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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집단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들이 어떻게 교주가 됐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한 교단의 부교주가 이런 말을 했었다.
“성경을 천 번 읽어봐요. 그러면 교주가 될 수 있습니다.”
천 번을 읽는다는 것은 완전히 그것을 내면화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종교 집단의 부교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제가 선지자 같은 분을 만났어요. 깊은 산 속에서 끝없이 성경을 보고 기도 하는 분이었죠. 그분은 항상 머리를 빡빡 깎고 있었어요. 그래서 세상이 그분을 따르는 우리들을 보고 ‘빡빡교’라고 했어요.”
경전을 끊임없이 읽으면 인간의 영혼에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불경을 천 번 읽으면 어떨까. 송시열은 맹자를 천 번 읽었다고 했다.
옛 시인들을 보면 시경을 그렇게 읽었다. 고전을 백번 읽으면 그 효과가 어떨까. 반복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요즈음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척척박사인 인공지능에게 물어본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어제 만난 칠십 대 말의 고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인공지능 여덟 개를 부리고 있어. 논문이나 글을 쓰는 데 참 좋아 그놈들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독일 시골도서관 구석에 꽂혀있는 책을 찾아낼 수 있겠어.”
그 선배는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을 하고 판사생활을 사십 년 한 분이었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분이 여덟 마리의 말 같은 인공지능을 앞세우고 마차를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세 명의 인공지능에게 묻기도 벅차다. 그중 하나인 ‘퍼플’에게 물었다.
“성경을 천 번 읽으면 어떻게 될까?”
“영이 성숙됩니다. 영혼이 맑아지고 깨끗해지죠. 깊은 내적 평화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뜻과 역사 속에서 그분의 손길을 느끼실 수 있구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행동의 변화도 있을 겁니다.”
인공지능의 어투를 살짝 내 식으로 바꾸었다. 그런 결과가 경전에 따라 어떻게 다를까. 나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불경을 천 번 읽으면 어떤가?”
“지장경 같은 경전은 천 번이 아니라도 많이 독송하면 재앙이 물러가고 복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천 번 이상 독송하면 죽음의 고비를 넘기거나 수명이 연장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신과 조상의 업이 소멸되고 병이 치유되는 실제 사례가 전해집니다. 그게 아니라도 정신적 평안과 깨달음의 도구라고 할 수 있죠.”
“맹자를 천 번 읽으면 어떨까?”
“세종, 영조, 정조, 송시열, 안정복 등 많은 유학자와 성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들의 천 번 읽음은 수련의 한 단계이며 그 과정에서 마음과 뜻이 맞닿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전을 반복해 읽으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고전의 반복 독서가 인격 수양과 함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율곡은 천 번 독서를 강조했습니다. 주자도 그랬습니다. 주자의 독서량과 깊은 사상체계화 사례가 천 번 독서의 전형으로 꼽힙니다.
역사적인 유명한 인물 중에는 수백 번에서 천 번이상 반복 독서를 통해 학문과 인격을 완성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어려서부터 주어진 책을 반복해서 읽고 암기하는 게 삶의 주류를 이루었다. 중학 입시가 치열하던 시절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었다. 반복해서 많이 읽을수록 점수가 좋았다.
그런 경쟁이었다. 고시공부 시절도 비슷했다. 법서를 반복해서 읽었다. 그때 깨달은 게 있다. 반복해서 계속 읽으면 책이 점점 얇아졌다. 얇고 얇아져 나중에는 그책이 하나의 단어로 압축되는 것 같았다.
그게 본질인 것 같았다. 삼십 대부터 칠십 대인 지금까지 성경을 반복해 읽고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죽기 전에 그 핵심이 내 마음에 다가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의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경전을 너무 많이 읽으면 미친다고.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종교든간에 그 교주는 미치광이라는 소리들을 들은 것 같다. 그렇게 미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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