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과 악령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9/27 [11:50]


62병동은 중증의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나는 청색페인트를 칠한 문 앞에 붙어있는 작은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철컥하고 자물쇠가 열리는 금속음이 나고 문이 열렸다.

 

길다란 복도가 보이고 그 옆으로 작은 방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방문들의 위쪽에는 손바닥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환자를 관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병실의 문들은 개방이 되어 있었고 환자들은 몇 명씩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문이 반쯤 열린 작은 방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철 책상 앞에서 네 명의 남자가 식판을 앞에 놓고 식사 중이었다. 그중 백인도 한 명이 보였다. 눈동자가 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앞에 있던 까치머리를 한 다른 환자가 그 백인에게 말을 했다.

 

“야 헬로우 밥 먹어 알았어?”

 

백인은 멍하게 까치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헬로우 밥 먹어 밥”

 

까치머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든 숟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갑자기 뒤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소리가 전해져 왔다.

 

“거기 아저씨 나 좀 봐. 우리 엄마가 말이야. 육이오가 나고 뺨에 검은 점이 생겼어.”

 

팔을 다쳤는지 기브스를 한 오십 대쯤의 여인이었다. 꽃핀을 머리에 꼽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아저씨 나 뼈 다쳤어.”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가 소리쳤다.

 

“아저씨 뭐야 의사야? 아니면 목사야?”

 

그녀는 순간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같이 적대감을 드러냈다. 환자들의 휴게실이 보였다. 탁구대가 있고 벽 위에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 구석에서 십대 말쯤의 소녀가 환자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관리하는 의사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병에 대해 물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보면 환각이나 망상이 일어나고 의심이 많고 때로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경우도 많죠. 의학계에서는 대뇌에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게 태어난 사람이 어떤 환경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분열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뇌에 이상이 생기는 거죠. 보통 암에 걸리면 그 부분의 조직을 떼서 바로 생검을 해 봅니다.

 

그런데 정신과에서는 그렇게 대뇌의 조직검사를 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죽은 후 병리검사인데 대뇌라는 건 죽기만 하면 즉시 달라지기 때문에 정신병의 원인을 연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바로 의문이 생겨 그 의사에게 물었다.

 

“종교인들을 보면 환각이나 환청의 경험을 얘기하고 방언도 하는데 정신의학에서 그런 건 어떻게 보십니까? 종교인들 내부에서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현상도 흔히 볼 수 있죠.”

 

“환청이나 환시가 있고 광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그 다음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신도들이 대부분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정신의학상 정상적이라고 봅니다. 정신병인가 아닌가의 구별은 요즈음은 사회적 기능을 기준으로 하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면 정신병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그렇다면 보통 때는 아주 건전한 시민으로 있다가 갑자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 흉악범은 정신병자일까 아닐까.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두뇌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만났던 한 남자는 특정한 날 밤 열두 시만 되면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금속성의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고 했다. 그럴 때면 견디지 못하고 나가서 범죄를 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잔인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벽돌로 앞에 가는 사람의 머리통을 묵이 되도록 짓이겼다.

 

목적도 없었다. 그냥 기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살인은 걸리지도 않았다. 수사본부는 단서 하나 잡지 못하고 해체되곤 했다. 특이한 것은 그는 교회의 모범신도였다. 직장도 있었고 텃밭을 가꾸어 거기서 난 채소를 동네에 나누어주는 마음씨 착한 남자였다. 나는 그의 범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한 엘리트 영화감독이 있었다. 화려한 앞날이 펼쳐져 있는 성공한 감독이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만들어 아내의 침대 위에 가져다 주던 자상한 남편이기도 했다. 둘만 사는 집에서 어느 날 아침같이 자던 아내가 목이 졸려 죽은 것이다.

 

수사결과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본 그 남자는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약한 심성인 것 같았다. 그가 감옥 안에서 내게 이런 호소를 했었다.

 

“새벽 무렵 침실 창문 밖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가 어른 거리는 걸 잠자리에서 직감했어요. 이따금씩 그 존재가 우리 부부를 살펴보는 것 같았어요. 그날은 자고 일어나 보니까 아내가 목이 졸려 죽어 있는 거예요. 아마도 그놈이 아내를 죽인 게 틀림없어요.”

 

그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범죄는 이성이나 양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범시민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걸 보면 의학자들이 말하는 기준의 정신병자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의식 없는 기계같이 움직이는 그 배경의 실체가 궁금했다. 나는 인간에게는 두뇌의 작용 말고도 영적인 것을 감지하는 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의 영이라고 할까. 그런 인간의 영은 수많은 외부의 영이 들어와 묵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예수는 귀신 들린 남자에게 물었다. 군대 귀신이 들어있는 남자도 있었고 일곱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오기도 하는 장면이 있다. 악령이 인간 속에 들어오면 인간을 자신의 기계로 만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재판관은 이성으로 논리로 그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설명하라고 했다. 그 대답이 불가능했다. 나는 많은 범죄자들이 악령에 잡혀 있는 걸 봤다.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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