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살의 노철학자가 말하는 ‘일’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EBS 초대석에 출연한 102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2021. 1.7). 김 교수는 현재도 방송 출연 및 강연회와 간증, 설교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유튜브에서 백두 살이 된 김형석 교수의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돈만 준다면 여기저기 강의를 나갔죠. 그렇게 하다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까 이번에는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노 철학자의 말에는 오래 숙성된 된장처럼 단순한 지식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친 스밈과 우러남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한번은 삼성그룹에서 초청받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 같은 날 대구에서 교사들이 강연을 해 달라고 초청을 한 거예요. 돈으로 치면 삼성그룹이 훨씬 많죠. 그러나 교사들에게 강연을 하면 그게 제자들에게 번져나갈 생각을 하니 그쪽이 훨씬 의미있게 여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삼성측에 양해를 얻고 대구에 가서 강연을 하고 왔어요. 기차를 타고 하루종일 갔다 오느라고 피곤 했지만 보람이 있었어요.”

 

백두 살 먹은 노인의 말이 가슴에 스며들어왔다. 나의 변호사 생활도 그랬다. 처음 개업할 무렵 중풍에 걸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책임져야 했다. 아내와 여섯 살짜리 딸 두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가족이 모두 나의 책임이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것 같았다. 판사실과 검사실을 드나들면서 고개를 숙이고 사정을 했다. 돈은 인간관계에서 굴러다녔고 참담한 굴욕감 속에서 나오곤 했다. 세월이 흐르고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의 돈이 내게 생긴 것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재벌 사모님이 살인 청부를 한 사건의 살인범의 변호를 맡았었다.

 

미국의 오제이심슨 사건 같이 돈 많은 사람들은 유죄를 무죄로 만들기도 했다. 거액을 줄 것을 증인에게 약속하고 부자는 사건을 변질시키려고 했다. 그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한 게 나였다.

 

나에게도 낚시밥이 던져졌다. 침묵하면 돈이 생길 수 있었다. 나는 그걸 거부하고 진실을 폭로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세상이 싫었다. 그런 일을 통해 나는 돈이 아닌 법률가가 된 의미를 찾았었다. 유튜브의 방송 속에서 노철학자인 김형석 교수가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돈에서 의미로 일을 하는 목적이 바뀌었었는데 그 다음 단계가 있었어요. 뭔고 하니 마지막에는 내가 번 돈을 쓰면서 일을 하는 거예요. 바쁘고 재미있었어요.”

 

노 철학자와는 경로가 다르지만 나도 그런 계기가 있었다. 한 의뢰인을 잘못 만나 함정에 빠졌었다. 모략으로 소송에 걸리고 내가 배상금을 물어줄 상황이었다. 판사들 중에는 ‘너 잘난 체 하더니 이번에 한번 당해 봐라 버릇을 고쳐 줘야지’하는 흰 눈을 뜨고 나를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의미를 찾은 일을 한다고 하다가 밉보인 면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약속했다. 억울하게 돈을 뺏기지 않게 해 주시면 사탄이 내게서 빼앗으려는 그 돈을 이웃을 위해 보람있게 쓰겠다고. 다행히 생각보다 조금 뺏겼다.

 

나는 요즈음 즐겁게 돈을 쓰고 있다. 마음을 담은 돈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소박한 삶을 산다면 일생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돈 때문에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의 갑질만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 다음은 의미를 찾는 삶이다. 그 의미가 뭘까. 관계라고 할까? 아니면 예술? 하여튼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을 만드는 게 아닐까?

 

며칠 전 고등학교시절부터 칠십이 가까운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면서 지내오는 친구가 굳이 내게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그는 일부러 나를 생각해서 나의 집 근처까지 일부러 와서 간장 국물이 맛이 있는 스끼야끼를 샀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남은 날이 잘해야 십 년이라고 생각해. 나는 요즈음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해. 그리고 일평생 노인이 된 지금만큼 마음이 편해 본 적이 없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백 살을 넘게 산 노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우리 나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다. 철이 들어 비로서 제대로 사는 시절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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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2 [11:4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