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고난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0/26 [10:39]


살인죄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이십 년을 감옥에 사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보다 더한 현실의 불우한 남자였다. 거지인 그를 살인범으로 만들어 사건을 종료하는 것이 담당형사가 한 짓이었다.

 

검사도 판사 앞에 거지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는 그냥 사회의 쓰레기통인 감옥으로 갔다. 그는 감옥을 우연히 찾아간 내게 절규했다.

 

“하나님은 없어요. 만약 있다면 나 같은 놈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나님은 정말 사람도 아니야. 나쁜 놈이야.”

 

그의 처절함이 그대로 나의 가슴에 전해져 왔다. 그런데도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거짓 증인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찾아도 그들은 진실을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가 왜 거지가 되어 고통을 겪고 살인의 누명을 쓰고 일생을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왜 나만 어려서부터 걷지 못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장애인인데다가 정말 가난했어. 대학 다닐 때 버스 토큰이 없어서 목발로 스무 정거장을 걸어 간 적도 많아. 왜 내게만 이런 고난이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성경을 봐도 나 같은 사람에게 대답을 주지 않아. 불교 이론은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이렇게 됐다는 건데 내가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저질렀을까?”

 

그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되어 가난은 탈출했다. 그러나 나이가 칠십고개로 오니까 건강했던 다리마저 힘이 빠진다고 했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진 여판사가 있었다. 그녀가 살았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파출부나 술집 접대부를 하더라도 몸이 온전하다면 저는 판사보다 그쪽을 선택할 거예요.”

 

여판사로부터 그 말을 듣고 이 년 후쯤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을 극복하려고 고통스러운 공부만 하다가 저세상으로 간 것이다. 세상은 참 이상하다.

 

사기로 여러 사람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사람이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기도 했다. 날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어 가짜 애국자 노릇을 하면서 고위직을 전전하는 걸 보기도 했다. 악인들은 잘되고 오래 살고 착한 사람들은 잡혀 먹히는 양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그 이유들을 속시원하게 대답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나는 이따금씩 백 년 전 살았던 현자인 한 노인에게 묻곤 한다. 그 노인은 더러 마음에 나타나 한마디하기도 하고 또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더러 대답을 해 주기도 한다.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내가 물었다.

 

“더러운 자가 높은 자리에 앉기도 하고 의인이 행복하지도 않고 악인이 불행하지도 않소. 성경 속의 헤롯이 왕이 되고 예수가 말 밥통에서 태어난 게 이천 년 전 그때부터의 세상 모습이 아니겠소?

 

나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배하는 낙원이 아니라 악마가 횡행하는 곳으로 보고 있소. 짐승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자체도 지옥 아니겠소?”

 

‘“도대체 그분은 왜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잠시 악마의 손에 넘기신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성경 속의 욥기같이 허가받은 사탄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요. 인간은 성경 속의 욥 같은 존재요.

 

그래도 욥은 살아서 고난이 떠나고 축복을 받지만 우리 인간의 전 생애는 불행 그 자체일 수 있지. 하나님을 믿어도 이익이 없고 열심히 그분을 찾을수록 점점 더 고난의 늪에 빠지기도 하지. 하나님이 없는 것 같지.”

 

“왜 그렇게 만듭니까? 나약한 인간을 데리고 장난하십니까? 그 목적이 뭡니까?”

 

“이보시오 엄 변호사, 세상에 온 예수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소. 그뿐이오? 평생 굶주림과 배신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에는 사형대에 올라 처참한 죽음을 당했소. 하나님은 아들이라는 예수를 돕지 않았소.

 

그분은 그릇이 불가마를 거쳐야 색이 견고해 지듯 사람에게도 이 세상의 시험이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것 같소. 사람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시험을 받고서야 아들이 되는것이라고 생각하오.

 

사람에게 귀중한 것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그 싸워서 얻은 품성이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수수께끼 같은 세상으로 보낸 것이오.”

 

“고생만 하다가 죽는 사람들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노인은 어떤 의견이신지요?”

 

“엄 변호사는 소설을 읽을 때 전반부에 주인공이 위기에 처해 나락으로 빠지는 부분만 보고 그걸 전체라고 생각하오? 후반부의 절정과 대반전은 없다고 생각하오? 예수의 일생도 세상에서는 패배자요. 부처도 다르지 않지.

 

그런데 그분들을 따라 세상의 불시험을 받고 패배자가 된 사람들은 지금 엄 변호사의 고민을 보고 다른 곳에서 킥킥 웃고 있소. 왜 그럴까 이 세상만 보는 외눈박이가 되지 말고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오.”

 

백 년 전 죽은 노인은 다른 세상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세상도 모르는데 가보지 않은 그곳은 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뭔가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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