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칼빈주의연구 권위자 로랜드 워드 박사 (Rev.Dr. Rowland Ward)
특별기획시리즈- 호주의 신학자
 
크리스찬리뷰
▲ 호주의 칼빈주의 연구 권위자인 로랜드 워드 박사. 멜본에서 태어난 그는 보험중계인으로 일하다 신학을 공부, 목사가 되었다.  ⓒ김석원 
 
시대를 초월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가치 

  - 원리가 바로 선 교회만이 변하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

- 로랜드 목사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신의 가족과 신앙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 저는 1945년 멜본에서 태어났습니다. 모계 쪽의 신앙유산이 컸는데, 그중에는 호주와 폴리네시아(남태평양) 감리교 웨슬리 선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존 워터하우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842년 눈을 감으시면서 남기신 말씀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 선교하라, 선교하라, 선교하라!” 덕분에 그의 두 아들과 수많은 자손들이 남태평양, 특히 피지와 통가의 선교사로 나갔지요. 그러나 저희 아버지는 PCA 호주장로교 목사였기 때문에, 저 역시 전형적인 호주장로교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호주장로교회 안에는 자유주의신학이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중요한 전기가 된 사건 둘이 있었지요. 1959년 멜본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때의 도전과 1960년대 동안 내내 진행된 감리교-장로교 통합운동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보다 참다운 영적 관계를 가질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로밖에는 볼 수 없는 계기로 저는 동호주장로교(Presbyterian Church of Eastern Australia, PCEA)를 알게 하셨고, 1968년에는 이적을 했습니다. 지금도 PCEA는 호주 전체에 12개 교회밖에 없고, 대부분이 시드니에서 북쪽 해안지방에 중되?있습니다. 당시 보험중계인으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결국 정식 신학공부를 위해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신학교에 들어가 1975년에 졸업했지요.

그 후 한동안 타스마니아에서 목회를 한 뒤 1981년에 멜본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PCEA는 멜본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킹제임스버전성경 KJV 만이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어 홍역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시 추려서, 1987년부터는 지금 있는 원티나의 새 교회로 이사했습니다. 나리워렌지역에도 교회를 개척해 지금은 독립시킨 상태입니다. 

제가 일하는 원티나의 녹스장로교회는 담임목사인 저와 전도사 한 분 외에도, 수단에서 온 부목사 한 분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분이(오랜 내전으로 고통받아 온) 남부수단 출신 난민 2백여 명으로 이뤄진 교회를 이끌고 있는데, 조만간 멀그래이브에 구입한 새교회로 이사해 ‘올네이션’ 교회란 이름으로 재출발하게 됩니다. PCEA는 더 많은 개척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호주 안에서 칼빈주의는 이미 1875년부터 크게 약화되기 시작해 

- 워드 목사님은 호주 개혁주의/칼빈주의에 관한 가장 잘 알려진 신학자이자 역사학자 중에 한 분으로 다섯 권이나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인의 주류는 보수적인 장로교인이고, 칼빈주의적인 유산을 강조해온 편입니다. 그러나 호주 내의 칼빈주의 운동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호주 칼빈주의운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몇 개 뽑아주시면, 저희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호주기독교는 매우 복음주의적인 뿌리를 가졌지만, PCA안에서조차 칼빈주의적인 색깔은 이미 1875년부터 크게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복음주의계가 가졌던 변화와 괘를 같이 합니다.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 변질되고 속죄교리도 약화되면서, 교회는 자유주의적 복음주의로 기울었다가 20세기 초까지는 보다 노골적인 자유주의로 치우쳐버렸고, 그 후에 따라온 칼바르트의 (전통신앙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속죄론과 성경관에서는 전통신앙와 거리를 두는) 신정통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20세기 호주에서 칼빈주의가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PCA와 PCEA 내의 몇몇 지도자들의 사상과 전략적인 사역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히 PCEA의 아더 앨런 목사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에딘버러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신학교의 대표적인 칼뱅주의자 도널드 맥클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맥클린은 유명한 신학지 <계간 복음주의자 Evangelical Quar- terly>를 만들고 오랫동안 편집자로 있으면서, 다양한 교파와 운동으로 흩어져있던 유럽개혁주의운동을 통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분의 영향을 받은 알렌 목사는 1938년 호주로 돌아와, 이듬해 빅토리아주 칼빈주의 협회(Calvinistic Society of Victoria)를 조직하고, 1942년에는 <개혁신학>(Reformed Theological Review)의 초대 편집장으로 활약합니다. 이 학술지는 호주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학술지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이때 영향을 준 또 다른 사건은 화란 이민의 물결이었습니다. 주로 화란개혁교회에 속해 있던 이들은, 당시 자유주의 색채가 강했던 호주장로교회에 들어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이들은 PCEA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교단이 너무 작고 주요도시에 교회들이 별로 없었던데다 문화적으로도 차이를 느껴서 결국 1951년 호주 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es)으로 따로 독립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955년부터 발간된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지의 등장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서구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사회전체에 영적 갈급함이 커졌고, 전통기독교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사람도 늘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의 깃발>지는 큰 도움이 되었지요. 

더구나 1950-60년대는 자유주의신학이 지배하던 에큐메니컬운동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수기독교의 반발도 강해져 갔습니다. 이 때문에 1950년대 말에는 타스마니아주의 장로교회들이 분규의 홍역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당시 개혁주의의 부흥을 외친 사람들 중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에서 더 나가 근본주의로 치우친 사람까지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 외에도 NSW주에도 개혁주의 신학을 위해 장로교단을 탈퇴한 교회가 하나 있었고, 이들은 지금 개혁주의장로교회 Presbyterian Reformed Church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아주 활발한 교회지요.

공식적으로 1977년에, 호주장로교회 다수가 감리교회와 함께 구성한 호주연합교단은 전반적으로 자유주의적 신학을 따르는 교단으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그 후 PCA에 남은 이들은 칼빈주의적 뿌리를 상당부분 되찾는데 성공했고, PCEA는 따로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PCA의 칼빈주의 부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 역시 경험을 강조하다,
하나님 말씀이란 기초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 워드 박사님이 쓰신 현대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주석은 호주장로교 목회자 훈련생에게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가 전반적으로 세들백이나 윌로우크릭교회 같은 미국교회나, ‘신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미국교회성장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호주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장로교 목회자조차, 교회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WCF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외면하기도 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WCF는 너무 무겁고, 율법적이고 너무 학문적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라진 기성교회와 국가가 하나로 움직이던 국가교회 전통에 너무 매여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회복의 복음과 개인의 역할을 더 강조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 선교할 필요가 커測?현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지적에 동의하십니까? WCF가 21세기에도 계속 필요하게 될까요? 

“ WCF를 단순한 신학적인 논문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특정 신앙전통을 반영한 교회의 고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먼저 WCF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WCF는 성경을 가르침을 당시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표현에 있어서 시대적으로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 역시 WCF의 현대화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WCF는 다른 신앙고백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기술된 정말 기가막힌 정리입니다. WCF의 가장 긴 장이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다룬다는 점에도 나오듯이,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지요. 

우리가 현대에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시도한다면, WCF가 다루지 못했거나 약한 부분에 더 보충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WCF가 그 시대상황을 반영했듯이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F를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앙의 도우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내용을 돕는 도구, 실제로 성경의 메시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역할을 해주는 도구입니다. 

이점에서 WCF의 미래에 부정적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교회 역시 경험을 강조하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기초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이것은 바른 가르침을 전제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르쳐야 할 내용이 분명히 어떤 것인지 정리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WCF는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도우미로 남아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찬양의 방법과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 앞에서 언급하셨던 목사님의 소속교단 PCEA는 한인교회들에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나마 알고 있는 분들도 악기를 사용하고 시편 찬양을 하는 교회라는 ‘믿기 힘든 소문’ (?)을 통해서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정말 그렇다면 너무 현대문화에 배타적인 것은 아닙니까? 교회들이 성도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무분별하게 현대문화를 교회에 도입하는 현실을 볼 때, 현대 문화 사용에 대한 교회의 성경적 기준이 바로 서야 할 시점인 것 같은데요.... 이 문제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 PCEA는 이상한 교단은 아니니 걱정마시구요(웃음). 우리는 한국 고신장로교단이 속해있는 국제개혁주의교회연맹 ICRC의 가맹교단입니다. 1997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ICRC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여러 합동계열 장로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지요. 한국교회들이 사용하는 찬송가를 살펴보니 미국의 영향, 특히 20세기 초 미국교회의 영향이 강하더군요. 

소문(?)대로 PCEA는 아주 단순한 예배양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런 예배양식이 한때는 모든 개혁교회들이 따르던 양식이었다는 점이지요. 저희는 반주 없이 찬양을 하고, 특히 찬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시편 찬양들이 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870년대 즈음부터 이런 전통이 무너져 지금은 이렇게 하는 교단이 거의 없지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반주 시편 찬양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하나의 보다 거룩한 예배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현실은 많은 교회들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찬양의 방법과 내용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CEA은 1991년 새로운 시편 찬양을 개발해, 그동안 사용해온 1650년판 찬양과 교체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교인들이 있지만, 시편 찬양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와 교단을 초월한 에큐메니컬 찬양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적한대로, 우리는 현대 문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문화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하나님께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예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니까요.”  


언어장벽 때문에 따로 모일 수밖에 없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어야 


- 마지막 질문으로 한국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특히 호주 내 한국기독교인들이 호주 기독교에 공헌할 수 있는 점이 뭐가 있을까요? 

“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각?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호주 장로교인들이 스코틀랜드, 수단, 남아프리카, 혹은 화란의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열방에서 모여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곳입니다. 이점에서 우리가 같이 삶을 나누고, 서로를 세우기 위해 돕는 노력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합니다. 

언어장벽 때문에 한동안 따로 모일 수밖에 없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을 하지 못하면, 특별히 이민 2세들을 교회로부터 완전히 놓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부모세대보다 한국적 예배에 덜 익숙하니까요. 

한국기독교는 개인 지도자와 목회자를 중심으로 쉽게 분열하고, 직분을 계급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비춰 볼 때, 백인 호주인들이 가진 우월감처럼 한국인 교회의 이런 문화도 반드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시네요. 오랜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 로랜드 워드 박사 ⓒ김석원 

 
김석원  
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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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29 [13:5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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