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냥 놀아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괴로움을 주시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비밀스런 즐거움을 전해 주시는 것 같다.

‘내 친구 정일우’라는 생소한 영화를 보았다. 60년대 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서강대교수가 됐다. 그가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고 청계천의 판자촌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쪽방에 혼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짐승우리 같은 쪽방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놀아요”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정말 그냥 놀고 있었다. 낮에는 판자촌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혼자 남은 아이들과 장난을 쳤다. 그가 다음으로 노는 곳은 상계동 빈민촌의 강제 철거현장이었다.
 
부서진 바라크 건물의 잔해 위에서 그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신명나게 놀고 있었다. 그 다음 그가 노는 장소는 시골이었다.
 
파란 눈을 가진 그는 노인들과 낄낄거리며 막걸리를 마시고 농악패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머리도 수염도 산타클로스 영감처럼 백발로 변하고 있었다.
 
생명을 다한 나무가 옆으로 픽 쓰러지듯 시골 폐가에 혼자 살던 그가 어느 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그가 휠체어에 앉아 이따금씩 어린아이 같이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보였다. 드디어 그가 생의 마침표를 찍고 네모난 상자 속에 들어가 땅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비쳤다.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깊고 슬픈 예수를 연상시키는 눈빛이었다. 청계천의 쪽방안에서 ‘그냥 놀아요’라고 던진 그의 한마디가 가슴속을 흐르는 강물에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헌신과 봉사는 고통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고 마음이 따뜻해 지지 않는 선행은 위선일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와서 한바탕 잘 놀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 같았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친구였다. 대학시절 음악활동을 같이 했던 고교동창이었다.
 
어머니가 의사인 여유있는 집 아들이었던 그는 장발을 어깨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녔었다. 카메라에 심취했던 그는 어느 날 상계동 철거현장을 촬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앵글을 빈민 쪽으로 향했다.
 
그의 마음으로 빈민들의 아우성이 파도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가난과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게 일생 그의 놀이이자 삶이 됐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괴로움을 주시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비밀스런 즐거움을 전해 주시는 것 같다.
 
성경 속의 스데반은 죽는 순간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살았던 천상병 시인은 죽을 때 이 세상 소풍 와서 잘 놀고 간다고 했다.
 
인생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은 고달픈 삶들이 많다. 그런데도 죽음에 임박해서 한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달관한 사람들이 아닐까.
 
인간의 삶에는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는 보람 있는 삶의 길이 있다. 성공과 실패는 이력일 뿐이다. 어떤 책에서 봤던 한 구절이 심연의 물방울 같이 떠오른다.
 
‘지금 막 스쳐지나간 사람,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사람, 돌아보니 그 사람이 그리스도구나.〠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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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7 [15:2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