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이명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8/23 [15:06]

▲ ©SplitShire     

 

나에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면 젊은 시절의 귀중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방탕한 생활을 일삼음으로 젊은 시절을 허비했다는 뜻은 아니다. 

  

남들보다 더 훌륭하진 않았더라도 더 방탕한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스로 젊은 시절의 귀중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누구나 진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 중에 겪는 방황의 시간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진리를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일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요,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해야 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가는 중에 방황하는 시간을 겪게 된다.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약 오를 정도(?)로 후회가 드는 것은 그 시간이 불필요하게 길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직도 방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비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있지만, 여전히 그 젊은 시절의 귀중한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늘 든다. 

  

복음서를 보면 모든 인류의 죄를 씻어주시기에 충분한 예수님의 사랑이 이상하게도 그들 앞에서는 장애가 있는 것같이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다. 

  

이런 바리새인들은 이천 년 전 예수시대에 있었다 없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도 있다. 그뿐 아니라 누구나 바리새인이 될 수 있다. 

  

복음서를 보라.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장 하나님과 반대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다. 

  

참 모순되게도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이다. 나에게 그 바리새인들의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는 마태복음 23장 24절을 들고 싶다. 

  

과장법이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오류를 풍자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본다. 잘못된 신앙만이 아니라, 잘못된 인생의 전형적인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비본질적인 일에 인생을 건다. 시간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일, 본질적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가만히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 뒷면을 들여다 보면 바리새인들이 보여주는 특징들과 아주 깊은 상관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바리새인들의 죄의 모습에 모든 죄인들의 모습이 압축되어 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정치와 한국 사회가 아주 바리새인적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소리를 높인다. 많은 잘못 가운데 정말 낙타 같은 잘못에는 눈을 감고 하루살이 같은 잘못에 목숨을 건다. 그리고, 그 하루살이 같은 잘못을 낙타 사이즈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진짜 말을 해야 하는 본질적인 것, 낙타 같은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꿀떡꿀떡 삼킨다. 

  

젊은 시절에 했던 핏대 올리고 목소리 높인 일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낙타의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는 하루살이였는데 말이다. 

  

내가 젊은 시간을 멋지게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바로 이 점과 관련이 있다. 더 중요한 문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한 채, 근본적인 문제들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죄의 현상들(결과들)에 집착하여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감사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점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단순하게 시간만이 나를 그렇게 인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자비와 은총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모를 때 필히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를 때 영락없이 해대는 일이 있다. 바로 하루살이를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일이다. 변두리 같은 일에 핏대를 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작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감각하고 무능력하다. 각 인생에게 영원을 준비하라고 맡겨 주신 귀한 시간을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일에 쓰는 것만큼 심각한 죄악은 없다.

   

인간이 연약해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할 지라도, 흔들림을 예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알 수록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십자가의 죄사함의 능력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종말론적인 신앙이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요동은 악인이나 치는 것이다.〠    

 

이명구|시드니영락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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