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등대의 신비로운 녹색 불빛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5/03/21 [15:51]

▲ ©Soon H Kwon     

 

밤이면 창문을 통해 검은 바다가 누워 있는 동해항의 불빛들이 보인다. 그 앞으로는 길다란 방파제 끝에 있는 작은 무인 등대에서 신비한 느낌을 주는 녹색불이 깜박거린다.

  

들어오는 배들에게 반딧불이 같은 작은 빛은 항구에 도착했다는 안정감과 평화를 줄 것이다.

  

나는 이따금씩 묵호 등대 밑에 있는 카페에 들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

  

등대가 세워진 자리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바다로 나가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어부들을 기다리는 마을 아낙네들이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태워 불을 지폈다고 했다. 바다에 나간 남편이나 아들이 그 불을 보고 포구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 앞은 바다에 접한 도로와 철도가 나란히 길게 뻗어있다. 물결이 일고 찬 바람이 부는 바다가 보이는 동해역에서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내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보인다.

  

어느 글에서인가 이런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한 노인이 기차가 지나가는 들판에 살고 있었다. 노인은 밤이면 창가에 램프불을 놓아 두었다고 했다. 밤을 지새며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그 불빛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늙었어도 누군가에게는 한 점의 위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노인이 되어 바닷가 철로변에 사는 나도 그 누군가에게 한점 불빛 같은 위로가 되고 싶어 매일 매일 한 줄 한 줄의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나이 칠십 고개를 넘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어디로 가나 냉대받고 먹고살기 위해서 지치도록 일을 해야 했다.

 

세상의 먼지나 쓰레기 취급을 당하면서 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신화적 궁핍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나와 동네 판자집에 살던 친구들은 더러운 시궁창 옆에서 오골거리고 자랐다. 우리들은 성장하면서 부자나라가 되어가는 걸 봤다.

  

소년시절 막연히 꿈으로 여기던 마이카 시대가 됐고 더운물 찬물이 나오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됐다.

  

독재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봤다. 부정선거가 말해지지만 부패와 부정이 일상에 만연됐던 지난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부분적이고 그것들이 부끄러운 걸 알고 숨어있는 걸 느낀다.

  

사십 년 가까운 변호사 생활은 인간 쓰레기장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먹을 것이 썩어나가는 교만한 부자를 보기도 하고 뼈가 휘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을 보기도 했다.

  

가난한 자들 속에 있는 교활한 악마도 보았고 부자 동네 있는 천사를 본 적도 있다. 세상은 도식적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노을 지는 인생의 황혼 속에서 나는 그분이 준 하루하루를 선물로 여기고 매일 작은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세상 쓰레기통 속에서도 재활용 가능한 보물을 찾아야 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기를 바래야 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죄인 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빌어주는 직업이기도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았다고 해야 할까.

  

소년 시절의 어둡고 외로웠던 삶에서 맑고 향기로운 기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늘진 기억에 세월을 얹어 추억을 만들려고 애썼다.

  

세상은 온통 찬 돌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돌 몇 톤을 갈아 금 몇 그람을 추출하는 것 같이 나는 어둡고 무거운 세상에서 반짝이는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서 쓰고 싶다.

  

그런 것들이 밥이나 돈은 되지 못하지만 세상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더러 마음이 불편해 질때도 있다. 선입견을 가지고 이쪽저쪽 어느쪽이냐를 살피고 따지는 사람들을 보면 편치 못하다. 나는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 내 눈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어떨까? 라는 마음의 자를 가지고 있다.

  

이런 때 예수라면 뭐라고 말씀하실까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분들이 성령이라는 인격체로 내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파도치는 긴 방파제 끝의 작은 무인 등대에서 깜박이는 녹색불이 되고 싶다.〠

 

엄상익ㅣ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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