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ㅣ의사 김순관

정우성 목사, 성시화행진 중 심장충격으로 쓰러져...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1/04/26 [10:37]
시드니순복음교회 정우성 목사(67)가 지난 3월 13일 시드니성시화대회 다민족행진(이하 성시화행진) 중 심장마비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정우성 목사는 성시화행진을 하던 중 시드니총영사관 인근 엘리자벳 스트리트 데이빗 존스(David Jones) 백화점 앞에서 의식을 잃고 위급한 상황까지 갔으나 당시 바로 뒤편에 있던 시드니의대 의사 김순관 씨(52)와 행진에 나섰던 NSW주 상원의원(당시 Shoalhaven City 시장) 폴 그린(Paul Green)이 있었던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시드니성시화행진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위급한 상황까지 갔던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정우성 목사(시드니순복음교회)를 심폐소생술로 목숨을 구해 낸 시드니의대 의사 김순관 씨가 지난 4월 1일 오후 본지 취재진과 만나 당시 사건 현장이었던 엘리자벳 스트리트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의료진으로 참가한 김순관 씨는 정 목사가 쓰러지자마자 정 목사의 상태를 체크한 뒤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며, 간호사 출신인 폴 그린 상원의원이 심폐소생술을 함께 도왔다.

정우성 목사는 긴급 출동한 앰뷸런스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고 달링허스트 세인트 빈센트 병원(St Vincent's Hospital)으로 이송되어 중환자실에서 사흘간 안정을 취한 후 16일 의식을 회복했으며, 26일 심장수술을 받았다.

 
 5분 이내의 심폐소생술이 기적을 만들었다


성시화행진은 시드니성시화대회 셋째 날 오후 3시 벨모아 공원에서 시작됐다.

3시 30분, 경찰 차량이 시드니 중심거리를 통제하며 선두에서 행진대열을 이끌어 나갔다. 금년부터 죠지 스트리트로 행진할 수 없다는 시드니카운슬의 정책 때문에 하이드파크를 끼고 엘리자벳 스트리트로 코스를 변경하여 행진했다.

시드니가 거룩한 도시가 되기를 기도하며 ‘Sydney Holy City March' 현수막을 앞세운 행진대열 선두는 성시화대회 주강사로 참석한 박종순 목사, 대표회장 정우성 목사, 고문 지태영 목사,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 NSW 폴 그린 상원의원, 호주기도네트워크의 Brian Pickering 목사 등이 1천여 명의 행진대열을 이끌었다.


▲ 앰뷸런스가 도착해 구급요원들이 심장충격기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으며,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들이 길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십자가를 앞세우고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선봉악대가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등의 힘찬 찬양 연주와 함께 ‘Make Sydney Holy' 'Jesus loves Sydney'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질서정연한 가운데 진행됐다. 새벽종소리명성교회 브라스밴드, 송민선 무용단 사물놀이패도 함께 대열을 이끌었다.

행진대열 선두가 막 엘리자벳 스트리트 데이빗존스 백화점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정우성 목사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비틀거렸고 뒤따라가던 노정언 장로(시드니제일교회)가 정 목사를 부축해 도로 옆으로 뉘였다. 바로 호흡곤란증세가 발생했고 이때 김순관 교수가 달려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 20여 명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경찰은 이들을 제지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정 목사를 발견하고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던 김순관 씨는 “달려왔을 때 이미 맥박을 느낄 수 없었고 호흡이 전혀 없었다”며 “정말 놀랍다. 보통 이런 상태인 경우 사망률이 70%이상인데 정 목사님의 회복은 기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당시의 사고는 심장 쪽 세 개의 혈관이 막힌 게 주요원인으로 나타났다.

 

김순관 씨와의 일문일답

 
“예수님 만나고 오셨어요? 물었죠.”

 
- 성시화행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성시화본부에서 제가 소속돼 있는 대양주 의료선교협회로 연락이 왔어요. 성시화대회를 하는데 의료부분을 지원해 달라고요.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을 지원해 달라는 것인데 일요일에 갈 사람이 없어서 제가 가게 됐습니다.

 
▲ 시드니성시화행진을 위해 벨모어공원에 집결한 성도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위 사진 오른쪽 끝이 정우성 목사이다.  정 목사는 이때까지는 기억하나 출발 이후 자신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까지의  과정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행진대열이 호주 구세군 본부를 지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제가 행진 출발지인 벨모어공원에 1시 50분쯤 도착을 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모여들더라고요. 2시 10분 쯤 정우성 목사님을 뵈었어요. 그런데 정 목사님의 얼굴을 보니까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쉬시라고 말씀을 드려야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행진이 시작되었고 정 목사님은 맨 앞에 서서 가셨어요. 전 중간그룹에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선두그룹 뒤에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맨 앞줄과 불과 3미터 정도 뒤따라가게 됐지요. 그런데 누군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보니까 정 목사님이셨고 어느 여자 분이 안고 계시더라고요.”

- 당시 정 목사님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매우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얼굴을 보니까 벌써 창백하시고 맥박을 느낄 수 없었고 자기 호흡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로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일단 혁대를 풀고 반듯하게 누였어요.”

- 호흡이 전혀 없었다는 말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숨을 안 쉬셨습니다. 제가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83년 교회 중등부 수련회 때 교사로 가게 됐습니다. 저는 당시 의과대학 3학년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수영 중에 의식을 잃었습니다. 40분 동안 그 아이에게 인공호흡을 했던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 아이는 소생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때 일이 떠올라 입보호대도 없이 바로 입에서 입으로(mouth to mouth) 인공호흡을 시작했습니다.

 
▲ 하이드파크를 지나 데이빗존스 백화점 앞을 지나는 행진대열(위사진 오른쪽 끝에 정우성 목사가 보인다) 바로 이때 정우성 목사가 의식을 잃었고 선두대열이 잠시 멈춰섰다.      ©크리스찬리뷰


사실 호주 분들은 입보호대 없이 직접 입에서 입으로 인공호흡을 안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해요. 환자가 병균을 가지고 있을 줄 모르니까요. 다행히 옆에서 호주 분두 명이 도왔고 경찰관 한 명도 도와서 응급 구급차가 올 때까지 15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 함께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호주 분이 바로 폴 그린 NSW 상원의원입니다. 그 당시에는 쇼올해븐 시의 시장이었는데 이번 NSW 주 선거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그 분이 간호사 출신입니다.

 “아, 그랬군요. 어쩐지 그 분이 입보호대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 분이 입보호대를 딱 끄집어내더니 그것을 입에 대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더라고요.

그런데요, 5분 정도 하니까 숨을 크게 한 번 쉬시더니 다시 호흡이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5분 정도 지나니까 숨을 한번 또 쉬고 또 안 쉬세요. 하나 둘 셋... 계속했죠. 한 15분 계속했을 겁니다. 그때 앰뷸런스가 왔어요. 그 분들이 도착을 해서 심전도 체크를 하니까 맥박이 안 잡히는 겁니다. 그래서 심장충격기를 세 차례나 사용했습니다. 거기까지 가면 거의 끝이에요. 그런 후 세인트 빈센트 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 앰뷸런스를 타고 함께 병원까지 가셨지요?

 “그래요. 김형근 목사님(시드니순복음교회), 조성민 전도사님과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까지 갔습니다. 응급실로 옮기신 후 김형근 목사님이 정 목사님에 대한 의료정보를 의사 분들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고혈압이 있었고, 당뇨는 아니지만 당이 오르락내리락 했고, 2년 전과 4년 전 두 차례 쓰러진 적이 있으셨다고요. 그런 후 저희는 대기실에서 기다렸지요.”

-쓰러지신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엔 그 분들이 원인을 찾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뇌 쪽보다는 심장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결국 심장 쪽 세 개의 혈관이 막혀있는 것을 알아냈어요. 그런데 혈관 하나는 용수철을 집어넣어 뚫었는데 나머지 두 개의 혈관은 좁아져서 용수철을 넣지 못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긴 후 심장이 망가지지 않게 약물로 치료하면서 환자를 재우셨어요. 심장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요. 그런 후 수요일 오전에 깨어나셨어요.

▲ 김순관 씨가 폴 그린 시장, 경찰, 응급요원들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사실 이번 일은 기적입니다. 왜 기적이냐 하면 보통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가 오면 사망률이 70% 이상입니다. 만약 병원에서 그것이 일어나면 사망률이 50% 이거든요. 이번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심장충격기였어요. 저희들이 한 것은 그때까지 뇌가 안 망가지게 하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거였고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5분 안에 혈류가 공급이 안 되면 뇌가 망가지거든요. 그러니까 5분이 지나면 살아도 뇌가 망가집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음식물을 토해요. 그러면 그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면 큰 문제이지요. 기도가 막힙니다. 다행히 목사님은 토하지도 않으셨어요. 연세도 있고 기적입니다. 저도 놀랐어요. 하나님이 정 목사님을 사랑하셔요.”

- 3일 후 정 목사님이 깨어나셨는데 만나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혼자서 걸으시면서 말씀도 잘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목사님께 물었죠. ‘목사님 3일 동안 어디 다녀오셨어요?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요, 기억이 나신지요?’ 목사님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벨모어공원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부터 수요일 아침까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수요일 아침에 깨어나 주위에 있는 분들이 말씀하셔서 지금까지 진행된 것을 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따님하고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병원 측에서는 몇 주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는데 자꾸 교회에 가신다고 하셔서 말리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5월에 한국에서 선교대회가 있는데 예약을 해놓은 상태래요. 그곳에도 가야한다면서 기도하고 계셔서 따님이 예약을 취소했다고 하더군요. 오로지 교회밖에 모르시는 분 같았어요.”

-정 목사님을 뵈었을 때 정 목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고맙다고 하시면서 ‘나 때문에 수고가 많았소!’ 그러시더라고요. 기뻤죠.”

-       성시화행진 때 입으셨던 가운이 특이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사실 호주에서는 의료원들이 흰 가운을 안 입으니까요.”

 
▲ 김 씨는 의료진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적십자가가 새겨진 티셔츠를 본인이 직접 만들어 입고 성시화행진에 참여했다.     ©크리스찬리뷰


 김순관 씨 부부와 ‘의료복덕방’

사실 김순관 씨와 아내 김민 씨는 구면이다. 2003년 ‘호주 속의 디아스포라 한국인’ 취재차 브리즈번을 찾았을 때 그들은 ‘의료복덕방’이라는 의료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었다.

의료복덕방은 1997년 8월 23일 40여 명의 기독의사들이 모여 설립한 의료선교단체다. 오지의 해외선교사와 농어촌 목회자들 그리고 직계가족에 대한 의료문제에 대한 정보와 상담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해오고 있다. 또 후속조치가 필요한 경우 무료로 수술 등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하며 직접 의료선교사들을 발굴, 파송하고 지원하는 일도 감당하고 있다.

“2004년도에 시드니로 왔어요. 아내가 바이러스 면역학자인데 시드니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아내는 이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일 외에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신경과 의사로 시드니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 김순관 씨가 본지 편집인 김명동 목사에게 당시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김 씨는 “앞으로도 계속 의료복덕방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면서 “서울과 시드니 그리고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두바이를 연결시키며 주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드니지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서로 연합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한 몸이요 한 예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서와 화해 없이, 성령님의 역사보다는 사람들의 조직과 능력으로 이루어가는 것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들, 정우성 목사 위해 눈물로 기도

 
한편 정우성 목사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들은 정 목사의 회복을 위하여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성도들은 정 목사의 약해진 심장 등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집중 기도했다.

성도들은 이같은 공식 기도회 외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새벽기도회와 개인 기도를 통해 정 목사의 회복을 눈물로 간구했고 소식을 접한 시드니 목회자들도 정 목사의 안부를 걱정하며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되살아난 정우성 목사가 수술 후 문병차 찾아간 본지 취재진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 목사는 3월 28일 심장수술을   받은지 4일 후인 4월 1일부터 3일간의 금식 기도를 실시했다. 그는 의료진이 6-7주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지만 1981년부터 하나님과 약속한 매달 초 십일조 금식을 어길 수는 없었다.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지난 4월 1일 본지 취재진 일행이 정 목사를 찾았을 때는 일반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주일 전에 심장이 마비되어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살아난 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삼일간 예정으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성도는 교회 시작할 때부터 매달초 사흘간씩 해오고 있는 십일조 금식기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가족들에게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며 6~7주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김순관 씨와 대화했던 내용을 전했다.

“목사님, 병원 밖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 70%는 사망한답니다. 만약 병원 안에서 일어났을 경우도 50%는 사망이래요. 기적입니다.”

순간 정 목사의 눈자위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요. 벨모어공원에 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때 기자가 모질게 말씀드렸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목사님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몇 주간 쉬셨으면 하는데 그럴 분이 아니라며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5월 한국에서 열리는 선교대회에 참석하시겠다고 예약해 놓으신 걸로 아는데 취소하시지요.”

“ .......”

정우성 목사는 1979년 3월에 목회를 시작했다. 지금은 초대형 교회지만 초창기에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테이프를 모여서 듣던 20여 명의 성도가 전부였다. 사역을 시작한 정 목사는 기도를 목회의 첫 번째 원칙으로 세웠다. 크고 작은 일에 무조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1981년부터 시작한 매달 삼 일씩 십일조 금식은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어떤 달에는 한 달의 2/3를 금식기도로 보내기도 했다.

 
▲ 본지 편집고문인 정우성 목사의 빠른 회복과 건강을 위해 편집인 김명동 목사가 기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시드니순복음교회는 그동안 호주 및 뉴질랜드, 피지 등에 27개 지교회를 세웠다.

기자는 정 목사의 손과 어깨를 꼭 잡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 다시 한 번 정 목사님을 일으켜 세워주셔서 은혜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시드니순복음교회와 한국교회, 세계교회를 위해서 귀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병마를 이기고 다시 한 번 주님나라를 위해 힘써 일할 수 있기를, 시드니 교계는 지금 정 목사를 주목하며 기도하고 있다.〠

 

글|김명동 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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