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2/22 [11:25]

 

얼마 전 길을 가다가 개를 안고 지나 가던 젊은 한국 여성이 개를 길가에 놓으면서 “잠시 여기서 기다려! 엄마가 잠깐 가게 들어갔다 올게”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어떻게 개를 낳아서 개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일까? 아마도 개를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개의 엄마라고 하였으리라 이해는 간다.

 

요즘 사람들이 개를 너무 좋아한다. 개를 쓰다듬어 주며 개를 안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고 개와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개를 소파(Sofa)에 앉히고 손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침에 조깅하려고 길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개를 찾고 있는 쪽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개의 모양은 어떻고, 크기는 어는 정도이고, 이 개를 찾아 주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보상을 하겠노라고 하는 광고문을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또한 길을 걷다 보면 개를 데리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살피며 걸어야 한다. 어떤 개는 매우 공격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주인은 풀어 놓고 사람을 물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사람보다는 개가 더 중요하다는 자세이다. 미국이나 호주나 서구인들은 개를 자기의 가족 수준으로 생각한다.

 

이른바 이민자의 인권 (human right) 보다는 그들의 견권 (doggie right)를 훨씬 더 존중한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에 개들이 이처럼 높임을 받고 사람보다 대접을 더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믿을 수 없어도 개는 믿을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용돈이 생기면 술과 마약을 사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보다는 개가 훨씬 더 신사적인 것이 아닐까? 조강지처와 고생 고생하며 함께 한 최초의 아내를 버리고 딴 여자를 데리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하여 말할까?

 

내가 오래전에 뉴욕에서 가까운 롱 아일랜드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가 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미국 어느 교회 목사는 개에게 세례를 주는가 하면, 어느 신학교에서는 개에게 신학박사 학위까지 준다고 하니, 이제는 교회마저도 개판이 되어 버렸나 보다.

 

어느 목사님의 목격담을 들어보면, 개를 위한 장례식에서 목사가 집례를 하는데, 놀라운 것은 집례하는 목사가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장차 천국에 가면 이 개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고 했단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말이다.

 

그 목사는 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든지, 아니면 개의 주인이 헌금을 많이 하고 교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유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 눈치 살피고 사람 비위 맞추는 숙맥 목사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개가 아무리 영리하고 사랑스러워도 개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개를 좋아할까? 생각해 보면 사람은 믿을 수 없어도 개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민 와서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딱하게 생각하여 도와 주었더니, 나중에 자리잡고 나서 오히려 욕하고 배신하고 돌아서는 경우를 당하고 격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개만도 못한 <N>”이란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이 시대는 개들에게 물리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빌 3:2)〠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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