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무대의 자기 배역
 
엄상익/크리스찬리뷰
아침신문을 훑고 있었다. 박스 안의 작은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이 인생의 목표인 청년들이 노량진을 메카로 4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김밥 하나 사먹고 학원 책상에 들러붙어 온종일 수험서를 외운다고 한다.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 중년들은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몰라 항상 불안해 한다고 한다.
 
퇴직 후의 불안과 번뇌에 싸인 그들의 대책 중의 하나가 글쓰기 학원에 다니는 일이라고 한다. 글 쓰는 기술을 익혀서 책을 내는 게 목표다. 책을 내서 어느 정도 알려지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해서 먹고 산다는 전략이다. 글쓰기 수업료는 서너 달에 5백만 원이라고 한다.
 
그 나이를 넘은 50대 중반 이상의 층은 인생 파탄이 난 사람들을 다룬 TV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보며 산에 들어가 장작불 때고 산나물 먹고 살 궁리를 한다는 것이다. 삶의 현실을 필자 나름대로의 시각에서 해석한 것 같다.
 
며칠 전 육십 대 중반의 친구를 만나 냉우동을 시켜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이미 그런 삶의 과정을 모두 지나왔다. 취직을 해서 기업에 다녔고 퇴직을 한 후 귀향해서 몇 년을 살기도 했다.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아내와 둘이 살고 있다. 고향은 흘러간 시간 속에 유행가 한 두 소절로 남아있지 공간이 아니더라고 했다.
 
“회사원 생활이 어땠어?”
 
내가 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개의 큰 그룹을 제외하고는 사원에게 인간 대접을 해 주는 곳이 없었어. 군사문화의 영향인지 차렷하고 명령하면 그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어. 공무원하고 달라서 오너는 영원한 제왕이야. 한 번 눈 밖에 나면 아웃인 거지. 그 밑에서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어.
 
내 나름대로 학생회장도 했었고 리더쉽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질은 채택되지 못했어. 어떤 면으로 인생이 실패한 거지. 월급쟁이의 장점은 그나마 작은 안정이었어. 매달 돈이 나오니까. 그렇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군.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는 거지.
 
나는 틈틈이 퇴직 후를 생각해서 조금씩 주식을 했어. 그런데 주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돈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고 돈이 단순한 숫자가 되는 거야. 그래서 빚을 내서 억대가 넘어가게 된 경우도 있어. 월급쟁이와 주식투자를 같이 하면서 느낀 건 돈은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는 거였지.”
 
인생의 후반부를 철저히 준비했던 그는 퇴직 후 마련한 작은 상가의 임대수입과 주식투자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우수한 외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국계 금융회사에 들어가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어?”
 
“홍콩의 고층빌딩 양탄자 위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의 일을 하고 있지. 외국계 금융회사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일을 하지. 그 다음으로는 직접 회사를 사고파는 일을 해. 사모펀드의 일이야. 그러다가 단기수익을 낼 수 있는 투기성 일을 해. 헤지펀드의 일이지. 월급은 많이 받지만 그만큼 실적을 올려야 하는 피가 마르는 일이지.”
 
주변을 둘러보면 내남없이 일개미가 되어 살아온 인생들이 많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왜 사는지 모르면서 그저 일만 하고 산다. 그리고는 어느 날 텅 빈 적막 속으로 던져진다.
“이봐 친구, 우리 인생은 무대의 막이 내려지고 텅빈 객석만 보는 순간이 온 것 같아. 안 그래?”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그렇지”
 
“제왕 같은 오너이던 말단 사원이던 다 인생무대의 배역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 배역을 마치고 내려진 막 뒤에서 이제 정말 자유하게 된 거잖아?”
 
하나님이 연출자가 되어 사람마다 맡긴 배역이 있는 것 같다. 주역이던 단역이던 엑스트라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무대를 내려오면 되는 것 아닐까? 연출자가 1막 중간에서 내려오라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단 8분간의 연기로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도 있다. 어떤 지위에 있었던 다 인생에서 잠시 맡았던 배역일 뿐인 것 같다. 〠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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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8 [11:2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