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땡 술래잡기
 
백종규/ 크리스찬리뷰

얼음이 되는 사람들

 

독자 여러분은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어떤 게임을 한 것이 생각나십니까?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에서는 여자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많이 했고, 남자들은 팽이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와 같은 놀이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중에서 남녀 상관없이 많이했던 게임 중에 ‘얼음땡 술래잡기’ 놀이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술래에게 붙잡힐 것 같으면 ‘얼음’이라고 외치며 멈추어 설 수 있고, 술래는 그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대신 멈추어 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와서 ‘땡’이라고 외치면서 쳐 주면, 다시 움직일 수 있는데,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말하기 전에 술래의 손이 닿거나, ‘얼음’이라고 말한 후에 움직이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되는 그런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얼음땡 게임’을 하지 않아도 얼음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항상 얼음처럼 경직되고 표정과 말투가 굳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모두가 부담스러워하고 어려워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단지 권위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예상치 못했던 감정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서로 간의 감정이 소통이 잘 안 되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학위도 가지고 있고 기술도 가지고 있는 전문가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해서 아이큐가 더 높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재능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건강이 약하기 때문도 아니라 마음이 얼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린 시절 어떤 상처를 경험하고 그것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는 우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그런 위기와 상처가 우리에게 닥친다면, 여러분은 한 가지 사실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처와 위기의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단지 죽음 이후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영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우리를 영적이며, 감정적인 감옥에 사로잡아두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

 

그렇다면 트라우마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셨던 분이라도 다시 한 번 추천드리고 싶은데 이 영화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윌’과 그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려는 상담가 ‘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긴장감을 잘 드러낸 작품입니다.

 

윌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양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전혀 믿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의 천재성은 램보 교수의 눈에 띄게 되었는데 윌이 폭력사건으로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놓이자 램보 교수는 감옥 대신에 상담 치료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윌은 상담가들의 머리 위로 기어올라 그들을 비웃고 그들의 치료를 조롱합니다. 하지만 윌의 심리치료를 맡게 된 숀 교수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건드리는 윌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결코 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네가 아니라고 해도 사실 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내가 도와줄께!”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손을 내미는 숀 교수의 믿음이 윌의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담의 시간에 윌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피하려고 하자 뜻밖에도 숀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나도 너와 같은 학대를 받았었다. 렌치와 혁대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양아버지가 물었을 때, 나는 혁대를 선택했다.”

 

윌은 숀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를 학대하는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만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숀 교수는 흥분한 윌에게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그건 알고 있으니 그만해!” “아니, 넌 알고 있지 않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거듭되는 숀 교수의 말에 윌의 견고한 마음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숀 교수의 외침이 윌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숀 교수 자신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먼저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나도 너와 같은 고통을 겪어왔어. 그래서 너의 아픔을 잘 알지. 넌 혼자가 아니야”

 

사실 트라우마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머리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학대했던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어린 피해자에게 “네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거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반복하며 전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해자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더욱 큰 고통을 당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부정적인 편견으로 인해 피해자 자신 또한 부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숀 교수의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이, 이러한 오해들 “그건 네 잘못이야”라는 오래된 저주를 깨뜨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거짓말들, 우리를 향하여 ‘어둠’이라 말하고 “저주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윌에게 분명한 상처와 아픔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나는 죄가 없다고, 상처가 없다고,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는 사단의 공격과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며 나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을 수 있다면 내가 죄인이라며 저주 속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나에게 힘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 ‘윌’이 오랜 시간 지녀왔던 자책감을 내려놓은 뒤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램보 교수가 준비해 준 앞날이 보장된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오랫동안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했던 윌은 상처가 극복되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삶을 그리고 있습니까? 혹시 ‘얼음땡 게임’의 얼음처럼, 우리의 마음이 단단하게 얼어있지는 않습니까? 어린 시절과 비교해서 우리의 몸은 커지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여서, 얼음이 된 채로 사람들을 만나고, 굳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라며 도망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의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꺼내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실한 고백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만지심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지며, 새로운 삶으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백종규|히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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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28 [11:3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