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3주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는 단상(斷想)
 
양병구/크리스찬리뷰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발전에 공헌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후퇴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 분야의 회화와 조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기본적으로 중세의 성화나 조각상이 단순히 예술작품 차원을 넘어서 숭배의 대상으로 우상화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로마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던 건물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경우 그들은 그 안에 장식되어 있었던 조각상들을 제거하거나 소품 정도만 허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시대에는 성화나 조각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각 나라의 국어 문학 발달의 촉진제가 되었다

 

중세교회는 라틴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당시 사제들과 소수의 지식인들 외에는 라틴어로 진행되는 예배의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중세교회는 평신도들에게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해서 교인들이 직접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자국어 성경 번역은 그 당시 교인들의 교양을 높여주었고, 그때까지 거칠었던 자국어들이 문학적으로 다듬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번역은 각 나라의 국어 문학 발달의 중요한 촉진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음악 발전에도 중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교회 음악개혁에도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A Mighty Fortress is our God.)’라는 찬송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이 찬송은 그 당시 극심하게 핍박을 받았던 종교개혁자들과 현대의 루터파 교회들은 물론 현재까지 전 세계 모든 교단에서 즐겨 부르며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예배의식이 라틴어로 진행되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노래 가사도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성가대만 불렀습니다. 자연히 교인들은 자리에 앉아서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기만 했을 뿐 교회 음악에 직접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예배 의식에서 소외되었던 교인들을 예배찬송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루터는 당시의 화려하고 웅장하며 복잡했던 중세음악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단선율의 찬송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력에 맞추어 모든 주일에 부를 수 있는 코랄(Chorale)이라는 양식을 만든 후 20년 동안 117편이 수록된 찬송가를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독일 코랄은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루터에 의해 기초가 세워진 개신교의 음악은 그 후 쉬츠, 바하, 멘델스존, 그리고 헨델을 통해서 그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바하는 루터에 의해서 회중들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그 코랄을 기반으로 해서 코랄 전주곡, 코랄 환상곡 등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바하의 음악적 성과는 루터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음악적인 성과였습니다.

 

비텐베르크 시 교회와 종교개혁 4폭 제단화

 

독일 마르크트 시청사 광장에 있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랑히톤의 동상 뒤로 비텐베르크 시 교회가 있습니다.

 

이 비텐베르크 시 교회는 종교개혁의 중심지로서 종교개혁의 상징인 이종배찬, 즉 성찬 시간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나누어주었던 역사적인 현장, 교회 음악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코랄이 만들어지고 불려졌던 곳, 종교개혁자 루터가 선포했던 다수의 설교와 삶의 자리, 개신교 최초의 청빙목사 요하네스 부겐하겐이 세워진 곳, 등등의 종교개혁의 역사가 집중되어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이곳에 루터의 교회관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종교개혁 4폭 제단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제단화의 의미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는 원래 선제후의 궁중화가였습니다. 그는 30여 명의 보조 화가를 화실에 둘 만큼 성공적으로 화실을 운영했던 예술가요 사업가였으며 성경을 그림으로 번역한 루터의 종교개혁 동역자였습니다.

 

특히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비텐베르크 시 교회의 4폭 제단화는 시각예술로 표현된 개신교 교회론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크라나흐가 그린 이 제단화에는 ‘교회는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사귐이다.’ 라고 요약되는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항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제단화의 중앙 패널에는 성찬을 받고 있는 루터, 좌측에는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멜랑히톤, 우측에는 공적 고백을 듣고 있는 요하네스 부겐하겐이 그려져 있고, 하단 패널에는 회중을 향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루터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이 제단화를 보기만 해도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무엇이 다른 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제단화는 교회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제단화 중 하단 패널의 의미

 

특히 루터가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하단 패널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인 설교가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오른 쪽 제단에서 설교하고 있는 루터는 손가락으로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림의 왼쪽에 있는 회중들은 말씀을 전하는 루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루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설교란 죄인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비텐베르크 시 교회 4폭 제단화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읽거나 쓸 줄을 몰랐던 대다수의 그 당시의 교인들에게 로마 가톨릭교회와 구별되는 십자가 중심, 그리스도 중심, 만인 제사장직이라는 교리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소중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설교자들은 4폭 제단화 앞에 서면, 말씀을 선포할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을 전하기로 결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종교개혁과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이와같이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개신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방면에 큰 울림이 되고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10월 25일을 제503주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게 될 것입니다.

 

제503주년이 되는 10월에 우리 모두가 교회됨이 무엇인지, 설교자는 설교가 무엇이며,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지, 그리고 설교를 경청하는 예배자들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호주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과 성도들은 이민 사회의 제 영역에서 어떻게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지를 점검하는 또 한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양병구|골드코스트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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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28 [12:5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