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생각

6월, 6월이 다시왔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5/29 [13:35]
6월, 다시 6월이 왔다.  한국의 6월은 ‘호국보훈’ 의 달이다. ‘국가의 독립’ 과 ‘민족의 주권’ 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던 ‘순국선열’ 과 ‘호국영령’ 의 얼을 기리는 달이다. 호주의 6월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영국여왕 ’ 덕분에 ‘Long Weekend’ 를 즐길 수 있는 달이다.  호주는 1901년 1월 1일부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영연방(Commonwealth) 국가이므로 공식적인 ‘국가수반’ 은 ‘영국여왕’ 이다.  여왕은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상징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여왕과 믿음의 수호자 

호주에서는 서호주(West Australia)를 제외하고, 6월의 둘째 주 월요일을 ‘여왕생일’로 지키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실질적인 생일은 4월 21일이다. 나는 왜 실질적인 생일과 대외적인 생일이 다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조사를 하여 보니 ‘여왕생일’은  엘리자베스 2세 때 제정된 날이 아니다. 1788년부터 King GeorgeⅢ의 생일(6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날로 King GeorgeⅤ세 사후에 현재의 날짜로 정한 것이다.  

서호주(West Australia)에서는 6월 첫째 주 월요일이 建主記念日(Foundation Day)로 공휴일이라, 여왕생일은 보통 9월 말 혹은 10월 첫째 주 월요일에 지킨다. 

여왕은 공식적으로 ‘국가의 수반’이자 ‘종교의 수반’이기도 하다. 국가의 수반일 때는‘여왕’(Queen)이지만 ‘종교의 수반’으로 명명될 때는 ‘믿음의 수호자’ (Defender of the Faith)라 불리운다. 

‘믿음의 수호자’ 란 ‘교황 레오 10세’가 헨리 8세’에게 주었던 칭호였다. 영국 왕이었던 ‘헨리 8세’는 대륙에서 일어나는‘개신교 운동’에 반대하여, ‘7가지 성례전’의 정당성과 ‘교황의 우위’를  주장하는 ‘7가지 성례전의 수호’라는 글을 교황에서 바친다. 레오 10세는 글을 읽고 흡족하여, 그에게 ‘믿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하사한 것이다.   

그후 헨리 8세는 ‘결혼 문제’로 인하여 ‘카톨릭’과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이 ‘국가의 수장’인 동시에 ‘영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수장령’을 발동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교황 ‘바오로 3세’는 그에게 주었던 ‘믿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취소하고, 그를 파문시킨다. 하지만 1544년 영국 국회는 ‘카톨릭’에 반대하는 ‘믿음의 수호자’란 의미로 칭호를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영국교회의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가 아닌 ‘영국 여왕’이다. 

동작동 국립묘지 

동작동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군인과 군무원’만을 안장하였으나, 10년 후인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위시하여 국가유공자, 경찰, 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하였다.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된 후, 2005년 7월 29일 국회에서 동작동의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6월 6일 ‘현충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에 가서 참배를 한다. 구한말의 ‘항일의병’을 비롯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한 ‘애국지사’ ,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평생을 바친 ‘국가유공자’ ,  전쟁 중에 목숨을 던진 ‘국군장병’ 등 많은 분들이 잠들어 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장렬하게 산화한 분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다.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평화’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이분들 뿐인가!  복음의 불모지인 ‘조선’에서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던진 ‘하늘의 사람’들이 있다. 이분들은 지금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이곳은 ‘한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복음의 밀알’이 되어 이땅에서 썩어진 ‘선교사’들이 쉬는 곳이다. 영문도 모르고 부모 따라‘조선’에 왔다, 이름모를 ‘풍토병’에 걸려 죽은 자녀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양화진에는 ‘언더우드’와 함께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의 묘비가 있다.  묘비에는 이분들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에 상륙하고 한 ‘첫번째 기도’가 새겨져있다. 

“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상륙하신 첫 기도) ☺ 

 

김환기 
호주구세군 본영 소수민족 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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