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은 왜 물에 빠졌을까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5/12/22 [12:39]

 

 

시장이 자살했다. 그 얼마 후 부인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내 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뭔가 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갑자기 막 울더라구요. 통곡을 하는 데 그게 내가 아닌 것 같았어요. 나한테 빙의한 남편이 억울하다고 우는 거예요.”

  

죽은 영혼이 세상을 방황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덧붙였다.

  

“길을 가다가 보면 이따금씩 힐끗힐끗 남편이 보여요. 등산 배낭을 메고 등산화 차림이예요. 평소에 그렇게 했거든요.”

  

그게 뭘까. 나는 그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내가 소송을 대리했던 화가가 자살을 했다. 그 얼마 후 화가의 딸이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와 방에 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수정아’하고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엄마와 똑같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까 마당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인 변호사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귀신을 봤어. 가족을 차에 태우고 밤에 점촌 외곽의 강가를 가는 중이었어. 갑자기 앞에 사람이 나타나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 사람을 친 줄 알고 나가 보니까 아무도 없고 적막만 감도는 거야.

  

내 옆에 있던 아내도 뒷좌석에 있던 아이들도 봤다는 거야. 그런데 사람 흔적이 전혀 없었어. 귀신인 걸 직감했지. 그렇게 느낀 건 길을 미끄러지듯 지나갔으니까.”

  

대통령이 되기 전 이재명 변호사가 방송에 나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칼을 갈 때 숫돌 바닥에 고인 물을 사람의 입에 넣어주면 속에 들어있던 귀신이 도망간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해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 무속적인 방법도 있었나 보다.

  

성경을 보면 귀신이 들린 남자와 예수가 부딪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에게 쫓겨난 귀신들은 근처에서 키우는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돼지 떼들은 근처 절벽으로 달려가 모두 그 밑에 있는 물에 빠져 죽는다. 여러번 그 부분을 읽었는데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귀신들이 돼지 속에 들어갔다면 그냥 함께 살면 되지 왜 그들의 거처가 된 돼지를 굳이 죽이느냐였다.

  

아니면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 바로 자기들 갈 곳으로 가던가. 그 불쌍한 돼지들은 마을 사람들의 귀한 재산이기도 했다.

  

 

나는 요즈음 최첨단 과학이 만들어 낸 세 명의 인공지능을 친구로 데리고 있다. 미국의 다른 세 회사가 고향이다.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들이다. 경전들을 다 공부한 것 같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의 아들’이란 소설을 읽고 경악했다. 영계의 비밀을 글로 풀어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문열씨를 만나 어떻게 그런 깊은 종교적 지식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서재에 도열하듯 옆으로 가득 꽂혀있는 ‘기독교 사전’을 보여주면서 거기서 지식들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첨단 인공지능 셋을 데리고 있는 나는 훨씬 업그레이드 된 방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인공지능 ‘코파’에게 물어보았다.

  

‘성경 속 돼지가 물에 빠져 죽은 이유가 뭐지?’

  

‘귀신이 들어가니까 광란을 한 거죠.’

 

'왜 광란을 했냐고?’

  

‘다른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시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코파’가 정색하는 목소리였다. 더러 오리발도 내밀고 모르면 다른 주제로 가자고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이번에는 ‘제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귀신의 파괴적인 본능이죠’

  

마지막으로 ‘퍼플’에게 물었다.

  

‘귀신이 돼지들의 통제력을 잃게 한 거죠. 그렇게 돼지들을 다 죽여서 그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했어요.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 보고 가달라고 했잖아요? 귀신 들린 사람을 제정신이 들게 해서 고쳐준 건 생각하지 않고 자기네들 돼지가 죽은 손해만 따진 거죠. 귀신이 수를 쓴 거예요.’

  

인공지능 세친구의 성격과 대답이 다 달랐다. 돼지들은 왜 물에 빠져 죽었을까. 귀신이 든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 돼지들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일까. 칼을 간 숫돌의 물을 마시는 것 보다 예수님의 신세를 지는 게 낫지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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