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천사, 엄마!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1회차 첫 날인 8월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남북 이산가족 단체 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섭(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 씨와 만나 오열하고 있다.     ©국민일보

“하나님께서 저를 지구에 보내신다구요? 그런데 저처럼 작고 연약한 아기가 어떻게 그곳에서 살지요?”
 
미소를 지으며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염려할 필요없단다. 벌써 너를 위해 천사 한 명을 땅에 보내서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했단다. 그 천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가 너를 맞이해 주고 돌봐 줄 거야.”
 
아기:  “이곳에서는 제가  아무 것도 안해도 되잖아요. 그냥 노래만하고 미소를 짓고 웃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곳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하나님:  “걱정하지 말아라. 그 천사가 너를 위해 매일 노래를 불러 줄 거야. 그리고 너를 사랑해 주고 너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물론 네 대신 필요한 걸 다 해줄 거고.”
 
아기: “하지만 사람들이 저에게 말을 할 때 어떻게 그것을 알아듣지요? 저는 말도 못하는데요?”
 
하나님: “그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그 천사가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목소리로 네게 속삭이며 네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줄 거야. 인내심과 사랑을 가지고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줄 거야.”
 
아기가 슬프고 걱정어린 얼굴로 하나님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하나님께 말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하나님이 미소를 지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그게 걱정이구나! 염려하지 말아라. 그 천사가 네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줄 거야. 그리고 너는 기도로 언제나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단다.”
 
아기: “하나님 들어 보셨나요? 지구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다던데 …. 그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저는 저를 보호할 힘이 없는데요?”
 
하나님:  “걱정 말아라. 그 천사가 너를 보호해 줄 거야. 심지어는 자기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도 너를 지켜 줄 거야.”
 
그 순간 하늘에는 기쁨의 소리가 넘쳐나고 아기의 마음속에는 고요한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지상에서 아기를 보내달라는 기도 소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고요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아기: “하나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 볼 게 있는데요. 그 천사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사랑하는 아기야, 그 천사의 이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단다. 너는 그저 단순히 그 천사를 “엄마!”라고 부르기만 하면 된다.”  
 
“상철아! 상철아!”
 
엄마는 67년 전 피난길에서 놓쳤던 아들을 와락 끌어 안았다.
 
“상철아! 상철아!”
 
얼마나 그리워한 이름인가!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인가! 한 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지난 20일 금강산에서 열린 21차 이산 가족 상봉 행사에서 92세의 엄마 이금성 씨는 북쪽에서 나온 71세의 아들 이상철 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그녀는 한국 전쟁 때 피난길에 올랐다가 남편과 네 살배기 어린 아들 상철이의 손을 놓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립고 사무친 심정으로 그렇게 67년을 산 것이다.
 
71세의 아들도 92세의 엄마품에 안겨 그동안 눌러왔던 통한의 울음을 터뜨렸다. 전쟁이 가져다 준 생이별의 현실도 엄마의 마음에서 아들을 앗아가지 못한 것이다. 세월이 지났다고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낸 천사, 엄마의 마음에서 어찌 사랑하는 아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이고 … !!”
 
말문이 막힌 99세 엄마 한신자 씨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소리였다. 전쟁 당시 한 씨는 갓 태어난 막내 딸만 들러업고 피난길에 올랐다. 열다섯과 열네 살 연년생이었던 두 딸은 고모네 집과 친정에 나누어 맡기고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곧 전쟁이 끝나고 두세 달이 지나면 다시 딸들에게 돌아 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잔혹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마침내 남과 북이 나뉘자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고향은 영영 돌아 갈 수 없었고 딸들과 다시 볼 소망은 점점 희미해져 가슴은 까맣게 숯이 되었다. 그러다 67년이 지났다.
 
이미 72세와 71세 할머니가 된 경실 씨와 경영 씨, 두  딸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자 100세를 눈앞에 둔 엄마는 기가 막혀 말을 잊지 못한 것이다.
 
금강산 호텔 연회장은 일순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곳곳에서 오열과 흐느낌이 튀어 나오고 그동안 눌러 왔던 감정은 샘물처럼 탄식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연회장을 삼켰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가슴에 안아줄 수 없어서 엄마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것 같다. 엄마는 순수하게 빛나는 태양과 같다. 그러나 손을 잡아도 가슴에 안겨도 그리고 입을 맞추어도 데지 않는 그저 따뜻하기만 한 햇님이다.
 
엄마가 자기의 아기를 사랑하는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피부 색깔이나 지능이나 재주에 달려 있지 않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나 팔순이 된 할아버지라도 엄마에게는 자기가 그 아기의 엄마라는 게 중요할 뿐이다.  
 
아기가 자라서 혹 엄마를 원망하며 가슴을 후벼파고 떠나도 엄마는 그 아기를 가슴에서 보낸 적이 결코 없고 오랜 세월 육신은 보이지 않아도 그 아기의 사랑스러운 영상을 잊지 못한다. 설사 혹독한 삶의 현실이 자녀를 포기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해도 엄마는 아기를 평생 잊지 못한다. 그게 엄마다.
 
엄마는 자기 자녀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한다. 자식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할 수만 있다면 생명까지도 포기한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모든 힘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아기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살아도 종국에 그보다 더 그립고 따뜻한 것은 엄마의 품이다. 엄마는 하나님이 지상에 보내주신 이 땅의 천사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심한 장애를 가진 한 아기의 엄마가 내게 물었다.
 
“목사님, 하나님은 왜 제게 이 아이를 주셨을까요? 다른 사람이 아닌 왜 하필 저일까요?”
나는 성경적으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었다. 그 엄마는 그 아이와 다른 정상의 옆집 아기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장애가 있는 자기의 아기를 포기하고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엄마는 그 아기의 신체적 조건에 상관없이 최고의 사랑으로 그 아기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자매님, 하나님이 천국에서 한 아기를 세상에 내려보내기로 작정하셨어요. 그런데 세상에 그 아기를 보낼 때 가장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셨지요. 그러면서 세상에 있는 엄마들을 살펴보면서 생각을 하셨습니다. ‘누가 이 아기를 가장 깊고 진실하게 그리고 조건없는 사랑으로 보살피며 돌보아 줄까?’ 
 
그때 하나님의 마음에 자매님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아기를 자매님에게 보낸 것 같아요. 자매님이 이 아기에게 최고의 엄마인 것을 하나님은 아신 거예요. 힘드시지요? 하지만 사랑하시지요?”
 
그 자매는 그만 눈물을 그렁이며 울움을 터뜨렸다.
 
성경에 기록되는 엄마들를 보라. 이삭의 출생과 더불어 사라의 미움을 받아 광야로 쫓겨나서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하갈을 떠올려 보라. (창 21장)
 
바로를 피해 자기가 낳은 아기를 석 달을 숨겨 키우다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아기 모세를 띄워 보내는 엄마 요게벳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 (출 2:1-10)
 
솔로몬왕 앞에서 한 아기를 놓고 누가 친모인지 판결받던 두 창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왕의 명령에  따라 시퍼렇게 날선 칼이 산 아이를 둘로 나누려는 순간 아기의 진짜 엄마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에게 다급하게 소리친다.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왕상 3:26)
 
누가 어미들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 놓았는가? 누가 엄마라는 천사의 품에서 아기들을 빼앗아 반 세기도 넘게 통한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였는가? 이념도 강대국의 이권도 이 땅의 엄마들의 마음에서 그들의 아기들을 결코 빼앗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엄마들의 가슴에 아기를 향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국민일보>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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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9 [15:4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