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가 더 아름다운 삶
 
글|송기태,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향기로운 은퇴

원로목회자들의 은퇴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독교를 사회의 조롱거리로, 넷마당에서는 ‘개독교’로 희화하는데 큰 몫을 차지한 부분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표가 그리운 시대이다. 그러한 사표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미주 성결교단의 큰 인물로, 유니온교회를 창립한 이후 줄곧 강단을 지켜오며 미주성결대학교 초대 총장, 월드미션 대학교 대학원장을 비롯하여, 아주사 퍼시픽, 풀러신학교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한 학문과 영성이 겸비된 이정근 목사, 그는 사면팔방 어디를 보아도 우리 시대의 사표이다.

▲ LA한인사회에서 3대 문인으로 꼽히는 이정근 목사는 은퇴 후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글 목회’이다.     ©크리스찬리뷰


그를 만나면 고향집을 찾는 듯한 포근한 마음이 든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그의 앞에 내놓으면 평화롭게 해결될 것 같다. 쉽고 재미있고, 경우에 합당한 언어는 정결하다. LA 한인사회에서 3대 문인으로 꼽힐 만큼 그의 글 또한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가 교회를 은퇴하면서 교인들에게 남긴 15가지 당부에는 그의 삶이 녹아있다.

"이제 유니온교회는 새 담임목사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준비는 그분께서는 부임하셔서 사역을 잘 하시고 교회가 더 좋은 교회 그리고 양적으로도 자라나는 교회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하여 주시면 하고 당부의 말씀드립니다.

① 이정근 목사를 잊어 주세요. 정을 끊어 주세요. 교회 일로 전화할 생각을 말아 주세요.

② 문(병용) 목사님이 이 목사와 다르다고 비판하지 마세요. 다른 것이지 잘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③ 문 목사님이 오시면 당회도 2년간 전폭적 재량권을 드리자고 했어요. 그분을 위축시키면 교회 발전이 방해를 받게 돼요.

④ 설혹 그분이 이 목사를 비판하는 것처럼 생각되어도 그건 오해에요. 말하다 보면 생각지 않은 부작용도 있을 수 있어요.

⑤ 사역에 적극 협력하세요. 이 목사 때 했던 헌신을 그분에게 해 주세요. 더 열심히요.

⑥ 새로 바꾸는 일에 적극 협력해 주세요. 유니온교회가 체질개선할 점이 많이 있어요.

⑦ 생활비와 목회활동비 부족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세요. 이정근 목사는 돈 없으면 일을 안 하는 체질이지만 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그것만이 아니니까요.

⑧ 목사와 사모, 그리고 그 자녀들을 비교하지 마세요. 누구나 비교하는 말 들으면 누구나 기분 나쁘지요.

⑨ 담임목사 교체기간에 슬금슬금 빠지는 성도들이 없도록 모든 유니온가족이 나서 주세요.

⑩ "우리 교회 새 목사님 더 좋은 분이 부임하셨다"고 자랑해 주세요.

⑪ 부목사님들이 떠나더라도 무어라 하지 마세요. 그것은 교회를 살리려는 교단법 때문이지요.

⑫ 처음 부임하시면서 무척 피곤하실 것을 감안하여 휴식시간을 드리세요. 적응시간도 필요합니다.

⑬ 무슨 말씀은 하든지 순종해 주세요.

⑭ 여러분이 투표하고 결정하였으므로 계속 사역을 잘 하실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팍팍 밀어주세요.

⑮ 유니온교회가 칭찬받는 모범교회, 하나되는 교회, 유니온 그 이름에 걸맞은 교회로서의 소임을 다 하도록 한 마음이 되어 주세요. 주먹을 쥔 손가락 다섯처…. 성숙한 유니온교회 성도님들이 잘하실 줄 알지만 더 잘 하시라고 당부의 말씀 드립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는 성구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갈라지면 그날로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원로목사가 창립한 교회의 2대 목사는 그냥 불쏘시개만 될 가능성이 높고, 3대도 적응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왜냐하면 창립목사만큼 영혼사랑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또 창립목사가 너무 ‘애착’이 강하여 후임에게 맡기지 못하니, 떠났지만 떠난 게 아니에요.”

그가 들려주는 미주 몇몇 교회의 목회자 이임에 관련한 뿌리 깊은 비극적 사례는 ‘원로목사의 마음’이 바로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 시드니성결교회 집회 인도차 방호한 이정근 목사가 집회를 마친 후 숙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유니온교회는 싸우지 말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갈라지면 그날로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은퇴하여 백담사에 갔는데, 저는 백담사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말한 ‘백담사보다 훨씬 좋은 곳’은 바로 2년 반 예정으로 서울신학대학교 교환교수로 부임한 것이다. ‘서울신학대학 교수’ 자리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와닿는 곳이다. 그가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당시 조종남 학장 행정보좌겸 교양학부 조교수로 몇 과목을 가르치던 중 미국 유학을 떠났다. 웨스턴 복음신학대학원과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던 과정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다.

1989년 12월 그는 북한을 방문했다. 그해 9월 서울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에서 한 달 정도 특강을 하고 미국에 가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이름으로 초청장이 도착해 있었다. 당시 북한에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로 미주 200명, 북한 1천 명, 남한 1천 명이 모이는 ‘기독교평양복음화대회’가 추진되고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의 군사정부는 이 대회가 소위 ‘북한 측의 남조선 해방전략’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대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김일성종합대학교 종교학과 주임교수로 그 대학 주체사상연구원 부원장이던 박창곤 교수와, LA에서 목회하다 총신 총장을 지낸 김의환 목사, 그리고 이정근 목사 셋이서 만찬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박창곤 교수는 종교학과에 기독교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왔다.

박창곤 : “문익환 목사 선생님이 우리 북조선을 방문하지 않았습네까? 김일성 주석께서 그분을 확 끌어안았을 때 우리 온 인민이 큰 감동을 받았습네다. 그런데 이걸 본 학생들이 왜 종교는 아편이라면서 남조선에서 친공화국운동을 하는 분들은 종교인이 대부분이냐, 우리도 종교에 대해 배울 기회를 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네다. 우리 대학교에서는 불교나 유교를 가르칠 분은 있는데 기독교를 가르칠 분이 마땅하지 않습네다. 김 목사님과 리 목사님께서 다음 학기에 꼭 오셔서 강의를 해 주십시오.”

김의환 :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도록 담보하겠습니까?”

박창곤 : “물론입니다. 필요하신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와서 학생들에게 소개하여 주시고 마음대로 가르쳐 주십시오.”

그날 그곳에서 김 목사는 역사신학이나 조직신학을 가르치기로 했고, 이 목사는 기독교교육학과 목회학을 가르치기로 했다. 미국에 가면 바로 초청장을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굳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정보망을 타고 한국의 한 일간신문에 공개되었다. 미주교포 신학자 두 사람이 김일성대학에 가서 강의하게 된다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그곳에 제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김 목사님과 저는 하루아침에 ‘빨갱이 목사’가 됐습니다. 당시 평소 존경하던 원로목사님들이 ‘아니 이 목사님처럼 반공정신이 강한 분이 김일성대학에 가서 강의한다니…. 그것 포기하시면 좋겠소’하고 염려하는 전화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서울신학대로 다시 돌아가려던 계획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당시 군목을 지낸 이사장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정근 목사가 서울신대에 부임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전언도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돌고 돌아 그 자리에

작은 사건이 큰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어떨 땐 한 사람의 생애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작은 에피소드로 치부될 만한 ‘사건’이 삶의 터전이 바뀌고, 사역의 현장이 바뀌기도 했다. 이렇게 20년 이상 돌고 돌아 교회를 은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서울신학대 강단에 다시 서게 되었다.

 
▲ LA유니온교회를 세우고 30년 동안 목회하다 은퇴한 이정근 목사는 ‘나 예수는~’하며 “1인칭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각의 ‘예수님 자서전’을  꼭 쓰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찬리뷰

미국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신학교 강단뿐만 아니라 CTS의 4인 4색의 프로그램에서 ‘예수님과의 대화’를, 국민일보 ‘청년 예수 방랑기’를 옛날 ‘김삿갓 북한 방랑기’처럼 연재하고 있다. 그밖에 신문과 활천(성결교단 기관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교계에 소개하고 있다.

은퇴 이후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글 목회’이다. 첫 작품으로 ‘뭐야, 예수 믿는다구? 어떤 인간머리가 되어가나 두고 보자’라는 상당히 긴 제목의 30년 목회를 결산한 자전적인 목회보고서이자 인간수업의 보고서라 할 만한 책을 냈다. 수십 권의 책을 낸 문인 목사의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외우기 쉽고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책 제목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결코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제목이 아니다. 그러나 제목에 대한 유래가 인상적이다.

 “대학 시절, 사범대학 기독학생회 지도교수님의 말씀에서 따왔습니다. 그분은 일반사회과 교수로, 김상준 목사님의 조카이며, 경동교회 장로님이었습니다. 기도회나 모임 때 에밀 브룬너의 ‘반역하는 인간’의 영역본을 가르쳐주기도 하신 분이지요. 매우 점잖고 선비타입이었지만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향하여 불같이 나무라셨습니다.

성령운동이 강해도 인간개혁까지 못가서 사람이 달리진 것이 없다, 성령은 예수의 영인데, 성령받은 사람들이 예수성은 전혀 없고 마귀성으로만 가득 차있으니 그게 무슨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말인가 하며 무섭게 문책하셨습니다.

특히 ‘못된 인간머리들’이란 말을 자주 하셨고, ‘예수 믿는 인간머리들이 그 모양이어서가 되겠느냐?’고 직설적인 비판도 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씀들이 아직도 제 심장에 싱싱하게 저장돼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은퇴 후 첫 책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앞으로도 그가 쓰고 싶은 책들도 많다고 하였다. 특히 “나 예수는~”하며 1인칭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각의 ‘예수님 자서전’을 꼭 쓰고 싶다고 하였다.

문인 출신 목사답게 한국 성경번역과 찬송가 가사가 어법상 맞지 않는 것들을 무수히 골라 바로 잡은 것은 한국교계에 보이지 않는 큰 공적이기도 하다. 미주성결교단 헌법 초안자로 교단헌법의 '교리신조와 교리적 선언'을 담당했다. 남가주교협 공식문서로 채택된 '이단판별지침'을 비롯해 '목회자 윤리강령', '남북통일 선언문' 등도 그의 신학과 삶, 그리고 유려한 문체가 들어있다.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

1980년 9월 28일, 그는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 (Like Jesus, Just Like Jesus)이란 사명선언으로 유니온교회를 개척했다. 교회의 참된 개척자는 바로 예수님뿐임을 고백하며, 이 사명선언을 교회의 영구표어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니온 교회 온 성도들이 자주 부르는 찬송가로는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하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이다.

▲ 이정근 목사는 노스라이드 스템포드 호텔 연못가에서 본지 편집국장 송기태 목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예수님의 삶이 곧 성도들의 삶이고, 예수님의 마음이 곧 성도의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에서 이뤄진 그의 목회관이다. 그런 목회관에 성도들은 화답이라도 하듯, 몇 년 되지 않아 넉넉한 시설을 가진 교회당도 마련할 수 있었고, 리버사이드교회, 워싱턴유니온교회, 충만교회 등 10여 개의 지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도 여럿 파송했다. 무엇보다 교회가 한 번도 싸우거나 못된 일을 하거나 분열한 적이 없는 모범적인 한인교회로 평가받는다.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뇌를 가지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살도록 예수님의 장기로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참된 내용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엡4:13)에는 어림도 없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바로 그것을 유니온교회의 목회목표로 세우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만큼 어려운 일을 조금이라도 하자는 결단을 하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원수사랑운동”(Loving Enemies Movement)을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원수들의 죄악이 용서받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십자가 위에서 생살을 찢으시고 뜨거운 피를 흘리심으로 원수 되었던 죄인들을 위하여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만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국 한국은 원수 죽이기가 가장 치열했던 땅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한국의 남북전쟁입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생으로서 그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형제 사이에 서로 죽이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서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6.25사변 50주년이 되는 2000년 6월 25일, 이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6.25사변이 터진 이 날을 ‘원수사랑의 날’로 선포했고, ‘원수사랑재단’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원수사랑재단의 일차 사업으로 ‘원수사랑상’을 제정했습니다.”

첫 번째 원수사랑상은 고 손양원 목사를, 두 번째 수상자는 에콰도로 원주민을 선교하는 영화 ‘창끝’의 주인공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이다.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가 “저의 아버지를 죽인 에콰도르 원주민은 저의 원수가 아니라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제가 무슨 상을 받는단 말입니까?” 수상소감을 밝힐 때 감동의 홍수가 터졌다고 한다.

손양원 목사나 스티브 선교사, 모두가 원수를 친구로 만드신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 살다 간 믿음의 선진들이다.

 “만약 제가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 아버지였다면 에콰도르 원주민들이 죽이려고 달려들 때 선교의 문을 막지 않기 위하여 순순히 죽어갈 수 있었을까? 허리에 방어용 권총을 차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빨갱이나 반동분자는 가차 없이 죽여 버린 것이 한국의 남북전쟁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나 국가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죽고, 부상당하고, 학대를 받았는지 도무지 그 수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글자 그대로 목숨 걸고 지킨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국 한반도 위에도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뜯는 영세평화의 나라’(남북통일선언문)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함생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이 목사는 그의 신학을 ‘함생신학’로 정리했다. 오랫동안 교계에서 주창해온 ‘상생신학’에서 적지 않은 결함이 그의 눈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인 신학자, 목회자답게 함생주의(咸生主義, combiosism)라는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창안했다. 함생주의는 쉽게 공생주의(共生主義)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이 ‘공산주의’와 발음이 비슷하여 ‘함생주의’라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 연못가에서 이정근 목사     ©크리스찬리뷰

함생주의는 ‘모두 사는 것, 함께 사는 것, 끝까지 사는 것, 온전히 사는 것, 그리고 남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삼위일체 신론과 구원론, 교회론 등으로 제시했다. 그는 아래로부터의 신론과 위로부터 신론이 만나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인 수직적 함생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수평적 함생이 만나며, 교회일치와 교회성장이 함께 만나는 교회론 등 그동안 교회가 대립적으로 보던 내용을 ‘함생주의’ 속에서 함께 가야할 것, 통합적인 것으로 포용하고 있다.

 “상생신학은 서로(두 사람)만 사는 신학이지요. 그리고 야합의 함정도 있습니다. ‘나와 너’는 상생할 수 있지만 바로 ‘나와 너’가 야합함으로 ‘그와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를 죽이는데 야합(상생)한 세력도 있지 않습니까?

또 시간적인 상생도 있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죄인도 원수도 ‘함께 사는 공동체 신학’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한 알의 밀에서 발견하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움이 트고 순이 나고 이삭이 나와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함생주의 사상은 원수사랑에서 가장 절정에 오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원수란 원수는 모조리 씨를 말려야 했습니다. 자기나 자기 집단이 살아남으려면 원수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고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순간에도 원수들을 살리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온 인류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함생주의자이십니다.”

이 목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은 실로 기독교가 함생주의 신앙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것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결정적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지나간 세대와 오고 오는 세대의 온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스스로의 생명을 십자가 제단의 제물로 바치신 것은 정말 찬송가 가사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라고 하면서, 성경은 함생주의를 핵심 교훈으로 삼는 걸 보여주는데, 이것을 예수님은 ‘섬기는 지도력’(servant leadership)으로도 가르치셨다.

 

이민교회, 세계로 열린 창

이민교회 하나를 개척하여, 이민 모든 진액을 쏟아 부으며 달려온 이 목사는 이민교회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각별했다.

 
▲ 연못가에 모여든 비단잉어떼의 자유함을 지켜보고 있는 이정근 목사와 본지 편집국장 송기태 목사     ©크리스찬리뷰


 “21세기를 이끌 영적 지도자가 한국인 가운데 나왔으면 합니다. 칼뱅과 루터를 비롯해 요한 웨슬리, 무디, 빌리 그래함 등 각 세기를 대표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영어와 국제감각에서 뛰어난 한인 이민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무수히 쏟아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 한국의 유수의 교회에서 이민 목회하던 목사님들을 청빙하고 있는 추세인데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민교회 목회자는 ‘섬기는 리더십’을 갖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크든 작든 목회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왕이시면서 종으로 사신 모습을 이민 목회자들의 삶에서 언뜻언뜻 느껴집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니 성도들에게 감동이 온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 땅에서의 목회는 ‘황제목회’였습니다.

둘째는 사회문화와 연관시켜 보면 군대의 사령관식 문화가 한국 교회 목회문화라면, 해외목회는 섬기는 겸손한 문화의 미래형 감성리더십이 보편적입니다. 한국도 이제 글로벌 시대라 외국에 있었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다양한 시야와 관점을 갖게 하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또한 이 목사는 평신도의 신앙(교회)생활에 대해 “세상에 본이 돼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먼저 예수 믿은 사람들을 보고 믿지 않는 이들이 ‘나도 꼭 예수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되는데…. 세상에서 하는 말에도 귀를 좀 기울여야 해요. ‘믿는 놈은 많아도 믿을 놈은 없다’는 비판 말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 때문에 ‘그런 예수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믿느냐’는 소리를 들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는 목회자의 부족함, 자신의 부족함이 가장 큰문제라면서 “교회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 제가 제일 처치곤란한 말썽꾸러기였습니다”라며 웃는모습이 너무나 순결했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선교교회 담임목사

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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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1/28 [11:3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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