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 머문 자리

양병구 | 입력 : 2020/01/29 [11:47]

해마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호주의 학교들이 긴 여름방학 동안 유학생들은 한국의 가족 품으로, 그리고 교인들은 가족 단위로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호주 어느 교회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필자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도 예외없이 이 기간에는 많은 교인들이 휴가를 떠나서 주일 예배당 자리가 많이 비는 모습이 연출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관광차 왔다가 여행 일정을 잠시 내려놓고 주일에 예배드리러 나온 사람들이 그 빈자리의 일부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지난 1월 12일 낮 2부 예배시간에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조금은 특별하고 반가운 가정이 함께 예배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의 모 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하던 중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골드코스트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 만났던 S라는 청년이었다.
 
내가 담임목사로 부임하던 그 당시 교회는 분열의 아픔으로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담임목사로 부임하기까지 7개월 동안 교회에는 담임목사가 부재한 상태였다.
 
내가 부임한 후 약 3개월 동안 주일 예배시간에 새가족으로 등록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4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주일에 시드니에서 K라는 여자 청년이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이 되어서 골코스트로 이주했다가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 3개월 내내 새가족이 없다가 한 명의 교인이 등록했을 때 감격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한 영혼에 대한 기쁨과 감격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청년은 두 주일 예배에 참석하더니 세 번째 주일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교회에 가지 못했다고 하면서 다음 주일에는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참석하지 않아서 그 청년에게 또 다시 전화를 했더니 그제서야 그 청년은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특별히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지난 두 주일에 걸쳐서 골드코스트의 다른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었다는 것과 이제부터는 그 교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한 명의 새 가족이 간절했던 나는 너무나 허전하고 당황해서 그 청년에게 교회를 옮기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청년은 “한 마디로 교회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겠다. 목사님과 사모님 외에는 그 누구도 교회에 등록한 자신에게 말을 붙여주거나 환영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담임목사 내외를 제외하고 같이 밥 먹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밥을 먹었는데, 마치 자신이 못 올 데라도 온 것처럼 느껴졌다”라고 대답했다.
 
교회의 분위기가 이러한 바로 그때 새가족으로 등록한 청년이 서두에서 언급한 S라는 남자 청년이었다. 그 당시 그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다. 교회에 등록한 그날 그는 나에게 그의 여자 친구는 예수를 믿는데,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 그 여자 친구의 언니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 친구 언니의 권유로 교회에 나와서 등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며 말씀을 듣는 가운데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청년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 청년은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후부터 자신이 조기축구회에서 만난 남자 청년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조기 축구 회원들을 우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Southport State High School의 잔디구장으로 데리고 와서 축구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는 조기 축구를 마친 회원들을 교회의 예배에 초대했다. 그래서 어떤 주일에는 10명 이상의 청년들이 한꺼번에 등록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등록했던 모든 청년들이 매 주일 빠지지 않고 예배를 잘 드리거나 모두가 S청년처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침 일찍부터 힘껏 축구를 하고 온 청년들은 온 몸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예배시간에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땀 냄새를 풀풀 풍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종종 아침 일찍부터 힘껏 축구를 했기 때문에, 그 청년들이 예배시간에 꿀맛 같은 잠을 즐기느라 크게 코를 골다가 예배 분위기를 해치기도 했다.
 
게다가 한 주간 동안 한국 음식을 구경도 못했던 청년들은 점심시간에 2-3명 분의 점심을 뚝딱 해치워버려서 점심 식사를 준비했던 여선교회원들을 종종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몇 가정이 되지 않았던 장년 성도들 중에서는 청년들이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떤 성도는 나에게 찾아와서 “목사님, 돈도 안되는 청년들, 밥값도 못하는 청년들을 왜 자꾸만 데려와서 우리들을 힘들게 만듭니까? 얘네들은 몇 달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버려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S라는 청년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주일 계속해서 청년들을 교회에 데리고 왔다.
 
몇몇 성도들의 항의가 있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S청년의 전도는 교회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 살벌한 분위기의 교회, 새 가족이 등록을 해도 말 한 마디 붙여주지 않는 싸늘한 교회의 분위기가 청년들로 인해서 젊은 청년들이 많은 교회,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있는 교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새가족들이 등록할 수 있는 교회, 청년들이 많이 등록하는 교회, 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에서 이민 온 젊은 가정들이나 호주의 타지역에서 지역이동을 해온 가정들이 많이 등록하는 교회라는 이미지로 바뀌게 되었다.
  교회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은혜 베푸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시간에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 S청년을 교회에 보내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그 청년 한 사람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세워주셨다.
  이민목회에 대해서 전혀 준비되지 못한 채로 이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나를, 아니 이민은 상상조차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초기에 호주의 삶과 이민목회에 적응하는데 헌신적으로 도와준 부부가 있었다. 어떤 교인이 말했던 것처럼 돈도 안 되는 청년들(?)이 몰려와서 2-3인분의 점심을 뚝딱 해치움으로 해서 준비해온 음식이 모자라 당황했을 법도 하지만 청년들을 향해서 미소를 잃지 않고 맛있게 많이 먹으라고 격려해주곤 했던 여선교회원들이 있었다.
 
서울 온누리교회의 파송을 받아 6개월, 1년, 혹은 1년 6개월씩 골드코스트에 머물면서 일 주일에 몇 팀의 일대일제자양육성경공부를 헌신적으로 인도해 주셨던 일만 하던 사역자들이 있었다.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새가족들의 정착을 도와준 도우미들이 있었다.
 
지금도 매 주일이면 아침 이른 시간에 학교 강당과 강의실 의자를 깔고 예배장비를 나르며 찬양을 준비하고 교회 버스로 셔틀을 돌면서 성도들을 픽업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있다. 특히 뜨거운 여름철에도 수년 동안 아무런 불평 없이 교회의 음식찌꺼기와 쓰레기를 치우면서 정리정돈을 하는 분들이 있다.
 
한때 대한민국의 공중화장실에 걸려 있었던‘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먼진 에티켓 문구가 있다. 인간이 머물다가 떠난 자리는 어떤 흔적이든지 남게 마련이라는 말일 것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작곡가는 오선지에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다. 향수를 파는 사람이 머문 자리에는 향수 냄새가 남게 마련이다.
 
신앙인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한 사랑의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다. 나와 S청년을 알고 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S청년은 교회의 분위기를 바꾼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앙의 사람, 예수님 닮은 사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던 사람, 교회를 화목하게 만들었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던 사람… 과연 내가 죽은 후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양병구|골드코스트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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