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받지 뭐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1/27 [11:35]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나는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입안에 침이 마르고 깔깔했다. 나를 업무상배임죄로 고소한 여자가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검사 앞에서 나를 욕하면서 공격하고 있었다.

 

모멸감이 피어올랐다. 젊은 검사와 서기는 처참해지는 내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잔인성이 표정 이면에 숨어 있었다.

 

“우리 부부가 돈 벌어서 산 오층 빌딩에 대한 재산 분할을 저 변호사가 자기 마음대로 포기해서 받아내지 못하게 했어요.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재산을 포기하죠?”

 

필요에 따라 포기할 권한도 위임받았다. 위임장에는 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검사는 위임의 내용이 적혀 있는 그 핵심 증거는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든 죄인을 만드는 쪽에 신경이 가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어떻게 생각하죠?”

 

검찰 서기가 일부러 변호사였던 나에게 ‘피의자’라고 강조하면서 물었다. 옆에서 검사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태도는 비둘기같이 유순하게 해도 대답은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었다.

 

“변호사는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을 받게 하면 그 성공보수로 큰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내가 포기했을까요?”

 

내가 검사와 서기를 향해 되물었다. 그 말에 검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성공보수로 변호사에게 얼마를 주기로 약정했어요?”

 

“그런 거 없었어요.”

 

검사가 나를 보고 물었다.

 

“왜 성공보수를 정하지 않았죠?”

 

“부부 간 결혼 중에 땀 흘려 벌어서 산 재산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확인해 보시죠.”

 

그 점은 자명했다. 팔십 년도면 한강변의 고급 아파트를 이천오백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스물세 살이었고 남편은 대학 복학생으로 스물일곱 살이었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검사나 검찰 서기는 그녀가 나를 욕하고 모욕을 주게 놔두면서 즐기는 것 같았다. 잡아내고 싶다는 사냥꾼의 집요한 눈빛이 검사의 눈에서 이글거렸다. 검사가 그녀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변호사를 어떻게 보세요?”

 

“전부 엉터리예요. 남편한테서 돈을 받아먹고 저에게 불리하게 소송을 했을 거예요. 저 사람 벌 받아야 해요.”

 

그때 검사실로 그 사건을 송치한 경찰서 담당 형사가 들어왔다. 그는 검사 앞에서 나와 그녀가 대질하는 걸 보면서 히쭉 웃으면서 내뱉었다.

 

“두 분 다 엔간하시네요. 서로 원만히 합의하시고 끝내세요. 좋게 사셔야죠.”

 

나는 오물을 뒤집어쓰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남편과 내통한 업무상 배임범이라고 속으로 단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뿐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었다.

 

그냥 보면 보이는 너무 뻔한 사실을 외면하는 검사나 형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속에 오래 있으면 그 악취가 영혼에까지도 배어드는 것 같았다.

 

뜨거운 여름의 오후 여섯 시가 넘자 검찰청의 에어콘이 중단되고 찜통 속 같은 열기가 검사실에 가득했다. 야구르트를 배달하는 여자가 검사실에 와서 검사와 서기 책상에 야구르트를 한 병씩 놓고 갔다. 그들은 내 앞에서 그 야구르트를 맛있는 듯 홀짝 마셨다.

 

그들에게 나는 잡혀 온 하나의 짐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실 좁은 쪽창으로 밤하늘에 뜬 별이 하나 보일 무렵이었다. 시계가 밤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검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저는 지금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배임죄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의를 입증하려면 고소인의 남편을 수사해야 합니다. 앞으로 그 남편을 소환하고 검찰에 오지 않으면 지명 수배할 겁니다. 그때 다시 조사할 겁니다.”

 

한 번 나를 문 검사는 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였다. 나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그들은 과거 부부였다. 남편의 거짓말 하나면 나는 깊은 함정에 빠질 것 같았다. 사법적 현실에서는 진실보다 두 명 이상의 일치된 거짓말이 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검사는 이미 그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 고교동기인 재경부 국장이던 변양호가 구속된 게 신문에 났다. 외환위기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럴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으로 가는 것 같았다.

 

진실하다고 잘못이 없다고 바로 무혐의나 무죄가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담당검사실에서 사건을 종결할 시간이 넘어갔는데도 통지가 없었다. 검찰청에서는 사건처리를 결정하면 바로 관계자에게 통지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검사를 하는 고교후배를 통해 나의 사건 처리결과를 확인해 보았다. 담당 검사의 무혐의 처분이 이미 나 있었다. 그걸 내게 통지하지 않은 것이다. 담당 검사는 면죄부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당사자의 애타는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 서울중앙지검 사백십삼호 검사실로 찾아갔다. 나는 더 이상 피의자가 아니었다. 당당한 변호사였다.

 

담당검사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내가 검사실로 들어섰는데도 그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투명인간인 것 같았다. 내가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나 기억해요?”

 

“기억을 하다마다요. 왜 못하겠습니까?”

 

그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건 처리결과를 통지받지 못해서 왔는데 말이죠.”

 

“어? 그거 벌써 무혐의처분을 했는데 아직 통지를 못받으셨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구석에 있는 검찰청 여직원에게 소리쳤다.

 

“김 양아 여기 이분 사건 피의자 통지 절차가 되지 않았다는데?”

 

“그건 사건과에서 해요.”

 

검찰청 여직원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자신들의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 여자의 남편을 철저히 수사했습니까? 업무상 배임죄라고 생각한 제 고의가 입증되지 않습디까?”

 

내가 물었다.

 

“그 남편을 불러서 조사했죠. 자기 부인이 원래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툭하면 남을 고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 빌딩 중에 자기 이름으로 있는 걸 노리고 그런 짓을 했답니다. 그런 뻔한 거짓말을 검사님은 믿느냐고 반문하더라구요.”

 

그냥 보면 보이는 거짓말을 검사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검사와 그녀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그 검사는 지금 중진 정치인이 되어 활약을 하고 있다. 아마 대통령이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가 야망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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