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운 오리새끼인가 보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5/06/19 [15:21]

▲ ©manfredrichter     

 

바닷가 우리 집 앞을 매일 지나가는 영감이 있다. 주춤거리는 걸음걸이로 산책을 하는 것 같다. 그는 나만 보면 말을 건다. 항상 말이 고픈 것 같다.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런데 언어장애가 있는지 말이 어눌하다. 알아듣기가 힘들다. 어제 집을 나가다가 그와 마주쳤다.

  

“파더는 아버지, 마더는 엄마, 브라더는 형제”

  

노인의 뜬금없는 말이다. 요새 영어를 배우나 싶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주었다. 내가 고개를 꾸벅하며 양해를 구하고 앞에 서 있는 차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노인의 얼굴이 화가 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토끼띠란 말이야. 나이가 87이야.”

  

애써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는데 나의 뭔가가 그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 년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숲의 나무들을 나무 장사에게 팔았다. 변호사티를 내기 싫어서 따지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조건을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때문에 모멸감을 느꼈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십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연히 인터넷 신문들을 보다가 한 신문의 머릿 기사에 내 이름이 나온 걸 봤다. 사회명사가 쓴 글인데 나를 보기만 해도 역겹다고 쓰고 있었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의 어떤 면이 그를 그렇게 역겹게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기독교 계통의 신문에 신앙 간증을 연재한 적이 있다. 원고를 청탁받았으니까 썼을 뿐이다. 어느 날 그 신문사의 종교 담당부장이 나를 그렇게 싫어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왔다. 직접 대면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군생활을 할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화해를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나다 너는 뭐냐’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좋지 않은 인상이 바위같이 굳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한 친구한테서 어느 날 그런 이유들을 알 수 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사십대 초쯤이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했어.”

  

친구의 눈빛에서 더 이상 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사업가로서 성공한 친구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어려서부터 옆에서 보면 미련해. 닥쳐오는 공격들을 지혜롭게 피하지 못하고 그냥 얻어맞지. 지금 세상에서 남들은 너를 인권변호사라고 하지만 나는 너의 본질을 알아. 미련한 거야.

  

두들겨 맞으면서 싸우다 보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지. 돈도 잘 벌지 못하고 말이야. 억울하지 않아? 공부도 여러 해 걸리고 했는데 말이야. 난 젊었을 때 네 악필인 글씨로 어떻게 고시에 합격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어.”

  

친구의 말은 나의 벌거벗은 내면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도 했다.

  

“너하고 반대가 되는 내 고등학교 후배가 있어. 아주 영리하고 약지. 종합금융회사의 회장이야. 회사들의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해서 큰돈을 벌었지. 연예계에서 유명한 미녀 영화 배우와 결혼을 하고 남부러운 게 없이 인생을 즐기고 살아. 인생은 한 번이야. 인권변호사를 한다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아. 그러니 잘 생각해 봐.”

  

말을 해주는 그 친구는 사람 보는 눈이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그가 나를 보는 면이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련한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까 씁쓸하기도 했다. 타고난 걸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미움을 받는 것도 그랬다.

  

처음부터 미운 눈으로 보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냉정하게 말해주는 친구가 섭섭했다. 친구라면 그래도 온기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자리에서 화려한 미녀 스타를 만났다. 그가 말했던 부자인 후배의 부인이었다. 그 여배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의 사건들을 보면서 많은 변호사들을 대해봤어요. 어려서 저도 말을 잘한다고 주위에서 변호사를 하라고 했어요. 저는 변호사는 약자를 돕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닌 거예요. 주관도 없고 정의도 없었어요.

  

그래서 변호사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했더니 남편의 선배인 강 회장이 다른 변호사는 다 그래도 엄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강 회장은 나를 요령 없고 미련하다고 질타한 친구였다. 그가 나를 욕한 것인지 인정해 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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