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준비 되셨나요?

최주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6/25 [16:28]

교회의 행사 중에서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목회자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일 중에 하나는 바로 제직을 세우는 일이다. 임직이라고도 불리는 이 일은 정말 할 때마다 부담스럽다.
 
나도 목회하는 동안 여러 번 임직을 했는데 그때마다 크고 작은 산통(?)을 여러 번 겪었다. 그래서 별 탈 없이 임직이 끝나도록 많이 기도했다.
 
또 어떤 때에는 “누가 내 대신 와서 임직해 주고 가면 안될까?”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아니 성경을 보면 구약의 모세나 초대교회의 사도들에게는 일꾼 세우는 일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 현실 교회에서는 이토록 힘든 것일까라는 자문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데 사람 세우는 일은 분명히 모세나 사도들에게도 힘들었겠지만 성경의 지면 관계상(?) 적지 않았을 뿐이지 그분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인데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함튼 일꾼을 세우는 일이 목회 사역 중에서 만만치 않은 사역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모든 목회자가 동의할 것이다.          
 
제직을 선출하다가 겪은 일이다. 임직자 투표를 하는데 한 분이 아주 근소한 차(1표차)로 당선이 되었다. 보통 투표에서 이렇게 근소한 차로 선출될 경우에는 개표를 마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이 있는데 그 상황을 보는 내내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혹시나 이 분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인데 나보다 당사자는 아마 열두 번은 더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마지막 당선 가능표가 나왔을 때에 안도의 숨을 쉬는 그 분을 보면서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실은 내가 그 집사님의 당선에 마음 졸였던 이유는 그 분이 교회에서 봉사를 참 많이 하는 분이었는데 만약 그 분이 낙선되기라도 한다면 교회에 후폭풍이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분의 성격이 강해서 봉사하다가 가끔 성도님들과 부딪쳤는데 그로 인해 표가 박하게 나왔던 것 같았다. 그 임직 투표가 끝난 후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표차 당선도 당선된 것이니 그 결과를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난 어느 날, 당선된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를 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모와 함께 집사님 집을 찾아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목사님! 제가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를 했는데 성도들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저를 대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은 처음 당선되었을 때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한 표차로 당선된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일명 섭섭이라고 부르는 놈인데 실은 교회 내에서 성도들의 마음에 시험 들도록 활동하는 놈(?)들 중에 아주 대표적인 놈이다.
 
이 섭섭이란 놈 때문에 목사인 나를 호출한 것이다. 그런데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목사님! 저 임직 받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목회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말한 지는 모르겠는데 한국 사람은 기분 나쁘면 구원도 안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 분은 한국인임에 틀림없다. 한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서 임직을 고려해 보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아니 이제 투표도 무사히 잘 마치고(?) 이제는 임직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 날벼락 같은 말을 들으니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순간에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 이 상황에 맞는 가장 합당한 말이 생각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갑자기 내 마음에 이런 말이 떠올랐다. . 
 
“일했기 때문에 욕먹는 것이지 일하지 않으면 욕먹을 일도 없다”
 
실은 이 말은 봉사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될 말인데 교회에서 욕먹는 이유는 일하기 때문이지 일하지 않고 우아한 척~ 거룩한 척~ 그리고 섬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면 결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니까 교회에서 욕먹는 이유는 일하는 자리에 있고 또한 일하기 때문이다. 욕은 일하기 때문에 먹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은 성도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보다 먼저 욕먹어도 버틸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만 오랫동안 봉사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한다면 욕먹는 것은 교회의 특권층이 누리는 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언제 하나님이 아무나 일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은 없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고 그 특별한 사람이 욕도 먹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나도 담임 목사로 일하다 보니 욕을 먹어 보았다. 그래서 그 욕먹는 느낌을 좀 안다.
 
성경은 이렇게 조언해 준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보다 먼저 주의 일을 감당했던 선지자들도 욕을 먹었다. 실은 욕을 먹은 정도가 아니라 욕 플러스 박해 플러스 악한 말로 거스름을 당했는데 어쩌면 욕먹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받는 통과의례와 같다. 그렇기에 선지자들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욕먹음에도 불구하고도 끝까지 사역을 완수하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내가 만난 어떤 목회자들은 욕먹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피해 망상증에 걸린 사람도 보았다. 그래서 덜 욕먹기 위해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다가 꼭 해야 할 사역도 못하게 된 경우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분들을 향해서 이렇게 조언해 주고 싶다.
 
“목회 어차피 한 번 하는 것이니 우리 담대하게 욕먹으면서 일합시다!”
 
교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리와 제자. 카일 아이들만 목사님의 책인 “팬인가? 제자인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팬으로 남아 공연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열광하다가 공연이 끝나면 돌아가 버리는 욕먹지 않는 무리가 되거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섬기다가 욕먹는 제자가 된다.
 
팬은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교회 일에 멀찍이 서서 구경하는 구경꾼들이다. 하지만 제자는 다르다. 그들은 그 집의 아버지와 같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내일처럼 생각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진다. 그래서 교회는 제자들로 인해 유지되는 것이다.
 
언제가 어떤 목사님이 제자의 삶에는 3가지 액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다고 생각한다.
 
“땀과 피와 눈물”
 
땀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흘린 액체를 말한다. 교회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인해서 사역을 멈추는 경우가 있는데 땀은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흘린 액체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 흘린 희생의 피가 있다. 교회를 위해서 누군가는 책임지고 희생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 교회 저 교회 부평초처럼 옮겨 다니는 성도가 아니라 한 교회에 정착하여 그 교회와 운명을 함께한 그 희생의 피라는 액체가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위해 흘린 기도의 눈물이다. 교회는 영적으로 무장하고 기도의 자리를 사수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흘린 그 눈물이 있어야 한다.
 
다시 처음에 말한 그 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한 표차로 당선된 그 집사님은 “일하는 사람이 욕먹는다”는 내 말을 듣고 기쁨으로 임직을 받기로 결정했다. 실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으로 섭섭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역시!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꼭 필요한 지혜를 공급해 주신다. 그 집사님은 지금도 열심히 교회에서 일하고 계신다. 물론 욕은 덤으로 먹고 계실 것이다. 
 
샬롬! 〠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