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 인생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Jon Tyson     


나의 법률사무소에는 별별 희귀한 인물이 찾아오기도 했다. 한번은 재벌 아들이던 친구가 나의 사무실로 놀러 오면서 특이한 사람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부자인 친구는 젊은 시절부터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 있으면 밥과 술을 사주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게 그의 취미 같기도 했다.

 

그가 데려온 인물은 삼국지의 방통 같은 책사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움푹 들어간 눈에 합죽이 입은 원인모를 슬픔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부자 친구를 ‘주군’이라고 불렀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인물을 살펴 보았다. 술자리에서 그를 보면 문학부터 철학, 예술 그리고 현실 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는 종횡무진으로 현란하게 혀를 휘둘렀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의 얘기에 빠져 들었다. 그는 나의 사무실 벽에 있던 그림도 대번에 그 작품성을 판단했다. 그는 대단한 심미안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친구 어떤 인물이야?”

 

내가 한번은 그를 데려온 부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아버지는 남노당 핵심으로 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의 중심에 있었다고 하더라구. 어머니는 대학교수 출신이고. 저 친구 머리가 비상해서 중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톨스토이와 토스토엡스키를 섭렵했다고 해. 그리고 지금도 시를 쓰고 있지.”

 

친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 친구 사십 대까지는 대단했어. 잘생긴 인물에 말도 잘했지. 머리도 좋고. 재벌 2세들에게 붙어 다니면서 돈도 잘 벌었어. 모습을 보면 명품으로 치장하고 벤츠를 타고 다니면서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구해 부자에게 소개를 하기도 했지.

 

더러는 재벌가 내부에 상속을 둘러싸고 분쟁이 있을 때 재벌 2세 옆에서 책사 노릇을 하기도 하고 말이야. 사할린 지역의 어장을 독점계약하기 위해 러시아 마피아와 단독으로 담판을 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광산의 대리석을 얻기 위해 군부 장군과 계약을 하기도 했지.”

 

나는 부자 친구가 소개한 그 인물과 더러 어울렸다. 그 인물은 모임에서 이따금씩 시상이 떠오르면 술집의 벽에 짧은 시를 적기도 하고 메모지에 일본의 하이쿠 형식의 이행시를 써서 내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는 발도 꽤 넓은 것 같았다. 카페에 가면 다른 좌석에 앉아 있는 영화감독이나 스타들과도 스스럼 없이 막말을 하곤 했다.

 

내가 톨스토이나 토스토엡스키에 대해 물으면 그는 내가 그 작가들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천재가 쓴 책은 천재만이 그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돈에 대해 나오면 몇백억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재벌 2세들의 이름을 동네 강아지 부르듯 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와인바에서 만난 재벌 2세가 그를 보고 형이라고 하면서 깍듯이 인사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는 주먹 자랑도 했다. 누구와 붙어도 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밥과 술을 사고 약간의 용돈을 주면 한 달에 몇 시간씩 문학에 대해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따금씩 독특한 모습으로 나의 사무실을 들렀다. 어떤 때는 여성용 레깅스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고급 사이클을 타고 왔다. 또 다른 때는 브라운 계통의 멋진 프록 코트를 입고 씨디 플레이어에 연결된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나타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서는 차분한 안정이 아니라 들떠있는 부자연스런 느낌이 전해졌다. 2년쯤 시간이 지난 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이혼을 하고 며칠간 찜찔방에서 자고 밥도 굶었다고 했다.

 

나는 그를 사무실 근처의 팥죽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가 먹고 싶다는 굴전과 동동주 한 되를 시켜 주었다. 그는 이제부터 광산의 막장으로 들어가 일을 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내게 돈을 꿔달라고했다. 그게 나를 찾아온 목적인 것 같았다.

 

그는 당장 그날 밤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다고 했다. 자칭 귀공자의 영락(零落)이었다. 나는 그를 내가 관여하는 자활원으로 데리고 갔다. 밥과 잠자리를 주고 자체의 공장에서 일거리도 주는 곳이었다. 누구나 쉽게 들어가는 곳은 아니었다. 내가 특별히 추천자가 됐다.

 

이틀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말했던 돈을 달라고 했다. 내가 소개한 자활원의 책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사람 이틀 있더니 나가겠대요. 그러면서 처음 보는 나보고 돈을 꿔달라고 해요. 그리고 엄 변호사님을 마치 한참 아래의 동생같이 막 깔아뭉개고 자신을 과시하더라구요.”

 

세상에는 부자나 돈 있어 보이는 사람 옆에 붙어서 기생하려는 그런 허망한 인생들이 종종 있었다. 부자의 반짝 흥미의 대상이 됐다가 내쳐지는 인생들이었다.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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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30 [12:3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