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사람이 나에게 사고 순간을 이렇게 얘기했다.
“밤에 제 차를 운전해서 외곽의 도로를 가고 있었어요. 어두워서 그랬는지 사고 난 차가 그 도로 한가운데에 뒤집어져 있었는데 보지 못했죠. 갑자기 앞에 길을 막고 있는 육중한 물체가 눈앞에 확 다가오는 거예요. 부딪힌다는 충격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잠시 후에 나는 운전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분명히 뭔가에 부딪친 것 같은데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차창을 통해서 밖을 봤죠. 구름이 떠가고 멀리 땅이 내려다보이더라구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깨어났는데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불명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신기한 체험이었다. 그의 몸에서 그가 아닌 뭔가가 빠져나갔다 온 것 같았다.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죽음은 육체가 몸이라는 옷을 벗고 영체로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근사체험은 의학적으로 인정되고 뇌가 없어져도 우리의 의식은 그대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 의식이 지상의 물질계에서 영계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여동생이 고속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화물트럭이 추돌하는 바람에 즉사했다. 그 순간 그녀는 어땠을까? 영혼이 빠져 나와 앰블런스가 달려오고 자기의 부서진 몸뚱이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걸 보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 자신의 갑작스런 죽음에 당황했던 건 아닐까? 영정사진 속에서 그녀는 허허로운 눈길로 세상을 되돌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일주일에 닷새 투석을 하는 친구도 있고 재활병원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칠십 년 사용한 몸에서는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고 기계가 덜컹거리는 것 같다.
장군을 지낸 친구들은 오래전 어릴 적 병정놀이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장관을 지내거나 국회의원을 지낸 친구들도 그런 과거가 자신에게 존재했나 하고 의심하는 것 같다. 풀 같은 육체에 풀꽃 같은 영광이다. 칠십 년을 살아왔다. 젊은 시절 나는 칠십 세 노인인 나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젊음은 영원할 줄만 알았다. 시간은 내게 무한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염가에 팔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젊음이 잦아들고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노쇠한 모습이었다.
내가 봐도 내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의 모임을 가도 낯설다. 쿰쿰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늙은이들이 모여서 웅얼거리는 모습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중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의 속은 아직 소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조심조심 시간과 건강을 아끼면서 살아간다. 선배들을 보면 넘어져서 뼈에 금이라도 가면 외출이 곤란해진다. 그건 사회적인 죽음이다. 그러다가 병이 들어 침대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건 일차적인 생물학적인 죽음이다. 죽음과 노쇠는 그렇게 사정없이 닥쳐온다. 그걸 부인하거나 모른 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요즈음은 그런 것들과 진지하게 맞부딪쳐야 할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한다. 나보다 많은 분들은 왜 자꾸만 늙은체 하느냐고 나무란다. 며칠 전 팔십 대 중반인 선배와 만나 점심을 했다. 그 선배는 내가 칠십 고개에 들어섰다고 하자 참 좋은 나이라고 했다.
백 세가 넘은 노인이 팔십 대의 제자를 보고 참 좋은 나이라고 했다. 나이 관념은 그렇게 상대적이다. 사람 자체는 심히 약한 존재다. 그러나 마땅히 의지할 것에 의지하면 강하게 될 수 있다. 풀 같은 육체는 시들지만 진리는 영원하다.
나는 요즈음 문학보다 우주적 진리가 담긴 여러 경전들을 다양하게 읽는다. 경전들은 해지고 요동치는 마음을 잡아주는 든든한 바위 같다. 그게 내게는 성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경이나 코란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경전일 수 있다.
포장은 달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신을 섬기라는 진리는 공통된 것이 아닐까. 삼십 대 중반부터 성경을 읽어왔다. 지나보니까 잘 한 것 같다. 그게 나를 표류하게 하지 않는 인생의 닻 노릇을 하기도 하고 의지가 된 바위 같기도 하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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