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다는 것

백종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12/29 [14:40]

 

새해의 다짐

 

지난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멈추어 버렸기에, 지난 새해에 세웠던 계획을 정상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난 한 해 동안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를 만회하고자 2021년 새해에는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이를 더 빨리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자라감에 있어서 조급한 마음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령 새해의 다짐으로 기도생활과 성경읽기, 가정예배와 같은 신앙생활로부터 시작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를 서두른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결과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걸어가는 과정 자체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를 때면, 산 정상에 빨리 올라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내가 너보다 빨리 산을 정복하겠어”라며 경쟁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란, 얼마나 빨리 산을 정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면서, 그 숲속의 나무와 꽃, 곤충과 동물들,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을 느끼듯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어린 왕자와 길들임

 

이러한 관계의 깊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주는 책이 있는데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입니다. 이 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은 ‘길들임’에 대한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 중에 어린 왕자가 말합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여우가 대답합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바로 그 ‘관계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한평생 누구인가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만남의 측면에서 보면, 싫은 만남도 있고, 좋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들임의 본뜻은 성실한 측면이 강조됩니다.

 

어린 왕자의 저자가 여우의 입을 빌어서 하는 말을 들어봅시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생텍쥐페리는 여우를 통해 계속하여 말합니다.

 

“내 생활은 지루하고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소리와 구별되는 너의 발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저기 밀밭이 보이지! 밀은 내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하지만 너는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을 가졌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이 아주 멋지게 보일거야!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을 보면 너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밀밭 사이를 스치는 소리도 사랑하게 될 거야.”

 

육식동물 여우에게 밀밭이란 무가치합니다. 그런 여우에게 밀밭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어린 왕자와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힘, 사랑이라고 명명된 이 힘을 “어린 왕자”는 ‘길들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데 인색한 우리들의 모습이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통해 부끄럽게 투영됩니다. ‘길들여짐’이라고 표현된 관계 맺음은 책임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서로에게 길들여짐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길들여짐은 서로에게 서로가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스마트폰과 SNS 등의 발전과 더불어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폭은 예전과 비교해서 굉장히 넓어졌지만, 그 관계의 질까지도 넓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있는 반면에, 그 관계는 일시적이고, 가볍고, 또한 진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길들여지기까지 참지 못하고, 세상과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 결과 소중한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하지만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여겨질 수 있는 깊은 관계를 우리가 다시금 맺을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굉장히 새롭게 변화할 것입니다.

 

지루하고 심심한 일상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가치 있는 일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광야와 길들임

 

이제 ‘길들임’의 의미를 우리의 신앙에 대입해 보십시다. 우리는 복음에 길들여져 있습니까? 기쁨, 생명,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우리는 ‘길들여진’ 관계에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의 삶에서 기쁨이자 행복이시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존재인가요?

 

많은 성도분들이 주일에는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지만, 우리는 힘들 때에만 하나님을 찾을 뿐, 평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며,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광야가 필요합니다. 광야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욕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욕구가 결코 선하지 않은 동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깨어져야 하는 것임을 우리가 깨닫도록,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시기 위해 하나님은 광야를 사용하시는 것이죠.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결단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 배와 집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제자의 출발이었지 완성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왕자의 자리를 포기한 것이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도망자의 삶의 살았던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결단이 있었지만, 그 이후의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그 광야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며 지키심에 있어서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2021년 새해에는

 

2021년 새해에 어떤 계획들을 세우시겠습니까? 조급한 마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지난 2020년의 팬데믹처럼 우리가 원치 않는 어려움과 위험이 또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성실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소원을 가지며,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면, 우리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동성과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백종규|히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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