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지 말고 말하세요

백종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8/30 [12:28]

소중한 사람

 

어느 한 신사가 어머니에게 보내드릴 꽃다발을 주문하기 위해서 꽃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가 꽃가게 앞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사는 그 소녀에게 다가가 왜 우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신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엄마에게 드릴 꽃을 사고 싶은데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은 저금통에 들어 있는 동전 몇 개가 전부라서요."

 

신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랑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꽃을 사줄게."

 

신사는 소녀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소녀에게 꽃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의 꽃다발도 함께 주문하고, 배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신사는 가게를 나오면서 소녀에게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소녀는 신사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면서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공동묘지였습니다. 차에서 내린 소녀는 한 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엄마”하면서 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소녀의 모습을 본 신사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곧바로 꽃가게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보낼 꽃 배달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예쁜 꽃다발을 직접 사 들고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인생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학업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며,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 정작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의 진심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못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나의 진심을 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소통

 

그렇다면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내가 상대방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한 번 지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져야 할 것 같고, 계속해서 내가 손해 볼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자신의 진심을 열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너와 비교해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면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수록그 속마음에는 ‘열등감’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열등감이란,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을 말하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서 자존심을 더욱 내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면 감출수록오히려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식의 관계로만 남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함께 다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질투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보다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고 무엇을 하든지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비교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 혼자서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친구가 하는 행동마다 안 좋게 보이고 꼬투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속마음을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가진 열등감, 질투심, 그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고백하게 되면 제가 그 친구에게 지게 되는 것입니까? 제가 갑, 을의 관계에서 을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단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던 친구에서 이제는 더 많은 것을 ‘소통’하는 친구로 바뀐 것입니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더 깊은 우정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약점과 부족함을 막힘없이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친구가 된 것입니다.

 

즉, 진정한 소통은, 누가 더 높은가, 더 낮은가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처럼,

 

이러한 소통이 우리의 믿음생활에 있어서도 너무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자신을 감추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조차 우리의 마음을 숨기려고 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 또 실수했어요. 저 무엇 때문에 속상해요.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의 죄와 속마음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고백하며 그 용서와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정작 많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그들을 찾으실 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을 감추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이 여자가 저에게 선악과를 주어서 먹었습니다.”, “하나님, 뱀이 저를 속였어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아담과 하와처럼 내 잘못이 아닌 양 내 문제가 아닌 양 모르는 척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너무 부끄럽고 혼날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죽 옷을 입히시고 여자의 후손 곧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이런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컵을 깨트리거나 동생과 싸웠을 때 어떻게 변명을 합니까? 언니가 컵을 여기에 두었어요. 동생이 밀어서 컵이 떨어졌어요.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 탓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두 배는 더 혼나는 겁니다. 그냥 자기 잘못만 인정하면 그냥 용서하고 넘어갈 것도 상대방 탓을 하다가 더욱 혼나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즉, 부모가 자녀를 결코 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기에 변명과 거짓말로 자신을 숨기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감사와 사랑의 고백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내가 은혜 받은 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실까?”

 

“내가 이 정도 일을 해야만, 하나님도 나를 인정하시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망설일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이신 것입니다.

 

갑, 을 관계로 말한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존심을 생각하셨다면 불가능한 거래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기에 이같이 우리를 위해 찾아오셔서 손 내미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 사랑에 반응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성도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감사와 사랑의 고백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백종규|히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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