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

최주호/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7/29 [14:14]

징크스(jinx)는 사전적인 의미로 재수없고 불길한 징조가 일어날 것 같은 인과관계적 믿음이다. 쉽게 말하면 꼭 이런 때에는 이런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쓰는 말인데 목사가 징크스 같은 단어를 운운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살다 보면 징크스라고 불릴 만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예전에 전도사로 사역할 때에 이상하게 담임목사님이 외국에 출장가시면 교회에 장례가 났다. 그렇게 별일 없던 교회도 목사님만 나가시면 초상이 나니 목사님의 부재 시 교회를 지키던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런 이유로 본의 아니게 나는 전도사 시절부터 장례 예배를 여러 번 집례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장례 담당 전도사’인데 대개 전도사는 장례 인도를 하지 않지만 내 경우는 좀 달랐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러니하게도 전도사로 사역하던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반대가 되었는데 내가 출장을 가면 교회에 장례가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2003년 상파울로에서 현지인 사역자 선교대회를 열었을 때이다. 상파울로 근교의 깜삐나스라는 도시에서 150명의 한인 선교사와 현지인 목회자들이 처음 모였던 당시에는 상당히 뜻 깊었던 행사였다.
 
문제는 대회가 열리는 시기에 마침 암으로 투병 중이신 성도님이 계셨지만 4-5일 정도는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걱정이 되어서 가기 전에 병원 심방도 했고, 또 만약을 대비해 장례식을 집전할 친구 목사님도 섭외했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떠났다. 
 
대회가 시작하고 나서 하루가 지날 무렵, 나를 급히 찾는다는 주최측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왠지 예감이 그럴 것 같았는데 그 예감이 맞았다. 징크스가 어디 가겠는가?  예감대로 그 성도님의 소천 소식이었다. 전화상으로 아내 집사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님! 지금 당장 비행기 타고 오셔서 우리 남편 장례식 인도해 주세요!”
 
내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브라질에서는 3시간이면 비행기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문제는 당시 내가 있던 곳이 지방 도시였기에 공항까지 가는 차편도 쉽지 않고 또한 그 선교대회에서는 내가 맡은 중요한 강의가 있었기에 대회 일정상 내가 빠질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집사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장례식을 친구 목사님에게 맡겼다.
 
그렇게 선교대회를 끝내고 나는 공항에서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그 집을 향했다. 시름에 잠겨 있던 아내 집사님이 나를 맞이하면서 내 평생에 잊지 못할 한 마디의 말을 남겼다.
 
“목사님! 저는 지지리도 복도 없는 X입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셨을 때에도 전임 목사님이 출타 중이라 안 계셨는데 이번엔 남편이 죽었는데 또 목사님이 안 계시다니…”
 
참 목회하면서 별 일도 보고 별 소리를 다 듣지만 성도의 입에서 “지지리도 복도 없는 X”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찹찹해졌다. 목회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나는 집사님을 위로했다.
 
“집사님~ 지지리도 복도 없다는 말하지 마세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복있는 자입니다. 남편 집사님도 시어머니도 모두 천국에 계실 테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함께 천국 소망으로 삽시다. 좋으신 하나님이 좋은 일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그 집 심방을 마쳤다.
 
일 년 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일 년 전 지지리도 복없다고 했던 그 집사님의 전화였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남편의 1주기 추도 예배건으로 연락한 것이다. 그래서 날짜를 잡고 추도 예배를 집례하기 위해 그 집으로 갔는데 그 추도 예배가 좀 특별했던 이유는 남편이 소천하면서 받은 유산으로 산 집의 이사 예배를 겸해서 드렸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보니 가게가 딸린 아담한 집이었는데 정말 좋아 보였다. 게다가 집에 딸린 그 가게는 작아도 장사가 꽤 잘된다는 말을 들었다. 은혜 가운데 추도 겸 이사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는 내내 그 집사님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 나는 그 집사님이 내게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집사님! 작년에 남편 집사님 소천했을 때에 저에게 지지리도 복도 없는 X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기억나시죠?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좀 짓궂은 질문 같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자 집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 년 만에 복 없는 분이 복있는 분으로 탈바꿈한 것인데 나는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상황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 함튼 그렇게 이야기는 해피 앤딩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에도 출장 갈 때마다 장례를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룻기를 설교하면서 내 마음에는 약속의 땅을 떠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비슷한 징크스(?) 현상을 목격했다. 물론 그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게 마련인데 룻기 1장에서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엘리멜렉은 가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이민을 간다. 그 떠남에 대한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 느낌대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죽고 아내인 나오미는 두 자부와 함께 과부가 되었다.
 
실은 룻기에서 이렇게 이민을 떠나는 엘리멜렉의 모습은 신약의 탕자의 삶과도 유사한데 하나님 말씀 안 듣고 아버지 집(약속의 땅)을 떠난 탕자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실패가 얼마나 처절한지 나오미의 경우는 모든 남자를 잃었지만 탕자는 큰 흉년을 맞아 먹고 사는 문제의 위기를 당한다. 여기서 나오는 ‘큰’이라는 단어는 강력하다는 의미를 갖기에 탕자가 이방 땅에서 당했을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인 징크스가 우리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시작되었다면 반대로 좋은 예감도 있다는 것을 성경이 알려준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복음의 이야기인데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돌아오기만 하면(회개) 사는 역사가 일어난다. 복음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하나님의 히든 카드다. 그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소망의 메시지가 된다. 구약의 나오미나 신약의 탕자가 이방 땅, 실패의 자리에서 들었던 말씀이 바로 그 복음이었다. 나오미에게는 약속의 땅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으로, 탕자에게는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풍족함이 있다는 소식이다.
 
결국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저주의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들의 인생은 해피 앤딩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예인데 징크스를 감사로 바꾸는 복음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울산에서 사역하시는 안호성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보면 이승철이 부른 ‘사랑 참 어렵다’라는 가요를 개사해서 부른다. 나는 몰랐던 노래였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목회로 바꾸어서 불렀는데 참 마음에 와 닿았다.
 
“목회 참 어렵다~ 어렵다 ~ 너무 힘들다 있는 그대로 날 바라보면 괜찮을 텐데 목회 참 어렵다~ 어렵다~ 많이 아프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부족하니까”
 
목회가 쉽지 않다는 말인데 목회하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성도들의 문제 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집사님의 ‘지지리도 복없는 X’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를 승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복음이 있기에 징크스는 승리로 마감하게 된다.
 
실은 목회가 힘들어도 할 만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징크스를 이길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 가운데 어떤 일을 만날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실 것이고 결국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 승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샬롬 〠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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