 자리잡을 공간은 없지 않을까? 세상에 완전히 무가치하고 추한 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사랑받기에 충분한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독특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소위 화초라고 이름을 지어준 주목받는 멋진 꽃들보다 흙먼지 날리는 사막의 거친 땅이나 아무 곳에나 자리잡은 잡초가 피워낸 작고 초라해 보이는 그 꽃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그냥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편견없이 그 모습을 그대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감상하고 감사할 수 있다.
 
인생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란 언제일까? 주관적 시각을 가지고 자기가 세운 목표를 향해 분주하게 살다가 멈추어 서서 조용히 관조할 때 예상치 못한 귀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까?
 
그동안 무심코 스쳐 지나가 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행복이 시작되고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낮아질 때, 그리고 멈추는 순간 보이는 것이 있다. 꼭 쥐었던 손에 힘을 빼고 편안히 펴는 순간 깨닫는 것이 있고 옹그러졌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순간 스며드는 행복이 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인생은 깨닫는 만큼 누리게 된다. 작은 것을 볼 줄 알고 다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름임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봄에 하나님께서 따스한 바람을 풀어 생명의 신비를 싹틔워 주실 때 돋아나는 잡초의 새싹들은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지!
 
필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꽃들은 대부분 소위 잡초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이다. 화초도 가꾸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사라지듯 잡초도 가꾸면 아름다움을 선물 한다. 잡초는 화삽이 아니라 마음으로 품고 사랑으로 가꾸는 꽃이다. 
 
잡초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잡초의 진짜 아름다움은 내면적인 것이다. 잡초에게서 발견되는 기죽지 않는 용기와 끈질긴 생명력이다. 의도 되었든지 아니든지 그토록 무시당하고, 그토록 짓밟히며, 그토록 사랑받지 못하는 데도 다시 일어선다.
 
할 수만 있다면 온갖 제초제를 써서 기여코 없애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받지만 한 순간도 자기의 생명을 소홀히 여기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주변을 향해 불평하거나 항거하지 않고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밟혔다 다시 일어나는 풀들을 보라. 그들은 다시 일어나 생존을 계속한다. 그리고 어떤 환경속에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꽃을 피운다.
 
꽃은 향기를 날리고 씨앗을 만들어 낸다. 바람 속에 흔들리며 꽃을 피우기야 정원의 화초도 마찬가지이지만 잡초는 더 야생적이고 의연하다. 누군가 가꾸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가고 기다려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고유한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기만의 씨앗을 맺는다.
 
생존이 목표인 것 같았는데 꽃을 피우고 꽃이 목표인 줄 알았는데 마침내 씨앗을 맺는다. 그 후 그 씨앗들을 곳곳으로 날려 보낸다. 아득하고 먼 들판을 가득 채워서 또 다른 꽃을 피우기 위하여…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 같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조물주가 허락한 어느 곳에서든 자기의 몫을 멋지게 감당한다. 그것이 잡초이다.      
 
너무 잘 정돈된 정원에는 잡초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일반적으로 잡초는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잡초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나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창조주의 시각이 아닌 자기의 주관적 시각으로 아름다움을 정형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초는 인정과 감상의 대상이기보다는 정원에서 사라져야 할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눈에 띄면 힘이 닿는대로 뽑아 버리고 심지어는 독한 약을 뿌려 멸절시키려 한다. 오랫동안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사용해서 벽이나 기차 등에 그렸던 그라피티(Graffiti)를 비문화적 야만행위나 예술 파괴적 낙서 정도로 여겨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 예술성과 시사성을 인정하고 도시 미관을 위해 사용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가치와 아름다움이 그 나름대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한적한 숲길이나 오솔길을 걷다가 생각지 못한 들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멈추어 그 신비를 감상하며 행복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소위 잡초라고 부르는 이름도 없는 들풀 속에서 발견되는 참신하고 신비한 가치와  아름다움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모든 곳에 모든 것 속에 숨겨 두신다. 우리가 민들레처럼 낮아져서 열린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잡초를 바라보기만 하면 금방 알게 된다. 그 피조물이 결코 잡초가 아니라는 것을 … 누군가 이야기했다.
 
“잡초는 자연의 그라피티이다. Weeds are nature’s graffiti.”    
 
사람의 성숙은 여러 가지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기대하지 않은 대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며 존중해 주는 아량이다.
 
잡초는 사막에도 있지만 도심의 견고한 아스팔트나 철옹성 같은 시멘트벽의 균열사이에서도 발견이 된다. 그 가냘프면서도 끈질긴 생명력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꽃망울은 얼마나 고귀한 아름다움인지...!    
 
잡초는 꼭 배워야 하는 위대한 교훈을 준다.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 동일한 열린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잡초 같은 인생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그 누구도 잡초는 아니다. 당신이 잡초가 아니듯 그 사람도 잡초가 아니다. 모두에게 고유하고 동일한 가치와 독특한 아름다움과 존귀함이 있다.
 
주변에 어떤 기쁨이나 유익을 주고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고 예수님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며 구원하시길 소망하시는 대상이기에 이미 최고의 존재요 최고의 가치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서로에게서 이런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모습,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잡초란 당신에 의해 아직 그 가치와 아름다움이 발견되지 않은 당신과 똑같은 하나님의 화초이다. 〠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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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6 [16:0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