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 주일학교 갱신 지상 세미나 (2)

이민교회 주일학교의 진단과 분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5/29 [14:42]
복음이 흐려진다? 

지난 달 주일학교갱신에 필요한 네 가지 출발점으로 1.복음 중심의 교육 2.부모, 교사, 학생의 관계 재정립 3.한국영성과 호주영성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문화사역 4.피드백을 포함한 노하우 축적의 필요성을 말했다. 여기에 대놓고 동의하지 않는 교회가 과연 있을까?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은 현실 속에서 꼬인 실뭉치 처럼 되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숨도 고르기도 전에 문제는 눈뭉치처럼 커져간다. 

모든 문제들이 그렇듯이, 우리가 처한 문제도 ‘악순환’ 때문에 문제를 더 만드는 구조도 있고,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위의 이슈들과 관계가 있다. 더구나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현실을 풀어보면 위의 네 가지 이슈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곧 드러난다. 

1. 흐려지는 복음의 초점 

한국교회처럼 복음, 성경을 강조하는 교회도 많지 않은데, 복음이 흐려진다는 말이 무슨 소리일까? 한국교회 안에서의 ‘복음의 희석화’는 세 방향에서 나타난다. 첫째는 가르칠 때 복음의 내용이 분명히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에게도 복음을 설명하면, 이런 복음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둘째는 교회사역의 초점이 하도 다양한 곳에 맞춰져, 실제로 복음 자체에 대한 초점이 흐려졌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이 복음하고 관계없는 게 뭐가 있을까마는, 실제는 적용에 해당하는 것들이 치여서 원리와 중심이 뭔지 자꾸 잊혀진다는 것이다. 

셋째는 복음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 지 몸에 익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뭘 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답을 찾아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주일학교에서 가장 심하다. 일전에 어느 대학의 성경공부 모임에 갔던 기억이 난다. 참석자들이 마치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반응했는데, 놀랍게도 거의 다 목회자나 중직자 자녀들이었다. 이러고도 주일학교가 복음을 제대로 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복음의 희석문제는 주일학교 안에서 세 가지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첫째는 교사들을 지치게 하고 지긋지긋하게 만들고, 둘째는 주일학교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치를 어그러뜨려, 교육방향의 일관성을 못 가지게 하고, 셋째는 결국 주일학교의 열매여야 할 아이들이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비난이 늘고 전도의 기회는 더 어려워진다. 

교사들의 번아웃과 복음에 초점 맞추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요즘 나오는 교제나 자료들을 보면 눈이 나올 지경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맞는 교제도 못 찾겠고 유능한 전문교역자를 내려달라고 난리다. 그러나 문제의 실제 원인은 주일학교의 교육 내용이 너무 ‘산만’하다는 점이다. 주로 아이들에게 잘 어필한다는 이유로, 실제 적용과 성경의 인물에 주로 집중하가 정작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심이 뭔지는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이 중심이다 

무엇이 중심인가? 그렇다. 복음이 중심이다. 복음은 우리 삶의 복잡한 경험과 문제를 한데 묶고, 이를 해석하고, 또 답을 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 물론 신앙의 다양한 측면은 다뤄져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도 몇 년만 사역을 하고 나면 가르칠 것이 바닥났다며 세미나에 쫓아다니는 것이 현실인데, 하물며 평신도 교사들이 이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교안을 읽어오기 급급한 것이 현실이 되고, 이런 교육은 교사자신에게도 신앙의 활기나 도전이 되기보다는, 단순노동을 할 때 느끼는 피곤에 찌든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가 설 수 있는 자격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복음으로 변화를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춘 교사는 자신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 가장 피부에 닿고 힘이 되는 사역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적용부분을 다루는 것도 비로소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주일학교 기대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교회를 다니기 싫어하거나, 교회를 다녀도 변화가 없다며 교사와 담당 전도사에게 부실의 책임을 미루지만, 실제로 신앙을 생기게 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고 그 다음 책임은 가정이다. 전도가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가? 주일학교는 중직자들이 교회일 잘하도록 자녀들을 맞아주는 탁아소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점에서 주일학교의 효율성은 출석률이나 이들의 반응이 아니라, 교사들이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아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초점이 그렇게 되서는 여전히 곤란하다) 

이럴 때 주일학교의 방향은 더 이상 지도자들의 변덕과 가정문제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게 된다. 더 나가서 이민교회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확보도, 지원도 불가능한 전문 교육전문가들이 꼭 없어도 얼마든지 주일학교 운영은 가능하다. 

성경의 권위를 바로 인정하는 자세 

마지막으로 주일학교가 복음에 더 초점을 맞추고, 그 복음으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어떤 삶을 만나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 신자로 키워낼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은 복음의 핵심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확신하는 가운데, 이를 매일같이 자기 삶에 비춰 씨름하는 인격을 만들 때만이 가능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자기 삶과 씨름할 줄 아는 시야와 성경의 권위를 바로 인정하는 자세로만 해결될 문제다. 

아무리 유능한 사역자나, 멋진 교제나, 괜찮은 시설도 심령을 바꾸는 데는 상대적인 영향만 미칠 뿐,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오직 복음만이,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만이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 때문에 지난 2천 년간 수많은 열악하고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 특히 성경을 통해 그것을 누리는 법을 다시 강조해야 할 때다. 

물론 복음자체를 강조하고, 성경을 제대로 읽고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이 모든 신자가, 교회가 하는 모든 사역의 초점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네 교회자체가 복음으로부터 생각보다 멀리 떠나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주일학교뿐 아니라, 교회가 복음으로 초점을 다시 맞출 때다.
 
유대인의 교육방법을 보면 깊은 성경적 지혜가 배여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교육원리 중에서 주목할 점은 부모, 특별 엄마와 아이의 책임 부분이다. 후자는 죄의 책임을 묻는 연령 기준으로 표현된다. 아이때야 당연히 죄를 지으면 부모가 전적으로 책임지지만, 그 후가 되면 아이는 청소년이라 할 지라도 다른 성인들과 다를 바 없이 직접 책임을 진다. 

2.부모, 교사, 학생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성 

이 말은 부모가 ‘절대적으로’  아이들에게 바르고 틀린 것을 지도해야 할 때가 따로 있으며, ‘알아서 하도록’  맡겨야 할 때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직접 책임지며 실패와 아픔을 겪으면서 배워야 하는 면에서는, 청소년이나 성년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대인들의 교육은 그들의 영향력을 통해서 효율성이 입증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교육의 위기는 단순히 입시경쟁 문제가 아니다. 한국식 과잉보호 문화와 서구식 자율교육철학 과잉이 겹쳐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과 가르침으로 가르쳐 주어야 할 어린이 때는 기를 안 죽인다고, 무뢰한 이기주의자ㅗ 키워낸다. 삶의 책임을 배우며 자기 길을 찾아야 할 청소년기에는 치맛바람과 보신주의에 치여 주관도 없고 의타적인 공부기계를 만든다. 

불행히도 한국교회 주일학교도 한국교육의 모순에서 별로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이런 문화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일학교를 집에서 못 시키는 영성교육을 다 해결해줘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신앙이 무절제하고,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삶의 껍데기에 붙이는 장식처럼 생각하는지... 그러나 신앙은 장식이나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이것을 온전히 익히는 방법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삶을 같이 하며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당 2-3시간도 안 보내는 곳에서 애들 신앙이 다 해결되기 바란다. 어린이 주일학교는 부모가 가정이 해야 할 신앙교육을 대신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곳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정이 나서지 않고는 신앙교육은 답이 없다. 최근 이런 자각 속에 가정교육 세미나가  느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것도 주일학교 방향과 조율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지나가는 세미나로 전락하기 쉽다. 

청소년기 주일학교는 더 과감하게 아이들을 어른취급해야, 다시 말해 더 많은 자기결정권을 주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와 부모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같이 자라나는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계속> 

 
김석원 
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빅토리아주 장로교회 사역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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